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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와 린하이펑. 얼마만의 재회인가. 올드팬들은 지난 1992년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어린 이창호가 산전수전 다 겪은 린하이펑을 뉘고 최연소 세계챔프에 올랐던 감동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리라. 그후 이창호는 세계1인자로 우뚝 섰고, 린하이펑은 이순(耳順)을 넘겨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한국의 5연패냐 일본의 첫 우승이냐, 양웅의 손끝에 달려 있다.

제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
○린하이펑(林海峰) 9단 ●이창호 9단
- 장소 : 상하이 왕바오허 호텔
- 날짜 : 2004. 02. 14
- 결과 : 145수끝, 흑불계승




장면1 (린하이펑의 파내기)

두 기사의 기풍대로 초반은 차분한 집바둑의 흐름. 다만 흑으로서는 껴붙여 있는 백 한점(15의 위)이 성가신 존재다.
이창호의 흑1은 그에 대한 간접보강. 그런가 하면 린하이펑의 백2가 흑1을 절단하는 수와 하변 흑진의 맛을 노리는 다목적 착점. 흑은 3쪽을 방비했고, 백은 4부터 목적대로 파내기에 성공했다. 린하이펑의 기량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고도1 (절에 간 색시)

백△에 대해 흑1로 얌전하게 지키기는 싫은 곳이다. 그것이면 백2로 건너붙이는 상용의 맥이 준비돼 있다. 이하 8까지 틀어막혀서는 흑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또 백2로는 A에 두어 흑B 때 백3으로 ▲를 차단하는 수단도 가능하다.










장면2 (이창호의 공격)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따르기 마련. 백은 흑집을 도려낸 대신 엷어졌다. 따라서 흑으로서는 그 엷음을 어떻게 추궁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창호는 흑1로 에너지를 충전한 후 3으로 늘어섰다. 뭉툭한 이 수가 실은 최강의 공격으로 백의 허리를 끊고 있다.











장면3 (평정을 잃다)

모처럼 보는 이창호의 공격이다. 공격 효과는 우중앙에서 나타나고 있다. 당초 ‘공동경비구역’처럼 보였던 이 일대가 차츰 흑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신중하기로 소문난 린하이펑, 상대가 서서히 조여오자 그만 마음의 평정을 잃고 만다.
백1로 승부를 서두른 수가 그것. 가의 곳에 뛰어두면 무난하지만 조금이라도 흑모양을 압박하려고 한 것인데….







실전진행1 (단호한 절단)

흑1, 3으로 절단한 것이 단호하다. 주위는 백보다 흑의 발언권이 강한 데다 아래쪽 백도 미생이어서 이 싸움은 아무래도 백이 곤란할 것 같다. 물론 린하이펑도 생각하지 않은 바는 아닐 것이다.
백6부터 린하이펑의 본색이 드러난다. 위쪽은 희생하더라도 12로 씌워서 중앙 흑 다섯점을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흑의 핀치일까.







참고도2 (싸움이 안 된다)

흑1에서 3으로 움직이는 것은 잘 안 된다. 백4, 6으로 끊기면 흑에게 마땅한 대응수가 보이지 않는다. 흑7로 끊어서 싸워볼 도리밖에 없는데 백10이 선수여서 흑의 요석 두점이 장문으로 잡혀 버린다.










실전진행2 (마늘모가 승착)

초읽기에 몰린 이창호는 1, 3으로 시간을 벌며 수읽기에 공을 들인 후 5의 마늘모붙임이 회심의 펀치. 이 바둑을 승리로 이끈 승착이 됐다.
직접적인 대응책을 잃은 린하이펑은 6으로로 후진 기어. 그러나 흑7로 머리를 들이밀자 역습의 신호탄으로 쏘아올렸던 백△들이 도리어 추풍낙엽으로 변하고 말았다.







참고도3 (흑의 1수 승리)

흑▲에 대해 백이 차단하는 수가 없음을 이 참고도가 확인시켜 준다. 흑2에 백3, 5로 둘 수밖에 없는데 흑8, 10으로 끊겨서 이 수상전은 백이 이기지 못한다.
든든한 마무리 이창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상대가 제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이중허리라지만 ‘국보’ 이창호에 견줄 바는 못 됐다. 장하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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