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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라! 땅을 칠까, 하늘을 원망할까.

혈혈단신 적지에서 ‘일당백’의 힘을 내며 마지막 결전의 발걸음을 뗐던 여전사 박지은. 고난을 헤치고 역경을 딛고 우승컵을 부여잡을 찰나 허상에 사로잡혔다. 어이없는 착각. 7천5백만원을 날려버린 덜컥수. 병가상사라지만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질렀다. 영웅탄생의 순간에서 졸지에 원성의 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번의 실수치고는 치러야 할 고통이 혹독하다.
프로이기에.

제3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 최종국
○박지은 5단(한국) ●루이나이웨이 9단(중국)
- 장소 : 상하이 왕바오허 호텔
- 날짜 : 2005. 01. 20
- 결과 : 205수끝, 흑불계승




장면 (어이없는 덜컥수)
초읽기에 접어들면서 한층 파고가 높아가던 361로의 바다. 그 초읽기가 급기야 승부를 좌지우지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좌상. 루이나이이웨이가 시간을 벌어들일 겸 가볍게 끝내기를 해나가는 도중 흑5에 대한 백6이 엄청난 실수. 컴퓨터 화면으로 긴박한 판세를 주시하던 검토진 일동은 “백6과 흑7은 서로 돌이 뒤바뀌었겠지” “기록자의 마우스 미스일 거야”라며 진위 파악에 분주. 그만큼 믿기지 않은 착각이었다. 흑7을 본 박지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참고도1 (불가항력)

돌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백1로 버틸 수 없기 때문에. 흑2, 4로 찔러오면 속수무책이다.
백5로 받으면 패는 되겠지만 어디 패라고 할 수 있는가. 대마의 운명을 담보로 하고 있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참고도2 (엄청난 손해)

패를 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면 백1 이하. 즉 따로 따로 살리는 그림이다.
그러나 해보나 마나한 수순. 좌변이 뚫린 것만으로도 승부가 안 될뿐더러 흑6의 따냄이 커다란 선수끝내기. 또 흑12도 선수여서 중앙 흑대마의 안형도 확보된다.









참고도3 (끝내기 예상도)

백1로 받았으면 백승이 유력했기에 실전의 착각이 더욱 진한 안타까움으로 사무친다.
예상되는 끝내기 수순도. 자세히 보면 우변에서부터 좌하까지 길게 뻗친 흑대마에 두눈이 확실치 않다. 흑4의 가일수가 불가피할 때 백5가 반상최대. 흑은 중앙 백을 6부터 14까지 괴롭히는 정도.
그렇다면 이 끝내기 승부는 어떻게 될까? 1집반, 적게 잡아도 반집은 백이 이긴다는 검토진의 진단이다.




참고도4 (꽃놀이패)

흑은 〈참고도3〉의 4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게 서글프다. 단순 비교로는 우상 한점을 따내는 수가 크지만 백5면 중앙 흑대마가 위협받는다.
백7이 안형을 빼앗는 맥. 나머지 한눈을 패에 의지해야 한다는 건 이야기가 안 된다.









참고도5 (세찬공격)

애석한 장면을 하나 더 짚어보자면 좌하 공방에서 A로 밀지 말고 백1로 공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흑은 자체에서 살기도, 연결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흑2로 단순히 4면 백B, 흑2로 5면 백C. A의 곳은 흑도 함부로 막지 못한다. D에 백돌이 놓이면 E의 차단이 성립하므로.
일이 안 될 작정이었는지 시간연장책을 쓸 곳도 마땅찮았다. 강인한 승부욕만큼 패배의 아픔을 오랫동안 곱씹는 박지은. 술도 잘 못하는 그가 이국땅에서 울분을 어떻게 다스릴지, 행여 슬럼프로 이어지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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