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생의 이창호 9단.
그의 약력은 화려하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가 1986년 11살의 나이로 프로관문을 통과하더니 입단 2년 차인 13살엔 KBS바둑왕전을 우승하면서 세계최연소 타이틀 획득이란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질렀다. 17살 때는 동양증권배를 품에 안아 최연소 세계챔피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창호 9단.
그 뒤부터는 무풍지대였다. 브레이크 풀린 폭주기관차처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승행진을 멈추지 않은 것이 132회. ‘살아있는 바둑국보’란 수식어가 전혀 무색하지 않는 대위업이다.
올드팬들에겐 한낱 어리게만 보였던 그가 올해 벌써 서른세 살의 나이가 됐다. 프로 생활 21년차의 중견 기사가 된 그에겐 말수가 적고 바둑밖에 모르던 천재소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이젠 바둑산맥의 거대한 산봉우리로 우뚝 솟아올랐다.
7월 28일, 그의 서른세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창호 9단과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프로 생활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얘기가 들려오는 이 때, 그의 심정과 진솔한 얘기들을 독자들에게 꺼내어 본다.
생일을 축하한다. 두터미 회원들이 생일파티를 열어줬는데 듣기로는 3년째 해왔다고 알고 있다. 이창호 9단 성격엔 이런 행사가 조금 부담스러웠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어떤가?
매년 신경써주는 것에 대해 팬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오프 모임에 자주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원들은 다 아는가?
모임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전체 회원의 70% 정도? 그 정도는 누가 누군지 다 아는 것 같다.
홈페이지에 글도 자주 올리는가? 연예인들이나 유명 스포츠 스타들은 온라인에서 팬들에게 자주 인사하는데 이창호 9단은 어떤지 궁금하다.
생각은 항상 그러고 싶은데 글 쓰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말을 조리 있게 하는 것도 어려운데 글 쓴다는 건 더 어렵다. 전에 10줄 정도 써내려 간적이 있었는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웃음).
7월말이다. 본격적인 피서철인데 휴가계획은 있는가?
글쎄…. 2박 3일 정도로 여행이나 다녀오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갈지 안 갈지 확실히 모르겠다. 회원 여러분들이 책 선물을 푸짐하게 주시는 바람에 집에서 책 읽느라 정신없지 않을까 싶다(웃음).
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창호 9단의 건강문제다. 왕위전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요즘 많이 좋아졌다고 했는데 특별히 하는 운동은 있는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기체조라고 하는데 꾸준히 하다보니 괜찮은 것 같다.
최근 부진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건강문제부터 시작해 30대에 접어들면서 예전 못지않은 체력문제, 혹은 바둑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거나 오랫동안 정상에 머물러 있다 보니 잠깐 동안 찾아드는 슬럼프 등 많은 추측이 난무하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아직 젊기 때문에 체력문제는 아닌 것 같고…. 건강문제가 가장 큰 것 같다. 병원에선 별 이상이 없다 하고 한의사들에게 진찰을 받아보면 각기 다른 처방전을 내놓고 있으니 믿고 따르기가 어렵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다.
대국스케줄이 빡빡한 것 같은데 대국수를 줄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몇몇 팬들은 모든 기전에 다 참가하는 것보다 중요한 기전 몇 개만 전력투구하는 것이 어떤가하는데?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10판에서 20판 정도 줄이고 싶은 맘은 있지만 막상 그게 쉽지만은 않다. 프로라면 기전에 참가한 이상 지고 싶은 맘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예전 같으면 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으리라 보는데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본다. 좋은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 본다.
어떤 팬들은 일년 정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다가 기전에 다시 참가하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도 내놓던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년 가까이 쉬는 건 나에게 독이 될 것 같다. 대국수를 줄이는 건 지금 상황에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지는 몰라도 긴 시간동안 바둑에 손을 떼는 것은 나에게 더 큰 짐이 될 수 있다.
현 한국랭킹 1위는 이세돌 9단이다. 최정상의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창호 9단이기에 이세돌 9단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본다. 언젠간 이세돌 9단과 정상의 자리를 놓고 대결할 날이 있으리라 보는데 이창호 9단은 어떤가? 이세돌 9단이 자신보다 더 낫다고 보는가?
글쎄…. 이세돌 9단과 최근에 많이 붙어보지는 못했지만 자웅을 가린다면 큰 무대에서 붙어야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나도 최상의 컨디션에서 맞붙어야겠고 이세돌 9단도 되도록이면 큰 무대에서 붙어보고 싶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이기거나 지거나 본전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