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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와 이세돌이 만났다. 작년 LG배 결승 이후 1년 2개월여 만의 타이틀전이다. 무대는 왕위전. 이창호가 8년 연속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아성이다. 이창호로서는 아직 아련히 남아 있는 그때의 아픔을 통쾌한 설욕으로 말끔히 지우고 싶을 게고, 이세돌로서도 최근 좁아진 입지를 이창호라는 거물을 통해서 다시금 용솟음치고픈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도전기는 5번기. 황금대결의 황금트로피는 누구 품속에 안길까?

제39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1국
백 : 이세돌 9단
흑 : 이창호 9단
장소 : 제주도 목관아지
날짜 : 2004. 07. 16
결과 : 270수끝, 백3집반승



장면1 ((리드 이끈 변화구)

왕위전에서는 2년 만의 맞대결. 37기 때는 풀세트 접전 끝에 이세돌이 간발의 차로 무릎을 꿇었다. 골인지점을 눈앞에 두고 역전패한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좌상에서 손을 떼서 1에서 3으로 붙여간 것이 이창호의 구상. 낯선 길로 접어드는 시발점이요, 흑이 초반의 리드를 잡는 주춧돌이 됐다.










참고도1 (맹목적인 수순)

실전은 복잡다단한 길. 간명한 수법이 없는 건 아니다. 위쪽을 잇는 흑1이 그것인데 백8까지는 널리 알려진 정석. 흑은 두터움을 쌓고 백은 실리를 차지하는 갈림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면의 요모조모를 따져볼 때 맹목적인 수순 나열에 불과하다. 백8을 놓이게 해 자청해서 ▲가 공격목표물로 전락한 셈. 프로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그림이다.






참고도2 (어정쩡한 자세)

흑1도 정석의 한 갈래. 가장 평범한 이 변화 또한 흑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백4로 달리면 상변 흑 석점이 어정쩡한 자세. 좌상에 견고한 백모양이 포진하고 있어 진로를 헤쳐나가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역시 배석 관계상 채택하기 힘들다.









실전진행1 (양쪽을 둔 모습)

백1이 절대일 때 흑2의 막음이 이창호가 그려놓았던 수읽기. 그것은 4, 6으로 우변을 벌려가는 기반이 된다. 이러고 보니 상변과 우변을 다 둔 모습. 동시에 ▲의 가치도 살아나고 있다.
흑12은 백A의 화근을 방비하는 수비. 상변 흑의 허술함은 아래쪽의 백과 동행하며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참고도3 (축)

▲는 축이 유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수다.
축이란 흑4로 끊은 데서부터 12로 몰아가는 것을 말한다. 도중 여유를 주지 않고 6, 8로 타이트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중요. 따라서 백1로 막는 수는 없다.










장면2 (이세돌의 승부수)

상대에게 두드러진 실수가 없었음에도 리드를 잡아나가는 기술이 이창호의 역량. 모두 흑의 우세로 판정하는 데다 ‘종반의 마술사’ 이창호이기에 흑승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유리할 때 슬며시 움트는 마음의 해이. 결국 화를 불렀다.
흑2를 불청하고 백3으로 첨벙 뛰어든 수가 다급한 처지를 웅변해주는 이세돌의 승부수!









실전진행2 (느슨한 처리)

흑1로 막고 백2 때 3으로 끊어잡은 것이 이창호가 주장한 길. 이 정도로도 독이 오른 상대의 칼날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여긴 듯했다.
물론 이길 수 있다면 이보다 간단명료한 처리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끝장을 못낸 것이 기어코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으니….







참고도4 (적극책이 아쉽다)

흑3으로 머리를 내밀어야 하지 않았을까. 백4는 당연한 버티기. 이 바꿔치기는 변화의 한 부분이지만 흑에게 승산이 높다. 〈실전진행2〉는 나중에 백A를 얻어맞아 중앙에 도톰한 집을 내주면서 조여붙임을 당한 것이 감점.
이밖에도 ▲의 움직임을 노리는 등 다그칠 장면이 적지 않았으나 느슨한 태도로 말미암아 야금야금 역전을 허용했다. 완벽주의자 이창호답지 않은 안일한 종반, 미미한 틈새를 연거푸 찔러간 이세돌의 힘을 느끼게 해준 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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