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아쉬움이 남는 한판. 승리를 도둑 맞은 듯한 허망함. 그래도 소녀의 투혼은 눈부셨다.
열일곱살 새내기 김은선. 당초 선봉으로 내정됐으나 감기 몸살로 인해 베이징 1라운드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그. 대표팀의 막내둥이 김은선이 큰일을 이룩하기 일보직전에서 분한 눈물을 흘렸다.
믿기지 않는 패배. 그래서 더 큰 아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홈그라운드 서울에서 반전을 노렸던 한국은 한걸음 더 난국으로 빠져들었고, 예꾸이는 쑥스러운 승점을 보태며 4승째를 이어갔다. 중국 4승, 한국 1승, 일본 1승.
제3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 제6국
○예꾸이 5단(중국) ●김은선 초단(한국)
- 장소 : 바둑TV 스튜디오
- 날짜 : 2004. 12. 20
- 결과 : 296수끝, 백2집반승
장면 (끝낼 기회)
세계대회에 갓 발을 내디딘 김은선. 부담감이 클 텐데 3연승 중인 예꾸이의 기세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애석한 점은 끝낼 기회에서 연거푸 결정타를 놓친 것.
흑1에 백2, 흑3에 백4. 지금 백의 형세가 얼마나 비관적인지를 대변해 주는 수들이다. 또 한번 끝내버릴 장면을 맞이했다.
참고도1 (앉아서 진다)
백이 황급히 승부수를 날린 건 불가피한 선택이다. 좌하귀를 돌보는 태도는 뒷짐 지고 먼산 쳐다보는 격. 설령 남의 일이라도 이처럼 태연자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알기 쉽게 흑3으로 말뚝을 받기만 하더라도 반면15집 정도는 흑이 남는다.
참고도2 (얽기 작전)
흑은 다양한 칼자루를 쥐고 있다. 우선 위쪽 백도 약하므로 과감하게 1, 3으로 가르고 나가는 강공법. 일종의 얽기 작전으로, 흑A가 선수인 점도 믿음직스러운 응원군이다.
큰 이변이 없는한 흑승이 확실시되는 유리한 상황에서 자칫 복잡해질 소지가 있다면 이 그림은 접어두어도 좋다.
실전진행 (최강이지만)
김은선이 골라잡은 칼은 흑3의 붙임. 이 수 또한 나무랄 데 없다.
하변을 관통시켜 주어서는 어차피 부족하므로 예꾸이는 6, 8로 필사적인 흔들기. 여기서 흑9가 최강이기는 하나 국면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백10 이하 흑진을 헤집고 산 성과가 크다. 애초 20여집 기대됐던 흑집이었건만 백집이 생긴 것을 제하면 거의 무가(無家)나 다름없다.
참고도3 (간명한 처리)
<실전진행> 흑9로는 1을 선수하고 나서 3으로 내려섰으면 간명하게 매듭지을 수 있었다. 이랬으면 백이 하변에서 살기 어렵다.
그러므로 4, 6으로 빵따냄을 하고 흑은 5, 7로 하변을 사수하는 절충. 흑은 너끈한 승리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참고도4 (당당한 수)
살아있는 우하를 막은 수(실전진행 흑17)도 한가로웠다. 흑1로 파고들거나 A로 정비하는 것이 당당한 한수.
실전에서 빌미를 제공했어도 아직은 유망한 형세였다. 그러나 턱밑까지 추격을 당한 심리적 불안감에다 초읽기의 압박. 끝내기 실수가 꼬리를 물며 끝내 역전을 허용했다.
패배를 확인한 김은선은 복기도 마다한 채 세면장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울분을 삭힐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