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에 관한 한 과거 이창호 9단의 명성만큼 인정받는 기사는 박영훈 9단이다. 이창호가 구 신산(神算)이라면 박영훈 새로운 신산(神算)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황이중 6단을 2 : 0으로 누르고 시원하게 결승행에 오른 이세돌 9단과 달리 박영훈 9단은 첫판을 구리 9단에게 내주며 한국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허나 이어 열린 2국에서 끝내기 승부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박영훈 9단은 3국마저 끝내기로 역전을 이루는 데 성공한다. 미세한 반집 승부에서 1집반승을 이끌어낸 장면을 잡아 보았다.
제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3번기 최종국
백: 구리 9단(중국)
흑: 박영훈 9단(한국)
장소: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
날짜: 2007년 11월 23일
결과: 325수 끝, 흑1집반승
장면 (우변 끝내기를 어떻게?)
좌변 흑1·3은 흑의 권리. 이제 우변 끝내기를 처리할 차례다. 어느 틈에 박영훈 9단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끝내기일까?
참고도1 (평범한 끝내기)
제일감은 흑1이다. 이에 백은 2로 물러서는 정도. 지금과 같은 모양에서 백2로써 백A로 막는 것은 무리다. 백2에 이어 나중에 흑3과 흑5는 흑의 선수라 하겠다. 그러면 중앙쪽(X)에 백집이 넉집 난다. 이런 끝내기는 웬만한 기력을 갖춘 아마추어도 할 수 있을 터.
참고도2 (끝내기 묘수)
여기서는 흑1로 끊는 게 끝내기 묘수다. 이 수로 흑은 적어도 한집을 이득 보게 되었다. 얼핏 보면 거꾸로 한집을 보태주는 손해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후 진행을 보면 왜 한집 이상 득인지 알 수 있다.
참고도3 (최강, 무리수)
흑1에 대해 백2는 최강수. 헌데 흑3으로 젖힐 때 백은 꼼짝없이 걸려든다. 기세상 백4에 끊어야 하는데, 흑5면 백이 한수 부족이다. 이것이라면 승부 끝이 아닌가.
참고도4 (역시 무리)
그렇다고 흑3에 대해 백4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흑5로 '쑥' 들어가면서 왼쪽 백 일단을 끊는 수단이 있기 때문. 백 대마가 그대로 죽는 그림이니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결과다.
참고도5 (흑3, 통렬)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응수가 백2. 허나 지금도 여전히 흑3이 통렬하다. 앞서 보여드린 그림처럼 흑은 A, B를 맞보기로 백을 괴롭힐 수 있다. 역시 백2 역시 적절치 못한 응수인 셈이다.
참고도6 (백2도 안됨)
그렇다고 중앙을 노골적으로 보강하는 것도 문제다. 가령 백2는 흑3으로 단수치고 넘는 수단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당해서는 안될 노릇. 참고도 백4 대신 백5면 흑4로 더욱 큰일난다. 어쨌거나 백2 역시 흑1에 대한 응수로는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실전진행 (승리를 끌어낸 한집)
백2가 정수. 구리 9단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받았다. 이에 박영훈 9단은 흑3을 기분 좋게 선수한 다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흑5와 흑7을 선수로 한 박영훈은 결국 이 곳에서 확실히 한집을 이득 봤다. 백A의 가일수가 필요하므로 중앙에서 <참고도1>에 비해 한집이 줄어들 게 한 덕분이다.
이 바둑은 이후 끝까지 치열한 끝내기를 거쳐 박영훈 9단의 흑1집반승으로 끝났다. 헌데 마지막에 구리 9단이 상변에서 한집을 손해 봤으므로 원래는 '흑반집승'이었다. 그렇다면 우변에서 이득본 '한집'은 단순한 '한집'이 아니라 승패를 뒤집은 천금같은 한집이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