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 여류바둑계의 신년 화두는 단연 조혜연이 천하를 품느냐, 루이나이웨이(芮乃偉)가 수성을 하느냐―. 그에 대한 해답이 될 여류명인전 도전기에서 조혜연이 루이나이웨이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새 여왕에 올랐다. 지난해 말 여류국수 등극과 더불어 여류바둑계 석권! 10여년간 ‘철녀’ 루이나이웨이가 뿌린 씨앗을 이제 스무살 조혜연이 그 열매를 수확하는 판국이다.
제5기 여류명인전 도전3번기 제2국(○ 조혜연 4단 / ● 루이나이웨이 9단)
- 장소 : 대구바둑협회
- 날짜 : 2004.01.31
- 결과 : 288수끝, 백불계승
장면1 (변화의 실마리)
눈사태형으로부터 출발, 좌반부를 도배하다시피 한 긴 공방전의 결말은 백의 실리가 돋보인다는 평가.
흑1이 ▲를 둘 때부터 품었던 루이나이웨이의 비수. 이 백일단의 엷음을 찔러가며 반전의 실마리를 모색했다. 바야흐로 중차대한 승부처!
참고도1 (막을 수 없다)
흑의 노림수에 대해 백1로 곧장 막기는 어렵다. 흑2로 싹둑 허리가 잘리면 백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왼편에 흑의 철벽이 진을 치고 있어 상하 어느 한쪽의 백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도2 (늦추는 수도 불가)
백1로 물러서더라도 사태가 호전되지 않는다. 역시 흑2에서 4의 절단이 통렬. 백이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눈엣가시 같은 흑2의 한점을 요리할 재간이 없다. 이 그림 역시 백은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실전진행1 (공격에 초점)
백1이 조혜연이 오랫 동안 궁리한 끝에 찾아낸 방어책. 날카로운 창끝을 살짝 비키며 거꾸로 상대방의 응수를 묻고 나섰다. 이에 맞서 루이나이웨이는 하변이 뚫리는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백대마의 눈모양을 빼앗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서 늦추면 끝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과감한 결단.
장면2 (흑, 필승태세)
우하 흑의 노림수가 결실을 거두어 안개에 둘러싸인 형국에서 백2가 욕심. 상대방이 절대선수를 방치한 터라 손이 근질거릴 법하지만 이하의 진행에서 보듯 얻은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흑1,3으로 끊기자 온 동네가 엷어지고 말았다. 흑의 필승태세로 돌변한 대목이다.
백2로는
가에 두어 좌상 흑을 선제공격하는 게 순리였다.
장면3 (통한의 헛팻감)
좌상에서 패싸움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차피 팻감이 부족한 백으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못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한수가 등장한다.
흑2가 100번을 통탄하더라도 울분이 삭혀지지 않을 패착. ‘10년 아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린 통한의 헛팻감이었다. 백3, 5를 선수하며 삶을 확인한 조혜연은 유유히 7로 이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실전진행2 (착각으로 파국)
흑1, 3은 내친 걸음. 여기서도 조혜연은 손을 빼서 어마어마하게 큰 곳, 좌상을 접수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엎치락 뒤치락 요동을 쳤던 승부도 막을 내렸다. 전성기의 루이나이웨이라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착각이 일어났다. 마(魔)가 끼었다고 할밖에.
참고도3 (백, 완생)
그렇다면 중앙 백의 사활은? 공격하려면 흑1로 잇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을 백이 따내면 양패로 연결해 버리니까. 그후 백2가 삶의 급소. 흑3은 선수가 되지만 백4에 계속 두어갈 수 없다. 흑5로 파호하면 백6, 흑5로 6에 두면 백5로 두눈의 삶이다.
조혜연이 큰일을 해냈다. 10년 가는 권세가 없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그래도 절대 지지 않을 걸로 보였던 루이나이웨이를, 그것도 두번 연속 2대 0으로 완파하고 최정상에 우뚝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