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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종목: 세계대회, 전술: 출혈 없는 승리.
어린왕자에서 스무 살 청년으로 훌쩍 성숙한 박영훈이 또 하나의 세계타이틀 중환배에 올라탔다. 더욱이 결승전에서 보여준 솜씨는 완벽 그 자체. 미미한 빈틈을 찌르며 원사이드 게임으로 마무리지었다. 후지쯔배와 더불어 2관왕. 이쯤되면 ‘약관의 제왕’이라는 찬사도 어색하지 않다.
한편 2000년 춘란배 이후 5년 만에 우승을 갈망했던 왕리청은 마음만 앞섰지 시대의 흐름을 역류시키기에 힘이 모자랐다. 예전의 기백도, 저항력도 보이지 않았다.

제1회 중환배 결승전
○박영훈 9단(한국) ●왕리청 9단(대만)

- 장소 : 대만 위엔산 대반점
- 날짜 : 2005. 01. 15
- 결과 : 292수끝, 백불계승





장면 (당찮은 활용)

‘들여다볼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무심코 들여다본 한수가 흐름을 급전직하 시켰다.

흑1은 지나는 길의 선수활용? 물론 절대적인 활용이다. 왕리청은 가벼운 기분으로 이 수를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짧았다. 찰나의 방심이었다. 프로세계에서 용납되지 않는 방심. 박영훈의 다음 한수를 본 왕리청의 손길이 꽁꽁 얼어붙었다. 본국 최장인 30분 이상이나….






실전진행1 (경과수순)

△로부터 시작된 백의 침입작전은 타개과정에서의 과수로 인해 결국 선봉으로 나섰던 △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런데 왕리청은 백 한점을 거두어 들이지 않고 6으로 틀어막는다. 두터운 수. 아니, 두터울 뿐이지 실속면에서는 현저히 떨어진다. 이윽고 등장한 문제수가 흑10. 흑6이 비틀거림의 시작이었다면 흑10은 중심을 잃고 마는 헛디딤이었다.






참고도1 (현실적 실리)

흑1로 잡지 않은 것이 첫번째 의문. 이 한수로 우하는 20집 이상 가는 알토란 같은 흑집이 확보된다. 애초의 모양에서 20여집이라면 날 만큼 난 큰 집.
백2부터 움직이는 우변쪽의 수단은 흑9까지 처리할 수 있어 현실적인 흑1에 비길 바가 아니다.








참고도2 (흑의 기대)

단순히 백1로 받아줄 거라고 지레짐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당장 흑2, 4로 젖혀잇는 수가 크다.
백이 한점을 살리자니 잇는 모양새가 영 아니고, 방치하자니 한점을 끊어잡히는 큰 수를 남긴다.









실전진행2 (내려섬이 호수)

상대로부터 젖혀이음을 방지하는 백1의 내려섬. 이 수에 의해 왕리청의 백일몽이 깨졌다. 흑2는 눈물 머금은 굴복. 백3으로 모양 좋고 탄탄하게 보강하자 ▲가 상대를 강화시켜준 이적행위가 됐다. 대수롭지 않은 듯해도 판 전체가 기우뚱거릴 만큼 중대한 과실이다.
흑4, 6은 A의 단점을 방비하면서 B의 절단이나 공격을 엿보는 수. 그나저나 14까지 귀는 단 9집의 초가삼간. B의 노림도 없던 일이 돼버렸다. ■부터 흑이 이루어 놓은 바는 무엇인가.




참고도3 (끊을 수 없다)

돌의 체면만을 생각한다면 백1의 내려섬에 흑2로 끊어가야 한다.
백3이 따끔한 일침. 이에 대해 흑이 5로 차단하는 것은 백A로 요석 두점이 떨어져 나가므로 흑4. 백은 5로 귀를 도려내며 살고 흑은 후수로 겨우 연결한 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참고도4 (타당한 활용)

흑1이 타당한 활용. 백2로 이은 모습과 실전진행은 백의 안형이 다르고 힘관계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런 다음 흑3이 상당한 수. 선수는 아니지만 흑A부터(백은 B로 수비하는 정도) △를 취하는 후속 이득을 내포하고 있다. 수순 중 흑3은 C의 곳도 훌륭한 한수. 백도 바짝 긴장해야 할 형세다.

엊그제 이창호를 상대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일까, 그때의 감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걸까. 왕리청의 무기력한 패퇴. 아니, 티끌만큼의 출혈도 없이 최상의 병법으로 완승을 일궈낸 박영훈의 솜씨에 칭송을 보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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