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계대회가 안 그러하랴마는 한국세가 한층 더 힘을 뽐내고 있는 LG배. 이번기도 작년에 이어 준결승전은 한국기사끼리의 ‘집안잔치’가 됐다. 더욱이 이창호-원성진 전은 작년의 재판(再版). ‘잘나가는 송아지’ 원성진으로서는 ‘영웅’이 될 수 있는 무대인 데 비해 이창호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다.
제8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 이창호 9단 / ● 원성진 5단)
- 장소 : 제주 롯데호텔
- 날짜 : 2004.02.03
- 결과 : 210수끝, 백불계승
장면1 (잽, 하나)
이창호의 바둑은 뚜렷한 승착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본국도 그중의 하나로, 보이지 않는 포인트를 축적하며 완승을 거둔다.
백1이 노련한 이창호의 잽. 다소 너른 백의 틈새를 찌르고 싶은 충돌이 들기도 하건만 원성진은 순순히 2, 4로 움츠리고 만다. 최강자의 무언의 힘에 눌린 뒷걸음질.
장면2 (잽, 둘)
우상 화점의 옆구리를 붙여간 백1이 또다시 등장한 이창호의 잽. △의 벽이 생겨, 상변 ▲가 고립될까봐 염려했을까. 흑2로 바깥쪽에서 막은 것이 나약한 응수. 이하 9까지 일련의 정석수순으로 귀의 임자는 백으로 바뀌었다. 원성진은 두터움을 바탕으로 10부터 압박하며 만회하려 했으나 이창호를 상대로 공격 포인트를 따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 재차 11로 꼬부리자 백은 일찌감치 4귀생하며 실리상의 우위를 점했다.
장면3 (잽, 셋)
백3은 대마의 안정을 도모한 수. 물론 정밀한 형세판단이 뒷받침돼 있다. 흑4로 막히는 수가 아프지만 백5가 끝내기의 잽. 실리가 부족한 흑이 6으로 막을 도리밖에 없을 때 백7의 붙임이 일련의 맥점이다. 백9까지 벌어들이고 11로 흑모양을 깨뜨리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참고도1 (흑, 소탐대실)
백△의 붙임에 대해 흑1로 젖혀나가는 반발은 없다. 백2, 4로 공작을 거친 후 6에 끊으면 이하는 일방통행의 진행. 흑이 조그만 것을 욕심내다 더 큰 것을 잃은 꼴이다.
장면4 (잽, 넷)
백이 너끈하게 우세한 국면에서 1로 찝은 수가 상대방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확 끼얹는 끝내기의 잽 2탄. 완벽한 승리를 확인시키는 결정타였다. 백5에 한점을 떼어주고 흑6, 8로 후수로 굴복하는 모습을 보라. 앞이 너무 캄캄해서 원성진은 더 이상 두어나기가 싫었을 것이다.
참고도2 (변화의 여지가 없다)
백1의 맥을 당한 흑에게 별다른 응수가 없음을 확인하시길. 가령 흑2에는 백3으로 젖혀끼운다. 5의 곳에 백돌이 놓이면 이번에는 백7로 뚫어 우변 흑 넉점을 집어 삼키는 수가 발생한다(흑4로 A에 늦추어도 마찬가지 결과).
원성진은 절치부심의 자세로 설욕을 벼렀으나 제대로 힘을 못 써보고 스르르 밀려 버린 한판이 되고 말았다. 반면 이창호는 대회 4번째 우승에 성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