지난 한 해 한국바둑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이었다. 바둑기자들이 있는 곳 그 어디에도 양 총장은 있었다. 중요 결정사항이 있는 바둑현장과 이슈의 정점에도 항상 양 총장이 있었다. 적어도 책임이 필요한 곳에서 몸을 빼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삐 모든 곳을 돌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양 총장의 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1월 5일, 양재호 총장이 인터넷 바둑기자들과 함께 신년 인터뷰를 했다.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이사장실에서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양 총장은 "소통에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것이 실제론 방심이었다. (의욕이 앞서) 작년 한 해 몸을 혹사해서 실수들이 있었고, 소통의 문제가 생긴 부분을 반성한다. 2012년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루고 5년 내에 바둑계 파이를 두 배로 키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양재호 총장 신년 인터뷰
"열심히 했지만 주위의 평가 점수는 아주 짜더라"
- 총장 취임 9개월간 뜻대로 된 일과 되지 않은 일이 있나?
"잘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론 회사(조직)생활을 전에 해본 적이 없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게 고역이기도 했다. 적응은 그래도 빨랐다. 잘 된 일은 올해 2012년 바둑리그가 10개 팀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기업 3곳이 들어온다. SK에너지, 롯데, 한국인삼공사 세 곳이다.
내년(2013)년에는 12개 팀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구단제로 가고자 한다. 물론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큰소리를 쳐야 그렇게 되도록 더 노력하게 되니까?"
- 스스로 점수를 매기자면 몇 점 정도로 보나?
"하하하. 비슷한 질문을 제가 주위에 물어봤었다. 몇 점 정도냐고 물었더니 제 생각보다 아주 짠 점수를 주더라. '세상은 역시 어렵구나'했다. 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제 개인적으론 80~90점 정도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주위에선 70~80점의 점수가 많았다. 100% 만족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 2011년 한 해 동안 여러 대회 및 행사를 굉장히 많이 다니셨다.
"앞으로는 매우 줄어들 것이다. (2011년은 총장취임 첫해라서) 처음이라 인사할 곳이 많았다. 지방대회와 아마추어 대회도 많이 다녔는데 실제론 대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개인적인 궁금증도 많았고, 현장을 알아야 개선점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대바협(대한바둑협회)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도 지방엔 자주 다녔다. 이제 안면을 텄으니 작년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
"한국기원 총 기전 규모가 '대략 90억', 총 매출은 '130'억 가량이다. 작년 한 해 이세돌의 수입이 7억을 넘었는데 이세돌 같은 정상의 기사는 10억 이상, 앞으로는 20억 정도 벌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관심도 더 가지고 바둑도 할만하다 하고 바둑 지망생도 동기부여 더 되지 않겠나. 현재 바둑계의 파이가 더 커지지 않고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어 향후 5년간 전체 파이를 두 배로 키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직을 개편했다. 기전사업팀의 홍보,영업 파트에 중점을 뒀다. 기존의 기전팀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홍보 또한 수동적 홍보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홍보를 할 것이다. (취재를 위해 찾아오지 않아도) 먼저 홍보거리를 만들어 언론에 제공할 수 있게 하겠다. "
○● 대바협과는 통합에 가까운 관계로
-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너무 '신중'한 것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신중함은 제 개인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성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국기원이 여러 의견을 청취해서 한국기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빨리해야 한다고 봤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올해 K-바둑(투윈미디어)과의 소송문제도 그렇고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처리했다.
그렇지만 한국기원 단독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우리가 결정할 부분이 많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대바협과의 일들이 그런 경우다. 그렇지만 한국기원은 빠르게 변화해야 하고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부분은 저지르려고 한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는 그렇다."
-대바협과의 통합문제는 어떻게 돼가는가? 통합하지 않고 바둑계의 양대단체가 독자적으로 가는 것인가?
