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의 눈이 삼성화재배가 열리는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으로 쏠렸다. 세계대회 사상 처음으로 '상대선수 지명제'를 도입한 덕분이다. 예선을 통과한 16명의 선수가 시드 배정을 받은 16명 중에서 고르는 방식.
추첨 순번을 정하는 '사전 추첨'을 거친 결과, 한국의 허영호 선수가 1번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16번은 처녀 출전한 조혜연 7단으로 결정 났다. 중국 선수로 첫 번째 지명자로 뽑힌 콩지에 7단은 유창혁을 상대로 선수로 골랐다. 콩지에는 "전에 많이 진 상대인데다가, 특히 일전에 제주도에서 크게 깨진 적이 있어 (이번 기회에) 한수 배우고 싶어서 뽑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12회 삼성화재배 32강전
백: 콩지에 7단(중국)
흑: 유창혁 9단(한국)
장소: 삼성화재 유성연수원 특설대국실
날짜: 2007년 9월 4일
결과: 207수 끝, 흑불계승
장면 (설욕하고 싶은 마음에서)
유창혁과 콩지에는 랭킹에서 차이가 좀 난다. 유창혁 9단은 한국랭킹25위인데 반해, 콩지에 7단은 중국랭킹2위를 지키고 있는 잘 나가는 선수다. 다만, 이들이 그 동안 벌인 대결에서는 유창혁이 콩지에를 3 : 1로 앞서 있다. 콩지에 7단이 대결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콩지에 7단이 백1로 머리를 내민 다음 중앙을 정비하자, 유창혁은 상변을 최대한 키우겠다고 흑4로 최대한 멀리 벌렸다. 백5에 걸쳐왔을 때가 작전의 갈림길. 유창혁이 선택한 작전은 무엇이었을까?
실전진행 (의문은 남고)
상변 일대를 거대하게 만들기 위해 먼저 흑1로 중앙에 교두보를 마련한 수가 기민했다. 이어 흑3·5로 붙여 뻗은 수는 일관성 있는 작전. 상변과 중앙이 거대한 궁궐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은, 콩지에 7단이 너무 호락호락하게 상변 일대를 크게 내줬다는 점이다. 둘 중 하나다. 형세판단에서 착오가 있었던지, 아니면 수읽기에서 실수가 있었던지. 어느 쪽이건 흑17까지 선수로 이 일대를 챙길 수 있어서는 미세하나마 유창혁 9단의 페이스가 됐다.
참고도1 (손빼면 위험)
흑1에 대해 손을 빼기는 겁난다. 가령, 백2로 귀를 판다든지 하면 흑은 당장 3에 뛰어 좌변을 크게 위협해갈 것이다. 좌변 백△는 보다시피 아직 한집도 만들지 못한 상태다.
흑A가 거의 절대선수라 볼 때 좌변 백 대마는 흑3을 얻어맞는 순간, 벼랑 끝에 몰린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설사 살더라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다 보면 백은 우상귀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진다.
참고도2 (귀에 뛰어들 때)
<실전진행>에서 언급했듯이 콩지에 7단은 이곳처리에서 너무 느긋했다. 특히 흑1로 뻗을 때 백2로 귀를 파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흑3에 막으면 백4 이하 잘 알려진 정석이 펼쳐진다. 부분적으로는 정석이지만 백으로서는 실전보다 실리를 더 챙길 수 있는 모습이라 만족이다.
참고도3 (기세상)
따라서 백2면 흑은 다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흑3으로 호구쳐 연결을 차단하는 수가 적격. 백6까지는 서로 기세의 흐름이라 하겠다. 흑의 다음 한수가 상당히 어렵다.
물론 이것이라고 해서 흑이 못 둘 것은 없다. 다만 실전처럼 상대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백한테는 훌륭한 작전이 아니었을까?
참고도4 (흑1의 효력)
보강을 하기 전에 흑1 급소 한방을 알린 수가 주효했다. 백2를 지키고도 손을 빼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콩지에 7단은 하는 수 없이 백4로 슬라이딩하며 확실하게 지켰다. 이 수를 생략하면 당장 흑A를 당해 모양이 궁색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덕분에 귀중한 선수를 잡은 유창혁 9단은 국면을 리드하며 승리를 다져갔다.
유창혁 9단은 대국 상대가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성적이 나빠서 만만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대답한 바 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콩지에 7단에게 불계승을 거두며 16강에 올랐다. 과연 큰 승부에 강한 유창혁이었다. 바둑리그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던 유창혁 9단이 이번 삼성화재배에서 어디까지 오를지도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