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부터 결승까지 단기간에 벌어지는 중환배는 대만에서 격년제로 개최하는 세계대회이다. 명인전, GS칼텍스배의 도전권이 어려워진 지금 이창호 9단이 올해 우승을 노릴 수 있는 대회는 KBS바둑왕전과 중환배뿐이다. 삼성화재배는 올라간다 해도 2008년에 결승전이 열린다. 중국이 참가를 하지 않아 반쪽 대회라는 수근거림도 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일본의 장쉬 9단에 완승을 거두고 맞은 다카오 신지와의 8강전 대국. 신산이라 불리며 완벽함을 자랑했던 끝내기에 가려진 그의 깊은 중반전 수읽기가 빛을 발했다. 8강에서 첫 번째로 한국의 승리를 알린 이창호 9단 뒤로 박영훈, 박정상, 조한승이 차례로 승전고를 울리고 4강을 싹쓸이했다. 한국의 중환배 3연패가 예상보다 일찍 결정되었다.
제3회 중환배 세계바둑선수권전 8강
백: 다카오 신지 9단
흑: 이창호 9단
장소: 타이페이101 빌딩, 36층 특별대국실
날짜: 2007년 8월 13일
결과: 129수 끝, 흑불계승
장면 (다카오의 승부수)
시종일관 안정감 있는 행마를 보인 이창호 9단이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 이대로 마무리 되면 흑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백 1~5가 강력한 승부수. 앉아서 질 수는 없다는 다카오 신지 9단의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다카오 신지는 현재 명인과 본인방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국제전 성적은 바닥을 치고 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상대.
공은 이창호 9단에게 넘어왔다.
실전진행1 (양동작전)
흑은 1로부터 전단을 구한다. 무턱대고 덮어씌워 상변을 공격하는 것은 하수의 수법이다.
우변을 건드리며 자연스럽게 흑5를 얻어냈다. 상변과 우변을 엮어서 공격하는 전형적인 양동작전. 그러나 실패한 공격은 패배만을 안길 뿐이다.
냉정하고도 정확한 수읽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도1 (탈출불가)
백1이면 우변은 쉽게 안정된다. 문제는 상변 백대마의 사활인데…….
흑2로 씌우기만 해도 위험하다. 3,5로 탈출이 가능해 보이지만 재차 6으로 씌우면 아래에 흑의 원군이 대기하고 있어 몇 발작 못나간다.
참고로 A로 두 점을 잡아도 B의 치중이 있어 백은 한 집밖에 나지 않는다.
실전진행 2 (검토실도 놀란)
어쩔 수 없이 백은 1로 상변 대마를 보강했다. 상변이 쉽게 살아버린다면 백의 승부수는 성공한 셈이다. 두 대국자의 시선이 우변으로 쏠려 있지만 별다른 수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이창호 9단은 준비한 2,4를 보여준다. 검토실에선 비명소리가 나온다. 백을 양분하긴 했지만 수상전은 어불성설. 잔뜩 보태준 꼴이다.
시선이 이 바둑으로 집중된다. 간신히 두 집을 구걸해야 할 백이 흑 6점을 잡았다.
참고도2 (싱거운 결과)
단순히 흑1로 때리면 석 점은 살릴 수 있지만 2로 끊기만 해도 백은 쉽게 살아간다.
집을 없애려면 3,5로 파호해야 하는데 8,10으로 한 집을 만들 수 있다. 양쪽의 백이 이렇게 아무 피해 없이 살아간다면 흑으로서도 싱거운 결과.
백 △가 빛나고 있다.
실전진행3 (백, 돌을 거두다)
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1로 끊어간다. 갇힌 흑의 수는 네 수. 하수의 눈에는 억지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백도 8까지는 최선. 이창호 9단이 9과 10을 교환 하고 11를 두자 다카오 신지 9단이 돌을 거두었다.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흑이 죽었는데……. 옆에서 조한승 9단과 야마시타 9단의 바둑을 해설하던 이재웅 5단에게 물어보니 명쾌한 답이 나온다. 하지만 그도 감탄하기는 마찬가지.
참고도3 (한 수 부족)
돌을 던진 사연을 알아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백에게 9까지는 정말 최선일까? 초급자분들을 위해 몇 가지 참고도를 보여드린다.
먼저 백1~9로 두면 22까지 전멸이다. 백의 한 수 부족.
참고도 4 (마찬가지)
수순 중 전보 백7로 이렇게 호구치면 2로 받아서 마찬가지. 9로 탈출이 될 것 같지만 12까지 요석이 잡힌다.
참고도 5 (중앙 전멸)
<참고도 3>이 틀렸다는 독자들의 댓글을 보고 황급히 추가한다. 9로 두 점을 잡으면 간단하게 백이 산다.
그러나 흑10으로 중앙 대마가 다시 죽어버린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흑승.
참고도 6 (마지막 관문)
백1이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우직하게 흑2로 막아서 그만이다. 3을 선수하고 5로 발버둥을 쳐봐도 18까지 세 수를 못 벗어난다. 수순 중 3을 두지 않고 그냥 5로 막으면 6에 젖힐 때 응수가 없다.
따라서 <실전진행3>은 백도 어쩔수 없는 진행이다.
참고도 7 (돌을 거둔 사연)
백이 돌을 거둔 사연은 이렇다.
백 1로 늘면 흑은 잡을 수 있다. 그러나 2,4가 백의 숨통을 조이는 묘착.
백은 5로 끊을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 교환하고 흑6으로 막으면 백 대마는 전멸한다.
다음 수순은 백 대마의 죽음을 확인시켜 준다. 수순 중 9로 A에 붙이는 수는 B에 끼워 흑의 포위망을 뚫을 수 없다.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렇게 되짚어보면 아주 어려운 수는 없어 보인다. 문제로 제시되었다면 프로기사뿐 아니라 아마추어 강자도 풀 수 있으리라. 무서운 것은 이창호 9단이 이 부근의 다양한 변화를 이미 다 읽어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읽기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손해를 보고 공격을 결행하는 것은 프로바둑에서는 금기사항이다.
항상 인내하고 쉬운 길만 가는 이창호 9단이 가끔씩 보여주는 이런 파괴력은 그 바둑의 깊이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참고도3>이 틀렸다는 댓글을 보고 참고도를 한 개 추가해 황급히 수정하였습니다. 지적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끊기맨님과 함께 한 분이 더 계셨는데 리플을 지우셨네요. 아무튼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