"대한바둑협회는 내부적으로도 산하단체가 많고 복잡한 부분이 있다. 통합에 있어선 일단 협력관계를 강화하려고 한다. 가령 서울대 권준수 박사의 연구결과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바둑 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연구는 현장의 바둑교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기원은 서울대와 협약을 맺어 이 연구를 향후 3년간 대바협과 함께 지원할 계획이다.
물론 통합을 가기 위해선 예민한 부분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먼저 서로 협력하고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 된다. 그래서 통합에 가까운 관계만 돼도 일단은 대성공이라고 본다. 유대관계가 밀접하면 되는 것이고, 통합이라는 명칭에 연연하지는 않겠다."
- 앞서도 이야기 하셨지만 프로생활을 오래 하셨고 조직생활은 처음이었다. 힘든 부분이 많지 않았나?
"프로기사 생활을 할 때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정말 잘할 거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막상 해보니 역시 어려움이 많다. 조직생활도 그렇고 책임이 많은 자리다. 또 행정 초보다 보니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나의 장점이다. 사람들이 절 보고 '유연하다' 그러지 않나. (기자: 본인의 기풍과 비슷하지 않나?) 아니다, 내 기풍은 격렬해서 대마도 잘 죽었다. 하하. 그러나 바둑은 한 판을 크게 모험해서 실패해도 다시 두면 그만이지만 인생과 조직에선 그래선 안 된다.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되지만 실패를 최대한 줄이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 앞서도 조직개편의 이유가 나왔는데, 작년 말에 진행된 한국기원 사무국 개편은 이전까지의 조직개편과는 많이 다르다. 이전엔 팀 구성을 전문화 세분화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팀을 통폐합해서 세 개로 줄였다. 어떤 구상이 있었나?
"처음부터 기원의 사무국 기능이 팀별로 너무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다. 사무국이 그리 큰 조직도 아니고 인원도 30명이 안 된다. 4개 팀 이상은 너무 많다. 또 팀이 세분화되어 있다 보니 연관업무에 대한 협조도 미흡했다. 그래서 관련이 있는 팀은 합치고자 했다.
기존 기전-홍보-영업팀은 합치고 보급-출판도 한팀으로 묶었다. 제가 조직 내부를 일일이 챙기기 어렵기 때문에 더 줄여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서로 연관이 많고 도와야 하는 부서들은 묶여야 한다. 이는 또 각 팀의 팀장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다. 한 개 팀의 크기가 커지고 권한이 있어야 마땅히 책임과 의무를 팀장에게 지울 수 있다. "
○● 2011년 '평생 욕 다 들은 것 같다'
- 조한승 9단의 스포츠토토관련 인터뷰로 힘들었다고 들었다.
"그때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다.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인터넷상의 욕설이나 비난 때문이 아니다. 제가 평소 아끼고 사랑하던 후배들이 저를 반대해서라기보단, 오해가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의 믿음이 저에 대해 약했다는 것이었다. 조한승 9단은 2010년 아시안게임 감독 때부터 항상 봐와서 저를 많이 알 거로 생각했는데 그래서 충격이었다. 반성을 많이 했다.
총장으로서의 업무에서 스포츠토토 관련업무가 전부는 아니다. 대화를 하고 싶은데 내가 찾지 못했고, 조 9단도 나를 찾아올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다. 인터뷰가 나간 후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다. 소통의 부족이 있었고, 후배들을 위해서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후배들에겐 그런 과정이 부족했다고 본다. 그래서 미안하다.
반대하는 프로들도 스포츠토토의 진행과 여러 과정에 참여를 하도록 할 것이고,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정상급 기사들과도 만날 것이다. 제가 '소통이 장점'이라 보고, 많은 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 일을 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나의 방심이었다. 개인적으론 작년 2011년 한 해동안 몸을 너무 혹사했는데, 오히려 그런 게 과정을 소홀히 한 게 아닌가 반성하고 있다."
