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9월은 세계대회 시즌. 도요타배에서 점화됐던 불꽃이 현해탄을 너머 9월 첫날부터 삼성화재배로 뜨겁게 옮겨 붙었다.
삼성화재배 역시 한국과 중국, 2파전의 대결구도. 16명이 출장한 한국에 중국은 13명의 막강 멤버로 맞섰다. 겨우 3명만이 얼굴을 내민 일본은 양강의 틈새를 공략하기가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와일드 카드 조치훈이 예상밖의 우승컵을 차지했듯이 이변의 그림자는 어느 곳이든지 항상 따라다닌다. 그런 변수 때문에 지켜보는 이들은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제9회 삼성화재배 32강전
○왕위후이 7단 ●조훈현 9단
- 장소 : 삼성화재 유성연수원
- 날짜 : 2004. 09. 01
- 결과 : 296수끝, 흑2집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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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성급한 패따냄)
조훈현은 삼성화재배 2연패에 빛나는 얼굴. 거기에 견주면 왕위후이는 적수가 못 되지만 그도 5년연속 본선무대에 등장하는 중국의 기대주. 두 기사는 7회 대회 준결승전에서 만나 조훈현이 승리했었다.
평탄하게 선착의 효를 이끌어가던 흐름에 흑5가 리듬을 깨뜨렸다. 백6으로 가르고 들어가니 상하의 흑이 순식간에 엷어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 성급한 패따냄으로 인해 흑은 끝까지 괴로움을 짊어지고 다닌다.
참고도1 (평탄한 흐름)
조훈현은 마치 반사적으로 패를 따내다시피 했는데 흑2로 막지 않은 건 두고 두고 의문이다. 이것으로 좋은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좌상은 피차 부담이 큰 패. 흑은 물론이고 백으로서도 섣불리 패를 확대하기 어렵다. 다행히 흑은 앞서 ▲로 숨구멍을 트여 놓았기 때문에 커다란 타격은 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전진행1 (과속행마)
흑1은 일단 상변 백을 압박하며 좌변의 엷음을 보강해 보려는 심산. 그러나 효과는 별무신통이다. 흑3을 하나 얻어낸 정도. 이것으로는 엷음이 커버되지 않는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조훈현. 급기야 흑5의 과속 행마로 이어지며 국면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장면2 (흔들기의 제왕)
치열한 반발과 눈부신 버티기 정신. 쉰둘의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동분서주하며 투혼을 불사르던 조훈현이 마침내 실낱 같은 역전 실마리를 찾았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좌변 흑대마는 7까지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비세. 왕위후이는 6으로 약점을 단속하고 8의 큰끝내기를 차지하면 승리는 요지부동이라고 굳게 믿었을 터. 그런 형세판단은 그르지 않았다. 하지만 백8은 승부를 연장시킨 죄값까지 덮어주지는 못했다. 조훈현은 천하가 알아주는 흔들기의 제왕. 흑9로 내려서며 마지막 시빗거리를 구하러 나섰다.
참고도2 (보강은 절대)
〈장면2〉 백6의 보강은 불가피하다. 방치하면 패에 상관없이 흑1로 끼우는 노림이 발동한다. 흑7까지로 돌려친 다음 9, 11로 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패모양인데 유리한 백으로서는 이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장면2〉 백8은 눈앞에 보이는 크기만을 좇은 끝내기. 좌상 가의 곳을 젖히는 수가 깨끗한 마무리였고, 그랬더라면 당당하게 16강고지에 올라섰을 것이다.
실전진행2 (단수를 깜빡하다)
▲부터의 효과로 다시 흑1로 석점을 잡는 수단이 부활했다. 차이가 좀더 좁혀졌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황제의 다그침과 점차 줄어드는 격차, 거기다가 초읽기의 압박. 3중고에 시달리던 28살 왕위후이는 극도로 혼돈상태에 빠지며 실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난데없이 백6을 활용하려고 한 것이 통탄할 패착. 흑7이 선수가 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참고도3 (대역전극)
잠자코 백1로 두점을 수중에 넣었으면 박빙이지만 백의 우세에는 변함없는 형세. 잡을 수 있던 흑돌을 거꾸로 백돌이 잡히며 살려준 것은 안팎으로 큰 차. 이후 ▲의 곳 패도 이긴 흑은 믿기지 않는 대역전승을 수확했다.
아직 덜 여문 왕위후이. 그보다도 불 같은 조훈현의 승부근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근래 부진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조훈현. 그래도 그는 불멸의 바둑황제. 예서 멈출 수 없다. 신도 돕지 않는가. 황제여 영원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