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에게도 오픈하는 전국아마대회에 출전할 때는 몇가지 사안을 각오해야 한다. 우선 이삼 일 안에 대회를 끝내야 하기에 여건상 속기로 둘 수밖에 없다. 거기에 예선부터 하루에 너댓 판씩 내리 대국해야 한다. 개방된 실내체육관에서 두므로 주변이 시끄럽다. 체력과 집중력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우승하기 힘들다. 변수가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결국은 이길 사람이 이기더라”고 김영삼 9단은 말한다. 달리 말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든 이겨내는 힘, 이것이 실력일 터. 11월 10일 끝난 17회 문경새재배 오픈최강부도 그렇고 여자오픈최강부도 결국은 참가자 중 최상위 랭커들이 우승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던 두 사람, 랭킹6위 강동윤과 여자랭킹2위 김은지 9단이 예상대로 정상에 섰다.
오픈최강부 우승/ 강동윤 9단
“슬럼프에서 건져준 우승!”
89년생 강동윤 9단은 이제 삼십대 중반에 들어섰다. 13세에 입단한 뒤 일찍이 2009년 후지쯔배, 2016년 LG배를 품에 안은 바 있고 국내외 각종 기전에서 여전히 이름 석자를 내밀고는 있으나 뭔가 존재감을 드러낼 한방이 아쉬웠다. 국내기전에서도 2022년 1기 YK건기배에서 우승하고 2년이 지났다.
올해 안동시 백암배 바둑 오픈 최강전에서 준우승하기는 했으나 세계대회를 석권하던 그를 생각하면 갈급증을 해소하기에는 못 미친다. 올봄(4월) 2회 난가배 16강에서 당시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을 쓰러뜨렸고 올 여름(8월)에는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을 통과하며 본선진출권을 따냈다. 그렇지만 본인은 내심 슬럼프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 나이를 먹기 전에 한번 더 날아야한다. 승부사의 시간을 길게 허용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강동윤 9단은 언제봐도 동안(童顔)이고 참 맑다. 2017년 이맘때 문경새재배를 석권한 후 두 번째 품었다. 프로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한 첫해 첫 프로의 우승이었다. 20대 말미에 쥐었던 우승상금 700만원이 7년 뒤 4배가 넘는 3000만원으로 뛰었다. 우승상금의 부피보다는 20대에 거둔 우승과 30대에 거둔 우승은 깊이와 무게가 다를 것이다.
“7년 전 그때 슬럼프를 겪고 있었는데 문경에 와서 우승한 후 성적이 좋아졌다. 그래서인지올 때마다 즐겁고 힐링이 되는 대회다. 문경은 항상 좋은 느낌을 주는 도시다. 이번에도 그런 기운을 받고 싶다.”
- 상경하자마자 삼성화재배 본선(11월 12일)에 나서야 한다. 피곤하지 않겠는가.
“노는 것보다는 바둑을 두는 것이 승부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평소 인터넷바둑을 두면서 실전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AI공부는 내 바둑을 복기하는 용도로 주로 활용하는 편이다. 인공지능 수법을 그냥 외우는 건 잘 안 외워져서 그렇다. (웃음)”
- 6월 안동에서 연 백암배에서는 준우승(대 변상일)을 거뒀다. 프로아마 오픈대회라는 점에서 비슷한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백암배는 랭킹시드를 받고 출전했기에 예선부터 두지 않아도 됐다. 사실 예선부터 위기가 많았다. 운이 따라주는 대회라고 생각한다. 성적이 한국기원 랭킹점수에 산정되지 않는 비공식 대회지만 프로기전과 다를 것 없이 전력을 다해 둔다. 피셔방식 룰이라 대국시간이 짧고 이삼일 단기간에 승부(대회)를 끝낸다는 점이 나와 맞는 듯하다.”
- 프로건 아마건 승부세계에서는 어느 골짜기 구름에서 소나기를 맞을지 모른다. 더구나 이삼일 짧은 대회기간 예선에서부터 치고 올라와야 하는 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담스러울 것이다.
“부담은 없다. 언제든지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32강에서였던가, 박승화 9단전에서는 초읽기에 몰려 안전운행을 거듭하다가 겨우 이겼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다시 한번 세계무대에서 펄펄 나는 강동윤을 보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 다시 세계대회를 우승하는 게 인생목표다.”
여자오픈최강부 우승/ 김은지 9단
“문경에서 기운 받아 삼성화재배에서 잘하고 싶다!”
김은지 9단은 2020년 1월에 입단했다. 프로가 되고 나서 첫 문경새재배 우승이지만 아마시절인 2018년 12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참가했던 시니어-여성부에서 바로 우승한 전력이 있다. 그때 나이 열한 살, 그 옛날 초등생 유창혁, 박영훈이 학초배를 움켜쥐어 놀라게 한 것과 비슷했다. 정작 본인은 “그때면 제가 초등생 때였었나요?”라면 정확히 기억을 못하는 눈치다.
- 지난달 강릉 난설헌배를 3연패했다. 지역대회 여자부는 죄다 휩쓸고 있다. 지방에 오면 아무래도 조금은 힘들지 않나?
“좀 그럴 때도 있긴 하지만 재미있다. 문경은 인심이 좋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난다. 특히 올해부터 여자오픈최강부를 신설해 주셔서 감사하다. 기분전환 삼아 참가했는데 우승까지 했다. 사흘 내내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면서 대국에만 전념했다.”
- 가장 힘들었던 판은….
“결승대국 초반도 상당히 어려웠고, 예선전에서 이슬주 3단과의 판이 힘들었다.”
- 반면 정규 여자프로기전에서는 아쉽게도 올해 우승을 다 놓쳤다. 12월까지 아직 두어 달 남짓 남아있는 상황에서 벌써 100판을 넘겼다. 비공식대회인 이 대회에 둔 대국까지 합하면 110판 이상 두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은가?
“체력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초속기(피셔방식)가 내게 잘 맞고 무엇보다 지역대회는 힐링하는 마음을 주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는 거 같다. 당장의 목표는, 이번주에 개막하는 삼성화재배 본선에서 잘하고 싶다. 문경에서 받은 좋은 기운으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고 싶다.”
▲ 은지 누나 인터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바둑꿈나무들.
▲ 와아~ 누나의 사인을 직접 받다니…. 누나, 전 입상 상장에 사인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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