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씨카드배 결승 5번기는 이세돌 9단의 3:0 우승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상대전적을 보나 연승의 흐름을 보나 시작 전부터 이세돌 9단의 우위론이 대세를 압도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창하오 9단은 1국부터 3국까지 이세돌 9단의 현란함에 혼줄을 쏙 빼놓았다. 싸움에 들어가기만 하면 알아서 무너져버려 지켜보는 이들에게 연민의 감정까지 느끼게 했는데 창하오 9단이 못 둔 것 보단 이세돌 9단이 워낙 잘 뒀다고 평가해야겠다.
복귀 후 24연승이라는 부활의 축가와 함께 비씨카드배 두 번째 챔피언이 된 이세돌 9단. 그의 화려한 승전보를 집중조명으로 다시 감상해보자.
제2회 BC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1국 : 신수의 유혹
● 이세돌 9단(韓)
○ 창하오 9단(中)
장소: 바둑TV 스튜디오
날짜: 2010년 04월 24일
결과: 205수 흑불계승
장면1
좌하귀 양걸침 정석은 오랜만에 보는 형태다. 90년대 조-이 사제 대결에서 끊임없이 등장해 어느 정도 결론이 나있는 모양이건만 이세돌 9단은 흑6의 헤딩수를 들고 나오며 변화를 구했다. 흑6으로 치받고 8로 뛴 수. 족보에도 없는 이런 생소한 수에 창하오 9단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일단 백9로 붙여 약점을 보강한 수는 정수였지만 11, 13으로 끊는 수가 조금 성급했다.
실전진행1
먼저 실전진행을 보자. 백 두 점을 희생타로 삼아 6까지 봉쇄한 건 그럴듯하다. 그러나 창하오 9단은 흑7로 젖혀 9로 끊은 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하변이 몽땅 흑집으로 굳어지는 건 안 될 말이라 보고 당장 수를 내러가지만 이하 34까지의 결과는 흑이 원하던 바다. 흑의 다음 한 수로 인해 백은 순식간에 국면을 그르치고 말았다.
참고도 1
백1로 이었으면 어땠을까? 흑은 2부터 10까지 좌변과 하중앙을 모두 살려나갈 것이다. 국면을 어지럽게 만들면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인데 백도 못 둘 이유가 전혀 없다. 상변 백의 지원군이 대기하고 있는 만큼 이 싸움은 오히려 백이 재미있어 보인다.
참고도 2
이런 바꿔치기도 생각할 수 있다. 백3으로 젖혔을 때 좌변 흑 두 점을 살리지 않고 4로 압박하는 것이다. 백5로 좌변을 접수하면 흑6으로 하변을 크게 둘러싼다. 얼핏 보면 하변 흑진영이 더 커 보이지만 하변은 아직 완전한 집이 아니다. A로 붙이는 뒷맛과 끝내기 수단이 남아있는 등 수단을 부릴 여지가 남아있어 이 변화는 백이 조금 좋다.
참고도 3
창하오 9단의 수읽기는 이 그림이 아니었을까? 흑의 입장에서는 하변 넉 점을 잡는 것이 먼저 생각되기 때문에 백은 이하 11까지 변화가 해볼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백도 나쁠 이유가 없다.
실전진행 2
이어지는 실전진행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흑1로 치받았을 때 백2로 막자 흑3으로 우지끈 끊어간다. 백4로 내려서 하변 흑대마를 추궁하려하지만 되레 흑5로 백돌들을 섬멸하러 간다. 백6의 마늘모가 궁여지책이었으나 이 패는 백이 버틸 수 없는 천지대패. 흑17까지 어마어마한 실리가 들어가서는 때 이르게 국면의 명암이 결정됐다.
참고도 4
흑은 가만히 젖혀 이어서 살기만 해도 좋았다. 다음 백6으로 이어준다면 흑7로 중앙을 크게 둘러싸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다.
참고도 5
흑1로 치받았을 때 백은 2로 비껴나는 게 최강의 버팀인데 이 싸움 역시 만만치 않다. 이렇게 된다면 또 다른 바둑이 됐겠지만 백의 모양이 워낙 우형이라 흑이 주도권을 잡을 공산이 크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