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승부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KB국민은행 2007한국바둑리그가 6라운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에 쩍하면 나온 무승부를 막기 위해 올해는 '5판 3선승제'로 대회 방식을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는 3 : 0 승부가 자주 나오는 예상치 못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벌써 6번째다. 수학적으로는 영봉승이 나올 확률이 25%이지만 지금까지 32% 정도가 나온 셈.
KB국민은행 2007한국바둑리그 5라운드 3경기 3국
백 : 윤현석 8단(울산 디아채, 4지명 선수)
흑 : 박영훈 9단(전남 대방 노블랜드, 1지명 선수)
장소 : 한국기원 1층 바둑TV스튜디오
날짜 : 2007년 6월 28일
결과 : 265수 끝, 백3집반승
장면 (특별 입단한 윤현석)
윤현석 8단은 올해 입단 19년차 프로기사. 89년에 그는 특별한 케이스로 프로무대에 진출한다. 연구생 시절, 동문수학하던 다른 연구생들을 상대로 '선(先)에 덤3집'을 주고도 높은 승률을 보이자 한국기원은 '굳이 입단대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프로면장을 준 것이다. 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파격적인 결정으로 윤현석처럼 프로에 오른 사람은 전무후무하다.
소개하는 바둑은 울산 디아채 윤현석 8단이 대방 노블랜드 1지명 박영훈 9단을 꺾고 팀 승리에 쐐기를 박은 3경기 3국이다. '대어' 박영훈을 낚는 과정을 감상해 보시라.
백1은 하변을 키우기 위한 사석 작전. 선수를 잡아 실전처럼 백13을 두기 위함이다.
실전진행(너무 깊었다)
반상을 둘러볼 때 하변 삭감이 가장 시급한 시점이다. 문제는 깊이에 있었다. 박영훈 9단은 흑1로 다소 위험해 보이는 선까지 들어가 버렸다.
윤현석 8단은 "기세상 물러설 수 없었죠. 누구라도 백4로 씌워 크게 공격을 했을 겁니다."고 말한다. 이에 흑5는 가뜩이나 위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실착이었다. 재차 백6 씌움을 당하자 흑 일단은 바깥 탈출이 잘 안되는 모습이다. 마땅한 활로를 찾지 못한 박영훈이 일단 우상귀 공격으로 시간을 벌려 하지만 윤현석은 백14로 뒷맛마저 깔끔하게 없애버린다.
참고도1(서로 둘만하다)
결과적으로 흑1 정도가 무난한 삭감이었다. 이것이라면 백2로 지키는 정도. 서로 불만이 없어 보인다. 이후 흑이 우상귀 백 넉점을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공격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참고도2(흑의 바람)
애초 흑1에 물러서는 것은 바둑을 앉아서 지기 쉽다. 흑7까지 흑의 입장에서 너무나 잘 된 그림이다. 바둑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실전처럼 백A로 씌워 크게 공격을 하고 볼 일이다.
참고도3(흑, 최선)
실전에서 흑A로 들여다 본 수가 결정적으로 바둑을 어렵게 만든 실착이었다. 그 수로는 흑1로 밀어 중앙쪽 활로를 찾는 게 정수였다.
물론 백으로부터 쉽게 자유로워지지는 않겠지만 실전처럼 앉아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윤현석 8단은 백6에 붙여 계속 공격해 나갈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참고도4(안에서 못 산다)
실전처럼 봉쇄를 당한 이상, 흑이 안에서 사는 길은 없다. 가령 흑1로 잇는 수가 있어야 하는데 백2에 늘기만 해도 곤란하다. 에워싼 백돌이 워낙 튼튼한 탓에 궁도를 좀 넓힐 수는 있어도, 두집 내고 사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연이 있어 박영훈 9단은 이곳에서 손을 빼고 우상귀 공격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참고도5(뒷맛이 있다)
물론 뒷맛은 남아 있다. 흑1로 끊어 응수를 물은 다음 흑3에 '찔러 총' 하는 뒷맛. 당장 둘 수도 있었다. 허나 요석 흑▲를 죽인 채 꼬리만 움직이는 작전이 과연 좋을까라는 의문은 있다. 게다가 흑돌이 중앙으로 내몰리면서 백한테 크게 시달릴 모습이지 않은가.
다만 이런 뒷맛은 분명 골칫덩어리임엔 틀림없다. 윤현석 8단이 실전에서 중앙을 보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하고도 충분히 좋다고 판단한 것인데, 현명한 선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