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9단 - ●이세돌 9단
이번 제15회 삼성화재배 8강전(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대국은 21세기 최고의 라이벌로 꼽는 이세돌과 구리의 대결입니다.
가장 바둑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대결이기도 합니다. 서로 간에 상대에 대한 인정, 그리고 천재적인 수읽기 능력을 갖추고 있고 비슷한 바둑을 구사하면서 나이 역시 비슷하다는 점이 그 둘을 서로에게 끌어당기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기사의 상대전적은 비공식전을 포함해 이세돌9단이 1승 앞서고 있었습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어찌나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됐는지 이러다 2시간도 안 걸려 끝나는 것 아니야 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스피디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승부처가 등장하면서 두 기사는 시간과의 싸움에 빠지게 됩니다.
장면1 중반 승부처1 (구리의 묘수)
우상귀에서 어떤 이득을 보는냐에 따라 바둑은 누가 주도권을 잡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세돌9단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최강으로 버티다 보니 사활이 승부가 되었습니다.
검토실의 분위기는 백이 잡혀 흑이 우세하다는 평이 나오던 때 백1이 꽂혔습니다. 보통 바둑을 두다 보면 프로 기사들의 경우 저런 수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은 거의 해봅니다.
시간이 많을 때라는 전제조건이 붙긴 하지만요. 구리9단이 대단한 점은 지금 이 상황에서 시간이 없을 때 뒀다는 점입니다.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참고1 (잘못 받을 경우1)
백1에 대해 흑이 잘못 된 응수가 나올 경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수가 나 버리는 거죠.
바로 흑2가 그렇습니다. 백은 9로 두어 흑을 자충으로 만드는 형태를 만들려고 백1을 둔 것입니다.
모양은 달라도 이 그림과 비슷한 상황만 만들면 백은 살 수 있는 모습입니다.
참고2 (잘못 받을 경우2)
흑이 2로 받아도 문제가 생깁니다. 백1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데요. 백5가 그것입니다.
백5가 좋은 수인 이유는 백9를 선수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1까지 알기 쉽게 백은 살 수 있습니다.
장면2 중반 승부처2 (최선의 수읽기)
백1을 보자 이세돌9단은 장고에 들어갑니다.
검토실에서도 구리의 백1에 대해, 시간이 없는 이세돌9단이 과연 완벽한 수순으로 방어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가 뜨겁게 흐르던 때입니다.
흑2, 흑4 검토실에서 내린 최선의 수를 시간이 없는 이세돌9단은 찾아냈습니다.
구리9단의 백1도 대단했지만 완벽한 수순으로 방어해 낸 이세돌9단도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구리9단이 백1로 얻은 것은 백3을 선수 끝내기 했다는 점입니다.
상대에게 역으로 비마 끝내기를 당할 경우와 비교한다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결과가 결국은 서로간의 완벽한 타협이 된 이유 중에 하나는 묘하게도 바둑이 미세하는 점입니다. 일단 미세하다면 서로 후반을 도모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길 지 알 수 없는 미세한 승부. 서로간의 싸움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된 겁니다.
참고1 (손을 뺀다면)
흑은 수만 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중앙에 1로 끊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가 있습니다. 백은 2로 끊고 4로 단수치는 수순이 중요합니다.
흑5는 어쩔 수 없는 선택, 백은 6으로 흑 두점을 잡으며 삶의 활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고2 (수가 난다)
흑1로 먹여치지 않으면 백을 잡으러 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백2,4가 선수가되면서 자연스레 백6이 단수가 됩니다. 이후의 수순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의 진행이 됩니다. 일명 "외길 수순"으로 장면도에서 흑4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후 이 바둑을 연구한 한국기사들은 이 상황에서는 백이 약간 유리하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세돌9단은 다시 역전을 하게 됩니다. 그 순간으로 가 볼까요?
장면1 승부가 원점이 되는 순간 (구리의 오판)
좌변의 백돌을 살펴보면 완벽하게 두집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흑은 이점 때문에 미세하지만 약간 불리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구리9단은 여기서 백1을 두어 흑의 사활과 중앙 흑 한점을 고립시키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문제는 구리9단이 하나의 착각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흑2,4는 일종의 승부수처럼 비춰지지만 여기엔 흑의 좌변이 살아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수였습니다.
참고1 (구리의 착각)
실전에서 흑이 자신 있게 1,3으로 두었습니다. 바로 흑5의 절대선수가 있기 때문에 흑은 사활에 자신이 생긴 것입니다.
11까지의 진행에서 흑은 가로 선수해 반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사활에 대한 부담을 없앤 겁니다.
참고2 (무난했다)
백은 그냥 1로 쉽게 지키는 것이 좋은 수입니다. 중앙에서 5집 이상을 만들 수 있고 아직도 흑에겐 사활에 대한 부담을 줄 수 있었습니다.
약간 유리한 상황에서 구리9단은 실수를 하면서 바둑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 고비에서 이세돌9단의 어이없는 착각이 나옵니다. 그 장면으로 가보시죠.
장면4 종반 대착각
백이 1로 밀어서 끝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세돌9단이 여기서 2로 패를 따냅니다. 사실 그 패는 백에겐 무조건 버텨야 하는 패입니다. 패에 대한 부담은 백이 훨씬 크지만 우상귀에 엄청난 패감 공장이 있기 때문에 버티기가 가능한 장면입니다.
문제는 흑이 아무 때나 패를 따내 백의 패감을 없애는 타이밍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 더. 이세돌9단은 국후 복기 과정에서 착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고1 (미세한 국면 - 옥집?)
흑은 1로 받았어야 합니다.
흑은 좌상의 패를 적절히 따내면서 계속 괴롭혀서 둔다면 이 바둑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세돌9단은 흑11에 대한 옥집이 되는 걸 착각했다는 표현을 했는데 사활에 대한 착각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참고2 (이어지는 착각, 승부 끝)
백2의 젖힘 한방이 아팠습니다. 결국 백12의 상황에서도 이세돌9단의 착각은 계속 이어져 중반부터 잡혀 있던 백돌 들이 준동을 시작하죠. 백14-22까지의 수순은 백24-28까지의 결정타에 대한 준비과정인 것입니다.
착각이 아니었다면 세기의 대결은 반집 승부의 짜릿함을 만끽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글 | 김성룡 9단]
주말에 바둑 팬들이 이세돌-구리의 하이라이트를 감상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며 김성룡 9단이 보내온 글입니다. 김성룡 9단이 쓴 제15회 삼성화재배 16강, 8강 관전기는 월간바둑 11월호에 실립니다.
▲구리 9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