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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바둑의 최대 강점 중의 하나가 수를 내는 탁월한 능력. 무(無)에서 유(有)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재능은 따라올 자가 없다.
1국에서 묘수 두방으로 간단히 제쳤던 이세돌이 2국에서는 교묘한 시기에 터트린 붙임 두방으로 왕시의 혼을 빼놓으며 2억원을 움켜쥐었다. 삼성화재배 첫 패권! 작년 후지쯔배 이후 국내외 기전을 통틀어 17개월 만에 안은 우승컵이다. 아울러 한중 대회전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함으로써 기선제압에 큰 힘을 보탰다. 중국과의 세계대회 결승 전적도 13승 1패.

제9회 삼성화재배 결승5번기 제2국
○이세돌 9단 ●왕시 5단

- 장소 : 삼성화재 본사
- 날짜 : 2004. 12. 09
- 결과 : 276수끝, 백불계승




장면1 (깜짝 붙임)

점심 휴식시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이 왕시의 페이스였다면 돌이 맞부치는 접근전에 돌입한 그 이후는 이세돌의 독무대. 연거푸 뿜어대는 매서운 손놀림에 왕시는 차츰 부동심을 잃어갔다.
집차지에서 약간 뒤진 백. 만회할 방법이 궁금한 차에 이세돌은 엷음을 찌르는 것으로 단서를 구했다. 백4의 붙임. 가쪽이라면 몰라도 보통사람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곳. 이세돌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착점이다. 온갖 감탄사가 검토실을 가득 메웠다.





참고도1 (반발 불가)

2선에 붙여간 맥은 시의적절한 때에 나온 적시타. 그렇지 않아도 중앙에 흩어져 있는 돌들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흑은 반발할 수 없는 입장이다.
흑1은 미끼를 무는 격. 마음이 푸근한 상태인 왕시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백4로 한방 알리고 6으로 다그치면 흑일단은 별안간 바람 앞의 촛불 신세.







실전진행1 (포인트 획득)

응수가 고민스러운 왕시. 결국 이세돌의 번뜩이는 붙임은 흑1, 3의 양보를 받아냈다. 포인트 획득.
그러나 바짝 바람을 일으킨 이세돌의 손길은 이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참고도2 (끝내기 승부)

지금 국면의 초점은 좌변 못지 않게 우변도 중요하다. 흑이 A를 차지하느냐, 백이 5에 선행하느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
평범하게 두어나간다면 백1, 3을 선수하고 백5. 좌변에서 벌어들였으므로 이제는 끝내기에서 승부를 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장면2 (두번째 붙임)

백1, 또 한번 작렬하는 붙임이다. 승리가 확실치 않는 길을 들어서기보다 기어코 승부를 보겠다는 강인한 태도. 과연 이세돌이다.
유리한 바둑을 닦는 솜씨라든가 침착성에서 이창호에 버금간다는 평을 듣는 왕시. 그런 그도 연속 두번의 붙임에 심기가 흔들린다.









실전진행2 (분위기 반전)

사실 두번째 붙임은 과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장면2>흑6이 선수여서 백가, 흑나, 백다로 끊는 수단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왕시의 놀란 가슴은 3, 5의 실착을 저지른다. A로 정비했으면 될 것을 두텁게 처리하려다가 도리어 화근을 자초했다. 찬스를 포착한 이세돌은 석점을 버림돌로 이용하며 눈깜짝할 사이에 좌상 석점을 크게 포획했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열세를 뒤집고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참고도3 (석점 제공)

<실전진행2> 흑7는 단순히 본도 1로 막을 경우 백2 이하 석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염려한 수. 좌변 백은 흑9로 두더라도 백A, 흑B, 백C로 반쪽이 산다. 계속해서 좌변 위쪽 다섯점을 연결하는 수와 우변 D의 곳이 맞보기.
따라서 흑은 아예 공배를 메우지 말고 <실전진행2>의 시점에서 잠자코 A의 곳을 보강했으면 별 탈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참고도4 (엎질러진 물)

이미 일을 망가뜨린 흑이 좌상을 살려내는 방도는 없다. 흑1로 이어봤자 백2～6. 흑이 두눈을 장만하기에는 백의 그물망이 너무 튼튼하다.
재치 넘치는 이세돌바둑의 묘미를 만끽한 한판. 혼자 외롭게 4강에 남았던 이세돌은 중국숲을 모조리 헤치며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반면 2000년 LG배 이후 4년반 만의 세계정복을 신병기 왕시에 의지하려 했던 중국은 또다시 공한증을 절감하며 땅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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