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훈 9단이 최강 이세돌 9단을 상대로 '2패 후 3연승' 신화를 썼다. 본선리그에서 전승을 거둬 이세돌에게 도전장을 내민 박영훈이 새로운 GS칼텍스 주인이 된 것.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결과였다.
이세돌 9단이 도전1, 2국을 내리 쓸어 담자, 사람들은 '이세돌 방어'를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였다. 허나 이후 벌어진 두판을 박영훈이 가져가자 혹시 역전 우승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말이 나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느린 화면으로 잡아 보았다.
제12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 도전5번기 최종국
백: 이세돌 9단(GS칼텍스)
흑: 박영훈 9단(도전자)
장소: 한국기원 특별대국실
날짜: 2007년 12월 17일
결과: 275수 끝, 흑불계승
장면 (과감한 승부수)
이세돌 9단이 백1로 힘차게 젖혀 우중앙 흑▲를 위협한다. 여기서 박영훈은 과감하게 손을 빼 흑2로 고개를 내민다.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박영훈은 우변만 원활하게 수습하면 확실히 앞설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
백3에는 기다렸다는 듯 흑4로 자세를 잡는다. 백5로 젖혔을 때가 문제인데, 때마침 점심 시간을 맞는다. 박영훈이 준비한 다음 한수는 어디일까?
참고도1 (패 방지)
백1은 흑돌에 대한 공격과 함께 수비의 의미도 갖고 있다. 흑2로 젖혀 패를 하는 맛을 거의 없앤 수였던 것이다. 이 패를 흑이 질 경우는 흑 전체가 위험질 수 있으니 함부로 결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백1은 한수 이상의 가치가 있는 좋은 수임엔 틀림없었다. 다만 실전에서 흑A로 뻗게 하여 결과적으로 이 수가 흑한테 기회를 준 수이기도 했다.
참고도2 (이세돌의 바람)
이세돌 9단이 머릿속에서 그린 그림이 아닐까 싶다. 흑2·4로 보강을 할 때 백5에 찝어 중앙을 크게 키우겠다는 계산.
이후 흑A는 백B로 끊는 수가 선수(손빼면 백C로 아래 흑▲ 석점이 죽음)이기 때문에 별 맛이 없다. 허나 이 그림은 이세돌의 달콤한 바람일 뿐이었다.
참고도3 (검토실 의견)
실전처럼 흑A로 고개를 내밀어 반발하는 수가 있으니 애초 백1로 하변 출혈부터 막아야 했다는 게 검토실의 중론이었다. 흑2 정도에 뛰어 중앙을 보강하면 백은 좌변을 크게 키워갈 수 있다는 것.
물론 이렇게 둔다고 해서 백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좌변과 중앙이 큰 모양인 만큼 도처에서 챙긴 흑의 보가에 맞설 수 있지 않겠는가.
참고도4 (흑 위험)
<장면>에 이어 일감은 흑1이다. 전체를 다 살리려면 오직 이 한수다. 문제는 백2 이하로 흑 대마를 위협할 때다.
삶이 불확실하다. 설령 산다고 해도 손해를 잔뜩 보고 살거나 귀중한 선수를 백한테 내줘서는 흑이 재미없다. 흑은 약간의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좌변에 선수를 뽑아 좌변에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다.
실전진행1 (기발한 사석작전)
흑1은 박영훈 9단이 고심 끝에 찾아낸 수. 위쪽 흑▲를 버리고 남은 반쪽만 살리겠다는 작전이다.
중앙에서 흑은 20 가량 손해를 봤다. 허나 대신 반상 최대의 곳 좌변을 달려갔으니 전체적으로는 이득이었다. 이 한점만 원활하게 수습되면 집으로는 흑이 좋다는 게 중론. 박영훈은 기발한 사석작전으로 대세를 거머쥔 것이다.
실전진행2 (흔들리는 이세돌)
세 불리를 느낀 이세돌 9단은 우선 좌하귀에서 이단젖혀 굴복을 강요한다. 흑은 대마 사활이 걸려 있으므로 언젠가는 흑18 자리로 잇고 물러서야 하는 처지다.
헌데 패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세돌 9단은 평소답지 않게 실수를 저지른다. 백15로 막아 손해를 자초한 수가 이해하기 힘든 수.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자 이세돌이 흔들렸던 것일까?
참고도6 (백 최선)
우변 팻감은 백1로 넘는 게 집으로 나았다. 흑4에 이은 다음 백5·7은 절대 선수이므로 X의 곳에 한집이 나지 않으면 귀로 연결한 흑은 한집도 없는 모습이다.
또한 백1로 연결하면서 실전과 달리 우변에서 백은 서너집 정도 더 보탤 수 있다. 이것이라면 불리하나마 미세한 바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돌은 앞서 보여드린 <실전진행2>처럼 손해를 보아 차이가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참고도7 (우변은 살아 있다)
우변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게 흑은 자랑이다. 백1로 잡으러 해 봐야 흑2면 쉽게 살아간다. 흑4에 빠지면 최소한 빅. 백5를 두더라도 손을 뺄 수 있다. 게다가 흑A로 따내는 패까지 있어 흑이 죽을 일은 없다.
결국 흑▲로 머리를 내민 박영훈의 승부수가 먹혀든 셈이다. 이세돌 9단은 좌변 흑● 공격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박영훈의 안전운행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