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이세돌, 거짓말 같은 대역전승!”
사이버오로가 머릿기사로 뽑은 이세돌 9단의 응씨배 역전극(대 후야오위)의 제목이다.

“어제 숙직 하고 오늘 낮에 퇴근해서 피곤했는데...바둑티브이하고 김성룡 사범 중계하는 거 돌려가면서 봤는데 보다 눈물이 핑 돌 뻔했다....감동이다 감동...나이 서른여섯에 바둑중계보다 울컥하다니...나 이래도 돼?”
  
뉴스 아래 주렁주렁 달린 꼬릿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멘트였다. 사이버오로 kimjw 님이 쓰신 이 소감 하나만으로도 이세돌 9단의 기적 같은 역전극이 안긴 감동이 절로 느껴진다.

(zz-gg 님) “쉰나이 넘어서 울컥해도 되남요?...”

(목인지석 님) “오늘 저녁에 계속 울다가 방금 한 잔 하고 왔네여. 올 쉰하나이면 낼모레 환갑인디 철이 없어서....” 

(조도면장 님) “요즘 뉴스 나오는 거 모다 짜증스러웠는데, 오늘 세돌이 땜시 시원한 산바람 깨할딱 벗은 알몸으로 맞은 것처럼 청량감이 쏴아~ 온몸으로 몰려듭니다^^. 세돌님아~~ 넘넘 고마워~~” 

“바둑(내용)은 지고 승부는 이긴 한판.” (엽기테러 님)
응씨배의 생각(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 30분. 그런데 벌점 2점씩만 물면 35분씩 4번까지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기존 룰은 2번까지 연장 가능했다). 그렇다면 벌점 8점을 감수하면 140분까지 더 쓸 수 있다는 얘기이니 최대 5시간 50분까지 가능하다. 6시간이면 제한시간 8시간이 주어지는 일본의 이틀바둑에 가깝다.

왜 시간 얘기를 하는가 하면, 이날 후야오위 8단이 기본 제한시간 3시간 30분을 모두 쓰고 35분 연장을 무려 3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패널티로 부과된 벌점 6점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바둑은 후야오위 8단이 덤 8점을 공제하고 1점을 이겼으나 벌점 6점을 먹은 탓에 거꾸로 5점을 졌다.

후야오위 8단의 제한시간 3번 연장 덕분(?)에 사이버오로를 통해 인터넷중계를 했던 원성진 9단은 저녁 8시 30분이 되어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아침 11시부터 실황중계에 들어간 해설이었다. 하루바둑 중계로선 최장 기록일 듯싶다. 바둑TV 해설자였던 백성호 9단도 마지막엔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번 5회 응씨배 본선1~3회전 모든 대국 가운데 단연 가장 치열했고 끈질겼던, 마치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연장혈투 끝에 극적으로 이길 때처럼 “대한민국~~!” 함성이 절로 터져 나온 한판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틀이 지난 지금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다른 판도 많은데 굳이 이 판을 [집중조명]으로 리플레이 해보는 까닭이다.

이세돌 9단은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랭킹 1위. 당연히 이번 응씨배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이다. 후야오위 8단은 최강 이창호 9단을 몇 차례 이겨 우리의 기억에 강하게 각인돼 있지만 중국에서는 의외로 ‘새가슴'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기사다. 중국 국내기전에서는 좋은 성적을 보이면서도 국제기전에서는 기껏 4강에 진출한 게 다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3월 11회 LG배에서 난생 처음 결승에 올랐으나 이마저도 준우승(대 저우쥔쉰 9단 1:2)에 그쳐 중국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바둑이 이창호 9단처럼 두텁고 침착하여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스타일이다. 대국 전 이세돌 9단의 낙승을 예상한 이들이 많았지만 ‘이창호 스타일'과 흡사한 후야오위에게 의외로 고전할 것을 우려한 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