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프라이드. 격투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씩은 들어 봄직한 단어이다. 2미터 18센티의 거구를 자랑하는 씨름선수 최홍만이 K-1진출을 선언하고 기대이상의 성적을 올리자 매니아들만의 문화였던 종합격투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케이블TV의 채널을 돌리면 언제든 시청할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이다.
최홍만 선수가 K-1 데뷔전을 치른 것은 2005년 2월. 하지만 세계격투기 무대에서 태극기가 휘날렸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2004년 2월,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였던 최무배는 프라이드 무대에 등장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활약으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다.
최무배의 프라이드 데뷔는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지만 필연이었다. 다음은 최무배의 절친한 친구이자 종합격투기 해설자인 이동기 씨의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한 여행사가 기획한 상품 중 프라이드를 소재로 한 것이 있었다. 지금은 최홍만 효과를 기대하며 많은 상품이 나왔지만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투어에는 프라이드를 직접 관전하는 것은 물론 팬미팅을 통해 선수들까지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행사에서는 홍보를 위해 한국의 여러 관계자들을 초대했고 여기에 최무배가 포함된 것이다. 최무배의 첫 번째 프라이드 방문은 선수가 아닌 관광객이었다.
대회 전날 팬미팅에서는 선수들의 기술을 직접 체험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최무배는 우연한 기회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앞에 서게 되었고 그를 붙잡은 효도르는 단번에 표정이 바뀌었다. 밸런스를 잡는 격투가의 능력을 몸으로 알아보았던 것이다.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효도르를 진심으로 상대하게 한 남자'라는 이름으로 최무배를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도 효도르 선수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운명은 그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피릿 MC 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방한한 일본 프라이드 관계자는 당시 심판을 맡고 있던 최무배를 본 후 큰 관심을 보였고 효도르와의 에피소드를 포함한 여러 이야기를 듣고는 프라이드 진출을 권유하게 된다.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 보통인 30대 중반의 나이,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것도 전혀 개척되지 않은 척박한 땅을 홀로 일구러 간 것이다. 명예나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단지 레슬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작한 일이다. 선수생활을 마친 뒤 그의 꿈은 한국에서 최초로 일반인들을 위한 레슬링 도장을 만들어 레슬링을 보급하는 것이었고 지금 최무배 도장을 운영하며 그 꿈을 이뤄가고 있다.
우연히 최무배 선수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가끔 인터넷으로 바둑을 둔다고 대답했다. 호기심이 발동해 알아본 결과 그는 사이버오로 초창기부터 열성 회원이었다. 대국수만 약 5천국. 가끔 두는 수준이 아니다. 기보를 검색해 보니 하루에 20여 판을 두는 것도 다반사다.
그의 도장을 찾은 것은 약속시간인 2시가 되기 10분 정도 전. 들어가기 앞서 계단 앞 골목에서 이주배 기자님과 함께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짧은 여유시간의 망중한을 즐기며 질문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웬 사내가 담배를 물려다가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살짝 올려보니 미용실 앞이었다.
머리를 만진 최무배 선수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를 보고 정체를 파악했으리라. 조금 먼 거리였지만 앞으로 다가가기도 어색한 상황이라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약간은 뻘쭘(?)한 상태.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먼저 들어가 계십시오.”라며 싱긋 웃고는 미용실로 다시 들어갔다.
약 5분 뒤 마주한 그는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컸다. 프로필에 나왔던 그의 사이즈는 190센티미터에 100킬로그램이었지만 2미터가 넘는 장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디 공개는 곤란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