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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자물쇠를 자랑하던 이창호가 종반에서 연거푸 사고(思考) 회로에 이상을 일으키며 막다른 길목에 처했다. 뜻밖의 ‘사고(事故)’다.
좀체 볼 수 없던 느슨한 종반, 흐트러진 마음가짐. 주변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 심신에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데 그런 부류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어느덧 서른에 접어든 나이, 무상한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게 됐는지….
반면 2002년 KTF배 이후 국내기전 왕관을 쓰지 못했던 이세돌은 모처럼 무관탈출의 좋은 토대를 마련했다.

제38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4국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 장소 : 한국기원
- 날짜 : 2004. 08. 04
- 결과 : 84수끝, 백불계승




장면1 (결정적 패인)

좌상 정석선택에서 의문점을 드러내는 등 조금씩 밀리던 흑이 결정적으로 하변 공방에서 대세를 그르치는 착오를 범한다.
발단은 백의 옆구리에 갖다붙f인 흑1. 언뜻 맥점 같기도 하는 이 수는 그러나, 이창호의 섬세한 수읽기에 체면치레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참고도1 (희망사항)

▲로 붙여간 수는, 가령 백1로 젖혀막는다면 2부터 하변 흑일단의 안형에 보탬을 주기 위한 뜻으로 해석된다.
9까지 선수로 다소나마 숨결을 불어넣은 다음 10의 호처에 손을 뻗칠 수 있다.










참고도2 (수가 나는 모습)

백1은 흑2로 젖혀올렸을 때가 고민거리. 이 수가 성가시다. 단순히 백3으로 느는 것은 흑4에서 6을 당해 기분 나쁜 모습. 굳히 복잡한 변화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어떻게든 수가 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천하의 이창호는 여기서 관전자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아주 멋진 원투 펀치를 날린다.







실전진행 (기막힌 타이밍)

일단 백1로 치받고, 흑2일 때 백3으로 들여다본 수가 기막힌 타이밍에 등장한 멋진 한수였다. 이쪽 백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참고도3>의 반발수단을 방비하는 효과가 크다. 컴퓨터보다 정밀한 이창호의 수읽기가 반상을 금빛으로 물들인 대목.
그러고 나서 5, 7로 정돈하니 도대체 흑은 무엇을 했는지 모를 지경이다. 다소 어설펐던 백진이 말끔히 정돈됐다.






참고도3 (자연스러운 호구이음)

▲의 젖힘에 대해 백은 1로 끊어잡기가 쉽지 않다. 패로 버텨 오는 흑4가 성가시기 때문.
그런 사연이 있는 곳이었는데 적시에 터트린 △의 활용으로 이제 백9의 호구이음이 자연스러운 모양이 된다. 흑은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 그리고 흑4로 5는 백A로 가르고 나가 양곤마 신세.








참고도4 (잇는 타이밍)

지나간 이야기지만 <장면1> ▲로 이은 시기도 나빴다. △로 변신할 여지를 제공했기 때문인데 우하의 정석과정에서 둘 기회가 있었고, 늦어도 백1의 시점에서도 둘 수 있었던 수. 그때였으면 백도 3～7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 실전과 달리 우상 흑진의 깊이가 달라진다(흑A도 선수).










장면2 (돌연 투료)

이세돌이 던진 장면. 흑1로 늘어 백의 침입을 유도, 공격의 포문을 열며 실마리를 구할 것으로 여긴 순간 백4에서 돌연 돌을 거두어 들였다. 이때가 오후대국이 재개된 2시를 막 넘긴 시각. 먼저 입실해 있던 이세돌이 이창호가 착석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패배를 선언했다. 황금대결의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 빼곡히 모여들었던 검토진들은 한결같이 어안이 벙벙한 분위기.







참고도5 (상심의 여파)

던진 시점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과연 던질 수밖에 없었는가에도 의문이 든다. 적어도 흑1로 씌워서 결판을 봐야 하지 않았을까(백A 등도 있어 잡기 힘들겠지만).
다만 재개한 직후에 던진 것은 1시간의 점심휴식 동안 마음의 정리를 한 것으로 추정되고, 던져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는 냉정한 평가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변 공방에서 입은 흑의 손실은 5집 이상. 불리한 바둑을 끌려가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때로는 누군가가 대신 종료 벨을 울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자존심이 센 이세돌로서는 하변의 실패에 상심이 컸을 것이다.

▶바둑판이 안보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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