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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주를 든 박영훈, 아직은 여유만만이다

맥심커피배를 우승한 박영훈은 기분이 좋았다.

술을 잘 못마시는 척 하면서도 넙죽넙죽 잘 받았고, 대회 관계자들과 이야기도 잘했다. 뒷풀이용 우승소감은 "전에 제주에 와서 결승 대국을 진 일이 있다. 그때 준우승 인터뷰만 실컷 했었다. 이제 우승해서 기쁘고 감사하다"라는 것이었다. 4월 7일 제주, 이창호 9단을 상대로 맥심커피배 결승2국에서 반집승을 거둬 2-0으로 우승한 날, 대국이 끝난 저녁의 뒷풀이 장에서였다.

뒷풀이 장 한켠의 술자리에선 초성 게임이 벌어졌다. 우승자 박영훈도 게임에 참여했다.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면서 술 한잔 씩을 들다가 많이 마시는 쪽을 피해 김효정 3단의 옆으로 피신했던 박영훈 9단이었다. 김 3단이 술잔을 들고 '초성'게임을 하자고 하자 처음엔 마구 사양한다. 그러나 '안 걸리면 괜찮다'고 권하자 그야말로 확 퍼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래?'하고 다시 자리에 눌러 앉았다.

초성게임이란 두음절로 된 단어에서 단어 음절의 첫 자음(초성)을 누군가 제시하면, 그에 맞는 단어를 다른 사람보다 빨리 말하면 된다. 가령 누군가 'ㅂ,ㄷ' 하면 바둑, 바닥, 반디! 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가장 늦으면 벌칙이 있다. 뒷풀이 장의 벌칙은 '벌주'였다. (김효정 3단의 설명)

벌주가 있는 모든 게임의 특징은 걸리는 사람이 계속 걸린다는 데 있다. 이날 가장 많이 걸린 사람은 우승자 박영훈 9단. 8명 가량 참여한 이 게임에서 꽤나 자주 걸렸다. 자꾸 자꾸 벌주를 들이키던 박영훈 9단이 문득 외쳤다.

"와~, 이건 음모다"

다른 사람이 합심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외치면서도 박영훈은 계속해 게임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 게임이 묘하게 그만두기 힘들다. 특히 한 번 걸리면 반드시 다음 판은 하게 되어 있다. 벌주를 든 사람이 초성을 가장 먼저 제시하기에 벌주를 마신 다음 판에는 절대 안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번중 한번은 맡아놓고 먹다보니 전작도 있고해서 자자리가 파할 때쯤, 박영훈은 심히 취했다.

평소에 이런 행동을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의 박영훈은 잘 웃기는 해도 앞에 나서서 리드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영훈이 휘적 휘적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크게 외쳤다.

"여러분, 2차는 제가 쏘겠습니다~.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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