양재호 총장은 계속해서 바둑이 세계화되는 데 한국기원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말했다. 시작은 미국바둑협회에서부터다.
"작년에 미국 바둑협회와 협의해 프로제도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LA에 바둑센터를 세워 입단대회를 치르고 프로제도를 시행할 공간을 확보할 것이다. 미국이 하면 유럽도 자극을 받고 프로제도를 시행하지 않겠는가. 바둑의 세계화가 이뤄질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의 대기업, 예를 들어 MS 같은 곳의 지원도 후일 가능하지 않겠는가.
팬들이 늘어나야 한다. 지금은 50대 바둑팬이 튼튼해서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50대 바둑팬들이 사회생활을 은퇴한 이후가 어려울 것이다. 군부대 보급과 초등학교 바둑보급은 많이 할 것이다.
중국도 새로운 세계대회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단 일본은 너무 안타깝다. 후지쯔배도 없어졌는데 대안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프로기사들이 일본기원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
시니어기사, 신예기사, 여성기사들의 프로공식대국을 늘리는 것은 프로기사들의 한결같은 건의사항이기도 했다. 2011년 한해 시니어기전은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 시니어 기전이 작년 한해 많이 늘었다. 양 총장이 시니어만 신경 쓴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지금도 부족하다고 본다. 매달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젊은 기사들은 세계 정상을 다툴 정도로 워낙 세고 발전했기에 맞상대는 힘들다. 시니어 기사,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시니어 기사들은 나름의 팬층이 두텁다. 나이 들어 실력이 약해졌다고 무시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
마찬가지로 젊은 신예기사들도 한 달에 1번, 최소 2달에 1번 정도의 신예대회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니어와 신인들이 연중 대회를 기반으로 연말에 왕중왕전을 하는 것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 여성바둑이 잘 되야
- 한국리그 2부리그의 주인공은 여성기사
- 그렇게 따지면 여자기사들의 대회도 3개나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음.. 작년 한해 여자 상비군 체제를 유지했지만 조금 약했다. 앞으로는 국가대표제를 운용하려고 한다. 랭킹시드로 한 명 정도를 대표로 정하고 국가대표단을 만들어 국가대표단 안에서 리그전 등을 치러 내신으로 세계대회 선발을 하려 한다. 최규병 프로기사회장과도 논의를 하고 있고, 국가대표단 지원은 대한바둑협회와 협력한다. 2010년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대표단 육성에 관한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모자란 부분은 한국기원이 모두 지원할 것이다. 여자바둑 국가대표팀은 조한승 9단이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해 지도하게 된다.
여성 기사 지원과 관련해 주요한 것은 2012년 한국바둑리그다. KB국민은행의 후원으로 2부리그가 운영되고 10개 팀에 여성 1인은 반드시 참여하게 된다.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는 2011년에 30억 규모였지만 올해는 40억 규모로 치러진다. 2부리그의 핵심은 여성이다. 방송도 여성위주일 것이다. 이것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생각과도 완전히 일치하고 한국기원의 의지이기도 하다. (2부리그 이름은 'KB樂스타'리그로 예정)
여성부문은 시니어, 신예와 더불어 3대 과제다. 여성바둑이 잘 되야 바둑계도 잘 된다는 데 동의한다."
- 기원 사무국직원들은 한국 바둑계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 재밌는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직원들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데(이른바 투잡금지).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 한해선 좋다고 본다. 그것이 한달에 한 번일지 일주일에 한 번까지일지, 어느 게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적절한 기준이 있다면 허용할 수 있다."
양재호 총장은 지난 한 해 몸이 힘들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마음도 힘들었을 것이다. 양재호 총장의 올 한해를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올해는 건강도 챙기고 가정도 챙기고 나아가 바둑계도 잘 챙기려 한다. 제가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바둑계 후배들을 아끼고 챙기는 것도 힘들지 않은가. 개인이 있고 나아가 바둑계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