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이 나선 16강전. 살아남은 자는 2명뿐이었다.
첫 상대 징크스가 있는 이창호는 이름 없는 신예에게 일격을 맞았고, 후반이 강한 박영훈은 필승국면을 역전패, 김성룡도 한때 유망했던 내용을 놓쳤다.
LG배 탈환의 사명을 띤 쌍두마차는 ‘보증수표’로 떠오른 이세돌과 예선부터 파죽지세로 솟아오르는 박정상. 7명 중 6명이 8강고지를 점령한 거센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한중전이 된 8강전은 11월에 속행될 예정.
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16강전
○이세돌 9단(한국) ●야마시타 게이고 9단(일본)
- 장소 : 서울 롯데호텔
- 날짜 : 2005. 05. 18
- 결과 : 212수끝, 백불계승
장면 (천국과 지옥)
시작도 싸움, 끝도 싸움. 처음 대면한 두 기사는 호전적 기풍답게 전 판을 누비며 힘을 겨루었다. 곳곳에 엉긴 흑백의 돌들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시간의 압박을 받으며 우상에서부터 서서히 녹아내려 간 야마시타. 경황이 없는 나머지 흑1의 대완착을 범한다. 이윽고 떨어진 백2의 침입. 창졸간에 벌어진 이 2수가 천국과 지옥으로 운명을 갈라놓았다.
실전진행 (흑집이 백집으로)
침입한 백을 포획하는 수단은 없다. 건넘을 차단하는 흑1이지만 백2가 선수. 또한 왼쪽으로 연결하는 수를 봐서 8에 내려서는 수까지 듣는다. 흑7로 방해하더라도 백8로 무조건 삶.
흑집이 나야 할 곳이 백집의 돼서는 계산을 해보나 마나. 흑13, 15는 백대마의 삶을 확인해 보는 수순에 지나지 않는다. 16이 본국의 마지막 수.
참고도1 (주의 사항)
흑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상변 대마. 연결고리가 끊기는 순간 삶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로 차단됐다고 치면 그 즉시 죽음이다. 흑1로 몰아도 백2. 4까지 죽는 궁도이다. 흑1로 A에 두어도 백1로 역시 살지 못한다.
참고도2 (잡히는 맛)
크기로 따진다면 흑1로 막는 수가 최대. 야마시타는 백2로 끊기는 수를 염려했다.
흑3의 손질이 필요할 때(흑3을 두지 않으면 백A～백D로 끊긴다) 백E로 두점이 잡히는 수를 남겨주는 것. 백이 당장 두지는 않겠지만.
참고도3 (백 전멸)
국후 흑1이 호수로 제시됐다. 백의 안형을 위협하면서 그 리듬으로 5의 곳에 돌이 놓이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는 것. 5는 호구 자리. 여기에 흑돌이 있으면 백A부터의 차단은 성립하지 않는다.
백6의 절단도 두렵지 않다. 백이 우하귀에서 사는 틈을 가질 수도 없다. 흑17이면 좌하 방면의 거대한 백말이 전멸한다.
참고도4 (흑 유망)
흑5 때 6쪽을 끊는 변화도 생각된다. 백은 여기 저기를 선수하더라도 결국 16의 보강이 필요하다. 미세한 형세이나 흑쪽에 승산이 높다는 판정.
다만 초읽기에 몰린 야마시타가 흑1부터의 주도면밀한 수순을 찾아내기란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참고도5 (끄떡없는 삶)
최후 백대마의 생사는 흑1, 3으로 공격해도 6까지 살아 있다. A와 B의 곳이 맞보기. 흑3으로 5에 끊어도 백3으로 산다.
초읽기를 탓할까. 시간 안배나 컨디션 조절도 실력의 범주. 승부의 세계는 ‘진공 상태’에서 기량만으로 겨루기는 어렵다. 이세돌은 32강전에서 일본 톱랭커 하네 나오키를 1시간 30분만 사용하고 제압한 데 이어 16강전에서도 1시간 이상을 남겨둔 채 야마시타의 예봉을 꺾었다. 세계무대에서 지는 일을 잊은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