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우승상금(5천만원)이 걸린 LG정유배는 이창호의 아성. 8기 역사 동안 4차례나 패권을 차지한 그다. 그것도 타이틀홀더일지라도 본선토너먼트에 나서는 선수권전 시스템에서. 더욱이 4번의 결승전은 모두 3-0 퍼펙트 승리. 요컨대 LG정유배 결승5번기에서 단한번도 패하지 않고 12연승을 거둔 것이다.
이번기 역시 가공할 파워로 매조지했다. 일류끼리의 맞대결한 ‘별들의 전쟁’에서 15전 전승의 고공비행!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기록제조기’에 한 획을 보태는 이색기록이다.
제9기 LG정유배 결승5번기 제3국
○박영훈 9단 ●이창호 9단
- 장소 : 전북 부안
- 날짜 : 2004. 11. 06
- 결과 : 264수끝, 흑2집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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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변칙 행마)
초반 좌상에서 신형을 선보였던 박영훈, 이번에는 우하에서 상궤를 벗어난 수를 들고나왔다.
백1의 저공비행과 흑2의 치받음은 이 한수. 이어서 등장한 백3이 프로바둑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전진 기어. 현재의 형세판단이 바탕에 깔린 태도인데, 상대에게 세력을 제공해도 값지게 쓰일 곳이 마땅치 않으니 실속을 챙기자는 뜻이다. 흑8까지는 당연한 압박.
참고도1 (평범한 수로는 어렵다)
백1로 바깥쪽으로 물러서고 3으로 벌리면 보통. 눈이 따갑도록 수많은 실전에서 봐온 수법이다.
그러나 박영훈은 이 정도로는 승리한다는 것이 먼나라 이야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검토진 역시 마찬가지 생각. 이를 테면 조금이라도 변화를 갈구한 것이 실전의 변칙 행마다.
참고도2 (무기력)
단순히 귀에서 사는 것만이라면 간단하다. 백1로 달리고 나서 3, 5로 이으면 된다. 흑은 6의 손질이 필요. 7까지 쉽게 안정한다.
그러나 흑8(강하게 둔다면 A로 공격)을 당하면 앉아서 지는 꼴. 큰 차이로 진다. 수순 중 백3으로 B, 흑C, 백7의 삶도 오십보 백보.
실전진행1 (경솔한 움직임)
박영훈은 백1을 활용하고 나서 3, 5로 움직였는데 경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흑8로 석점머리를 자청해서 얻어맞았기 때문.
백9부터 그물망에 흠집을 내려 했으나 실익이 없다. 결국 21로 삶을 찾기 위해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참고도3 (응수타진)
마지막으로 기회를 부여잡을 수도 있는 자리인 만큼 깊은 수읽기가 아쉬웠다.
우변쪽으로 움직이기 전에 먼저 3으로 치받아서 응수를 물어볼 시기. 흑4로 받으면 그때 실전처럼 백5, 7로 밀어간다. 만일 흑10으로 젖혀막았다가는 이하 백21로 끊겨서 낭패.
실전진행1 (결정타)
백의 옆구리를 기대어 간 흑1이 호착. 백A로 찝는 수를 방비하며 7의 곳 끊음을 노리고 있다.
백2의 삶이 불가피할 때 이창호는 긴 시간의 확인작업을 거친 다음 7로 끊는 결정타를 날렸다. 백은 요석이지만 석점을 움직이기 어려운 처지. 21까지는 그나마 최선책이지만 귀는 쌈지를 뜬 괴로운 삶.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참고도4 (흑을 잡을 수 없다)
흑1에 의해 석점을 살리기 곤란하다는 것을 이 그림이 설명해준다. 흑3이 타이밍. 이에 대해 백5와 흑4로 서로 빵따내는 절충은 흑의 큰 이득. 그렇다고 백4로 이으면 흑5부터 빠져나가 버린다. 어쩌면 박영훈은 흑7의 빈삼각으로 받는 수를 깜빡했는지도 모른다(흑7로 8은 백12, 흑13, 백14, 흑15 때 백19의 장문이 성립한다).
참고도5 (불가항력)
흑의 끊음에 대해 백2, 4의 버팀도 불가항력이다. 백10은 흑11, 13. 또 백10으로 11은 흑A, 백12 때 흑12로 끊겨서 끝장이다.
박영훈으로서는 주특기인 ‘선 실리, 후 타개’의 패턴으로 이끌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시리즈였다. 반면 이창호는 성숙된 노련미로 위협적인 신진세력의 일각에 철퇴를 가했다. 3관왕 최철한이 바싹 추격해오는 급박한 판도에서 최대타이틀을 사수한 의미도 크다. 통산 120번째 타이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