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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이세돌 최철한 송태곤.
누구 하나 빼놓을 사람 없이 쟁쟁한 얼굴들이다. 이 6명의 태극전사가 일본열도로 날아갔다. 우승상금 3억원이 걸린 도요타ㆍ덴소배를 품속에 넣기 위해서다.

원년대회에서 이창호가 우승했던 한국은 2연속 패권에 나선다. 비록 최고참 조훈현이 1회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최강의 전력임에는 변함이 없다.

제2회 도요타ㆍ덴소배 16강전
○구리 7단 ●이창호 9단

- 장소 : 일본기원
- 날짜 : 2004. 08. 23
-결과 : 227수끝, 흑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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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폭파작전)

대회 초반에 결승전을 방불케하는 빅카드가 성사됐다. 이창호와 구리(古力)는 각각 한국과 중국의 랭킹1위에 올라있는 에이스. 개인전이지만 국가대항전의 색채가 진하다. 공식대국에서 첫 만남.
구리가 초반부터 집을 챙기는 바람에 이창호는 보기 드물게 모양바둑으로 맞서게 됐다. 구리의 속셈은 이랬다. 실리로 선행한 다음 모양을 깨는 데 승부를 걸겠다는…. 그런 전략에 흑1이 맞장구를 쳐준 느낌이 없지 않다. 백2부터 구리의 폭파작전이 가시화된다.




참고도1 (모양 확대)

<장면1> 흑1은 좌상의 맛을 엿본 수. 살짝 응수를 타진한 ▲에 상대가 △로 세게 나오자 이창호는 애써 활용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대꾸를 안 하니 머쓱해졌다(기착점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이창호. 사실 그 수는 나중에 제구실을 한다).
좌상은 맛이 있어도 지엽적인 곳. 하변의 재산을 증식시켜야 하는 흑이다. 흑1이 명당. 일당백의 위용이지 않은가!






실전진행1 (흑진 초토화)

때이르게 사활이 승부로 떠올랐다. 흑이 백을 잡으면 승부끝이나 다름없고, 백도 흑의 보물창고를 대과없이 폭파하면 절대우세가 보장된다.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나온 구리의 극단적인 수법은 결국 팡파르를 울린다.
흑1로 출구를 봉쇄했을 때 백2가 빛나는 맥. 흑3에는 백4로 집어넣어 패로 타개한다. 이 공방에서 좌변 백진이 깨진 손실은 25집 가량. 대신 하변 흑진을 초토화시킨 전과는 손실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게다가 선수마저 뽑아 14로 못질.




참고도2 (패는 불가피)

△의 호수를 당한 흑은 손길이 뚝 끊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실전처럼 패로 가져 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
욕심을 내서 1로 패를 방비하면 백2에 응수두절. 6까지 살려주고 나면 속이 텅빈 껍데기만 짊어질 뿐이다.









참고도3 (한 팻감 부족)

흑의 희망이었던 하변이 무참히 짓밟힌 순간 검토실 곳곳에서 절망적인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보상받을 길도 마땅찮다.
자체팻감은 백쪽이 하나 더 많다. 수순을 열거해 보면 14로 따냈을 때 흑에게는 더이상 받쳐줄 팻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실전의 A나 B로 팻감을 쓰는 정도인데 어느 쪽이 됐든 백은 불청할 것이다.









장면2 (역전의 서곡)

하변이 거덜난 모습은 관전자의 입장에서도 적잖이 안타깝다. 직접 당한 쪽은 오죽하랴.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됐을 법한데 이창호는 냉철했다.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짐을 생각할 때 쉬이 체념할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기어코 믿기지 않는 역전극을 연출한다. 구리의 안일한 운영이 한몫을 거들긴 했어도 새삼스레 이창호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흑1이 역전드라마의 서막. 9로 건너붙이며 열기가 점차 무르익어 갔다.





실전진행2 (황무지를 옥토로)

수순을 조금 건너뛰어서 황무지가 옥토로 변하는 대목. 고스란히 죽은 줄로만 여겨졌던 좌상귀 포로들을 교묘하게 버림돌로 활용하는 솜씨는 당대 일류의 그것이었다. 구리도 미처 못 봤다. 간파했더라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지 않았을 터.
귀를 모조리 놓고 따내게 만든 데다 패 모양. 뿐만 아니라 13까지 20여집을 건설하며 이창호가 연출한 역전드라마는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수순 중 백8을 생략하면 흑A, 백B, 흑C가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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