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연승까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대전적 1승 4패로 밀리고 있는 중국의 1인자 콩지에 9단이라면? 역시나 객관적인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바둑은 최철한 9단의 계속된 비세였고 콩지에 9단은 뭐 그리 많이 이길 필요가 있냐는 듯 딱 반집만 남기겠다고 만사 불여튼튼이다.

허나 추위를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 하지 않던가. 철벽마무리의 손길이라 자신하던 순간 자신도 모르는 틈새가 열려버렸고 그 틈새는 결국 독사의 어금니가 깊숙이 박혀버릴 만한 치명적인 크기로 커져버렸다.

주장 이창호 9단이 나오지 않고 우승을 차지한 두 번째 쾌거. 독사의 화려한 외출, 화려한 피날레를 집중조명으로 감상해보자.

---------------------------------------------------------
제1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본선 13국
○최철한 9단 ●콩지에 9단

장소: 중국 상하이 한국문화원
날짜: 2011년 01월 20일
결과: 176수 백불계승
---------------------------------------------------------

장면1 (첫 번째 방심의 유혹)

흑1부터 15까지 좌변에서 대바꿔치기가 일어났다. 좌변을 통으로 내주고 중앙 대마를 잡아버린 이 바꿔치기는 불리를 직감한 최철한 9단의 배짱 좋은 승부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로간의 이해득실은 엇비슷했다. 재미있는 건 이 바꿔치기가 일어난 뒤부터 콩지에 9단의 수순이 이상해졌다는 것인데 그답지 않은 실수가 사방팔방으로 튀어나온다. 그를 휘휘 둘러싼 유혹의 그림자가 어떤 것이었을까? 역전의 전주곡이 된 종반 장면을 중점적으로 되짚어본다.








실전진행1 (승리를 다지는 깔끔한 수순?)

실전은 흑1부터 13까지 좌변이 알기 쉽게 정리됐다. 콩지에 9단의 마무리 실력을 감안했을 땐 승리를 다지는 깔끔한 수순 같다. 그러나 실은 엄청난 실수가 저질러진 치명적 수순들이었다.











참고도1 (선수 5집 이상을 버리다)

장면1로 되돌아 가보자. 흑이 조금만 더 정교하게 수를 읽었다면 백1로 밀어갔을 때 흑2의 단수를 아낌없이 교환했을 것이다. 이하 수순들이 그 이유를 잘 말해준다. 실전과 똑같이 진행된다면 흑은 이제 18로 붙이는 선수끝내기를 기분 좋게 해치울 수 있다. 이 그림과 실전은 하늘과 땅 차이다. 또한 흑8의 한 칸 뜀도 백13의 날일자 달림이 정수다. 실전은 단지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의미만 있을 뿐 아무런 이득이 없다.









장면2 (두 번째 방심의 유혹)

그래도 콩지에 9단 입장에서는 천만 다행이다. 실전진행1의 실수를 범했어도 형세는 여전히 흑이 좋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집중의 끈을 바짝 조였다면 백의 역전극은 불발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허다한 승부의 스토리가 그렇듯이 한 번 찾아든 패배의 그림자는 조금씩 더 짙은 명암을 드러내게 돼있다. 백1의 응수타진에 흑2의 응수가 연이은 실수였고 백13의 마늘모를 두었을 때 흑14의 한 칸 뜀은 모든 것을 다 허물어뜨린 결정적 패착이 되고 만다.








실전진행2 (순식간에 끝나다!)

한두 번의 실수는 그렇다 쳐도 세 번까지는 용서하기가 힘든 법! 장면2 흑14가 두어지자 최철한 9단의 눈빛은 먹잇감을 제대로 포착한 독사의 눈초리로 변한다. 흑6과 16의 물러섬까진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27의 붙임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상황이 끝나고 말았다.










참고도2 (수읽기 회로 이상)

장면2 백1의 물음에 흑2의 응답 역시 수읽기 회로에 큰 이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수다. 보는바와 같이 그냥 꽉 막아두면 아무런 맛이 없다. 엉성하게 받는 바람에 실전진행2 백13, 15의 젖혀 이음을 선수로 당했는데 프로들에게 이런 역끝내기는 대마를 죽이는 것과 맞먹는 고통이다. 추워도 이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참고도3 (물러설 수밖에 없던 이유)

비마 끝내기를 했을 때 왜 흑1로 차단하지 않았을까? 흑3에 백4로 기어 올라가는 순간 흑 석 점이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애초 장면2 흑14를 두진 않았을 것이다.











참고도4 (그냥 막았어야)

콩지에 9단으로선 뭔가에 홀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냥 하변을 막았다면 미세하나마 흑이 지는 길은 없었을 것이다. 괜히 중앙으로 한 칸 뛰어서 이래저래 큰 손해를 자초했다. 이 그림과 실전은 한눈에 봐도 큰 차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실전진행3 (옥쇄)

뒤늦은 후회와 억울함이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된 뒤다. 하변끝내기를 당한 마당에 중앙마저 봉쇄당한다는 건 눈뜨고 코 베이는 꼴이라 흑1의 옥쇄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 콩지에 9단의 실수가 이 바둑의 하이라이트였지만 잘 보이지 않는 실수를 정확하게 꿰뚫은 최철한 9단의 돌파력 역시 명불허전이라 칭찬해주고 싶다. 최철한 9단의 원맨쇼로 마무리 된 열두 번째 농심배. 독사는 어쩔 수 없는 독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