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배 우승! 입대를 불과 5일 앞둔 조한승 9단이 ‘한 건’ 했습니다. 정상의 대결에서 일부러 져줄 리야 없겠지만 박영훈 9단의 ‘선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좋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유종의 미를 거둔 이 결과는 누가 보아도 흐뭇한 그림이니까요. 좋은 일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대국을 끝내고 양건연구실에 들른 조 9단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2009 KB 한국바둑리그의 소속팀 ‘티브로드’의 박용신 대표(흥국투신 대표이사)가 조촐한 축하의 저녁자리를 갖자는 전화였죠.
한국기원에서 가까운 도선사거리에 있는 허름한 ‘주먹고기집’. 언젠가는 월간바둑 ‘맛집’ 취재를 갈 만한 곳입니다. 거창한 만찬이 아니라서 더 편안했습니다. 몇 번인가 자리를 함께 했던 박용신 대표는 소탈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에 2% 채우고 가네? 잘 했어.”
축하의 소주잔을 채워주는 박용신 대표의 말에서 ‘티브로드’ 특유의 분위기를 다시 느낍니다. 사실, 조 9단의 한국바둑리그 성적은 그다지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목진석 9단이 에이스라지만 팀의 기대는 목진석-조한승의 ‘투톱’이었을 테니까요.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상당한 책임이 조 9단에게 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도 팀의 대표로서 가질 수 있는 원망이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팀 아주 매력적입니다. 나이 어린 신예 위주로 팀을 꾸리는 게 보통인데 ‘티브로드’는 제법 고령의 팀입니다. 맏형 김승준 9단(73년생)과 최명훈 9단(75년생), 안조영 9단(79년생)이 30대이고 목진석 9단(80년생)도 3학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입대하는 조한승 9단(82년생)도 별 차이가 없죠.
팀원들이 연령이 높다는 게 곧 실력이 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승부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열거한 팀원이 하나같이 한국기원을 대표하는 ‘훈남’이라는 건 틀림없습니다.
축하는 하지만 오가는 술잔은 분주하지 않습니다. ‘한 술’하는 최명훈 9단은 저녁을 마치고 운전을 해야 할 처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김승준 9단, 안조영 9단과 목진석 9단은 무주파(無酒派)이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술잔은 주로 박용신 대표, 조한승 9단, 기자 사이를 맴돌았습니다. 일찌감치 취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분위기는 더 없이 좋았습니다. 예쁜 맛, 착한 가격이 흡족했고 마지막을 장식한 김치찌개는 그야말로 예술! 박용신 대표가 자랑스럽게 추천할 만한 집이었습니다.
덕담이 오가고 노릇노릇 익어가는 가브리살(돼지 등겹살)처럼 우리들의 시간도 보기 좋게 익어갔죠. 뒤늦게, 단장 김성룡 교수와 감독 서봉수 9단이 합류했고 김승준 9단은 문을 나설 때 도착했습니다. ‘한 잔 더!’는 팀원끼리 더 오붓하게 즐길 수 있도록 빠져줘야죠.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박용신 대표가 “이거, 내일 오로에 올라가나요?”라고 묻더군요. 기자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목부터 가르쳐드릴까요? ‘조한승, 내 생애의 최고의 밤!’입니다.”
조한승 9단이 머리를 움켜쥐며 아이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는 볼수록, 만날수록 좋아지는 좋은 프로입니다. 영화배우 정우성 씨를 보면 사람들이 그런다죠. ‘일상이 화보!’. 바둑계에선 조한승 9단이 그렇습니다.
만찬석상에서 기습해온 카메라에 놀라 올려다보는 모습도, 고기 굽는 집게를 들고 있어도 핀이 나간 사진조차도 부드러운 남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몇 장 골라 올립니다. 팬 여러분도 ‘유종의 미’를 거둔 조한승 9단 많이 축하해주세요.
▲동료들의 축하! 오늘은 네가 쏜다! 왼쪽부터 안조영,양건,목진석,최명훈, 한명빼고 모두 9단
▲우승축하하고~ 군대가기전에 많이 들어~ 당분간 먹기 힘들거다. ㅎㅎ. 고기를 구어주는 박용신 대표
▲오늘은 좋은날! 건배~! 조한승 9단은 15일 입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