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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 하면 한때 ‘실리바둑’의 대명사. 먼저 집을 벌어들이고 나서 타개로 승부를 걸어가는 패턴으로 일류 반열에 올라섰다. 그 바탕에는 정밀한 계산력이 깔려 있다.

위기 탈출의 중책을 띠고 나온 박영훈이 광활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호방한 작전으로 호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꺼져가던 한국팀엔 햇살이 비쳤고 다시금 원기가 돌았다.



제8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제9국
○다카오 신지 9단(일본) ●박영훈 9단(한국)
- 장소 : 부산 농심호텔
- 날짜 : 2006. 11. 26
- 결과 : 211수끝, 흑2집반승




장면 (중원에 그리는 꿈)
전날 끝내기의 힘과 투혼이 빚어낸 역전승으로 펑첸의 6연승을 막아냈던 박영훈. 다카오 신지와는 ‘실리 대항전’이 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큼지막한 모양으로 맞섰다.

▲를 잡아들인 데까지 전체적인 백집이 70여집. 확정가에서 한참 밀리는 흑이 의지할 곳은 중원이다. 가 등의 단순한 에워쌈이 아닌 흑1이 원대한 모양 확장이며, 백2로 응수타진했을 때 흑3 또한 중앙에 힘을 불어넣는 수. 백4의 삭감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수가 아닌 흑5로 짚어가는 한차원 높은 전술이다.






실전진행1 (대범한 발상)
백이 빼앗아간 실리를 보상받기 위해 △를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궁금하던 차에 흑1ㆍ3의 고압책을 구사한 박영훈.

백8 때 9ㆍ11로 강렬하게 밀어가고 19ㆍ21로 싹둑 나가끊었다. 실리 손실쯤은 개의치 않는 생각하기 어려운 대범한 발상. 그 전 15ㆍ17은 세력을 쌓을 때 도움이 되는 민첩한 활용이다.








참고도1 (무책임하다)
흑1은 부분적인 정수이나 발이 느리다. A의 약점을 없앤 백2가 명당 자리. 흑3으로 지키는 건 폭이 좁아 옹졸하다.

백4로 뛰어나가면 흑모양이 지워질 뿐만 아니라 당장 ▲ 두점도 걱정거리. 무책임한 흑1이다.










참고도2 (또다른 그림)
흑1ㆍ3은 실전과 달리 좌상 흑을 살리면서 백이 연결해 가기를 종용하는 수법. 대신 우중앙 흑모양의 폭은 얇아진다.

박영훈은 애초 우변 백을 강하게 압박할 때부터 실전처럼 나가끊는 수를 그려놓은 듯하다.










참고도3 (활용당한 걸로 봤을까)
흑1로 받아주는 것은 의도를 따르는 느낌이어서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리가 부족하면 조바심이 생길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의 박영훈. 단순히 에워싸는 소극적인 수비보다 적극적으로 폭넓게 공격하는 유연한 구상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실전진행2 (우세 가시화)
백7로 좌변 흑을 노려보자 중앙에 한층 공을 들이는 흑8. 백13까지는 내친 걸음이었을까.

A 정도가 아니라 14에 막아 멀찌감치서 노려보는 공격. 여차하면 하변 일대에 집을 짓겠다고 한다. 이 장면에 이르러선 흑의 우세가 드러났다. 박영훈은 2연승 길을 열었고, 일본의 명인ㆍ본인방 다카오 신지는 한국기사들에게 7연패를 당했다.








참고도4 (괴롭힐 시기)
눈에 보이는 것부터 최대한 챙겨들인 실전진행은 다카오 신지의 판단 미스. 미세한 차이로 졌지만 중앙을 크게 죽여서는 이길 재간이 없다.

형세판단의 오류는 무기력한 패배로 직결된다. 좌변의 수단을 남겨놓은 채 백1로 중앙 넉점에 손을 대어 괴롭힐 시기. 흑A로 잡을 리 없겠지만 그것이면 자체로 만족이다.

평소 잘 가지 않던 길. 박영훈은 직접적이 아닌 간접 공격, 거칠지 않은 유연한 호흡으로 2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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