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안에 착수를 해야 하는 바둑리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둬야 한다. 누가 더 잘 두느냐 보다는 누가 덜 실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10번 좋은 수를 뒀어도 단 한번의 실수가 치명타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한 탓이다.
현재 1위 제일화재와 7위 한게임이 10라운드에서 만났다. 제일화재로서는 여유가 있지만 한게임으로서는 이번 라운드를 꼭 이겨야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KB국민은행 2007한국바둑리그 10라운드 3경기 2국
백: 서건우 4단(제일화재)
흑: 온소진 4단(한게임)
장소: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
날짜: 2007년 9월 19일
결과: 219수 끝, 흑불계승
장면 (칼을 뽑다)
한게임이 제일화재에 1국을 내준 불리한 상황. 온소진 선수(한게임)이 서건우 선수를 맞아 미세하나마 유리한 가운데 끝내기에 들어간 장면이다.
흑1은 빅 형태인 백△를 그대로 수중에 넣는 결정타. 이제 백은 집으로 더욱 힘들어진 느낌이다. 그래서 서건우 선수가 칼을 뽑아 중앙 대마(▲)를 겨냥했는데….
참고도1 (잡으러 가는데)
우선 백1로 응수를 물을 자리다. 온소진 선수는 애초 백△를 잡을 생각이었으므로 흑2에 둘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곳을 거꾸로 백이 보강하면 흑도 집으로 장담하기 힘들다.
결국 흑2는 실전 심리상 뒀을 것이다. 그러면 서건우 선수는 백3으로 잡으러 간다. 계속해서-
참고도2 (흑1은 걸려듦)
탈출을 위한 일감은 흑1 한칸이다. 허나 백2 끼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때 흑3으로 단수치면 백은 4로 끊는다. 다음 A와 B를 맞보기로 흑이 걸려든 꼴이다.
상변에서 흑5 밀고, 흑7 빠져봐야 백8 치중 한방에 옥집을 면할 길이 없다. 중앙 부근에서도 집을 만들 수 없음은 마찬가지.
참고도3 (흑, 속수무책)
백2에 대해 반대쪽으로 둬도 소용없다. 이번에는 백4로 늘어둔다. 흑이 연결을 하려면 5에 이어야 하는데, 백6으로 끊기면 역시 속수무책이다. 백에게 A로 끊는 맛이 없더라도 흑7에 백8이면 그만이다.
참고도4 (서건우의 착각)
흑1이 가장 까다로운 수다. 서건우 선수도 '이 수가 있어 잘 잡히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백2로 둬 봐야 잘 끊기지 않는다. 백도 A에 끊기는 약점이 있어 흑의 연결을 방해할 기회가 없다. 그런데-
참고도5 (차단 성공)
흑1엔 백2 쪽을 끼우는 기발한 묘수가 있었다. 흑3을 기다려 백은 4 이하 수순을 밟는다. 이젠 상황이 180도 다르다. 백2, 흑3을 미리 교환해 둔 덕분에 백은 흑 대마가 하변으로 연결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다만, 이후 뒷맛은 고약한데….
참고도6 (대마잡고 역전승)
우선 왼쪽을 흑1로 찔러도 백△가 끊기지 않는다. 백이 2·4로 두 번만 늦춰 받으면 된다. 문제는 중앙 쪽 맛이다.
흑은 5로 끊은 다음 신명나게 백을 돌려치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 다음 흑13으로 중앙을 끊어야 한다. 흑15까지는 흑의 권리. 하지만 즐거움은 거기까지다. 이 대마는 백◎를 잡아봐야 한집을 더 보태지 못한다. 이것으로 백은 대마를 잡고 대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실전진행 (안도의 한숨)
실전에서는 서건우 선수가 잡으러가는 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막판 뒤집기에 실패하고 만다. 백5로 왼쪽 흑 한점을 잡자 온소진 선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흑6에 보강! 이후 중앙에서 이득을 보며 승리를 결정지었다. 온소진으로서는 용궁을 다녀온 기분이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