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1일 개원해 프로기사만 수십 명을 배출한 명문도장. 도장 벽에 붙어있는 '입단의 길' 1번 문구는 '목숨을 걸고 둘 것'. 괄호치고 열심히 두지 않을시 각오할 것 괄호닫고. 무시무시하다.

양천대일 바둑도장의 김희용 원장은 예전에는 원생들을 엄하게 가르쳐 연구생 엄마들이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너 자꾸 그러면 양천대일로 보낸다."라며 엄포를 놨을 정도. 요즘에는 좀 더 '부드러운 남자'가 되었지만, 원생이 출전하는 연구생리그나 아마추어대회는 언제나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입단에 함께 울고 웃던 세월이 이미 20년. 그러다보니 운영하는 도장은 자연스럽게 한국을 대표하는 바둑도장으로 일어섰다. 예를 들어 한국바둑의 미래로 손꼽히는 4명 중 이동훈과 신민준이 이 도장 출신이다.

사이버오로가 후원하는 '3대도장 대항전'에 양천대일은 첫 출전이다. 그래서인지 열의도 대단하고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는 믿음도 굳건하다. 프로기사는 안성준, 김승재, 이동훈이 출전하고 원생은 박재근, 오장욱, 송상훈, 김기백이 나온다.

한국물가정보배 우승자 안성준과 바둑리그의 신동 이동훈, 야수의 바둑 김승재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박재근은 최근 국무총리배와 문화관광부장관배를 석권한 프로와 다름없는 아마추어. LG배 통합예선에 참가했고, 몽백합배 본선에 오른 오장욱도 팬들의 눈에 익숙하다. 이 정도 출전자면 우승은 맡아논 당상이 아닐까?

11월4일부터 열리는 3대도장 연승전을 앞두고 김희용 원장을 만나 양천대일의 역사와 출전각오를 들었다.

○● 3대 도장 대항전 예고기사 ☜ 대회방식, 일정 등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여기 클릭

양천대일이란 도장이름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 전체가 바둑을 많이 뒀습니다. 매형에게 바둑을 배워서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심취하게 되었죠. 지금 기력은 '아마 5단'이라 해야 할지 '아마도 5단?'이라 해야 할지. 도장이름 '대일'도 우리 매형의 이름입니다. 양천구에 있어서 '양천대일바둑도장'이죠."

바둑도장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바둑교실부터였죠. 그것도 매형 따라서 93년도부터 시작했어요. 성격상 한번 시작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미친 듯이 일하는 스타일이라 바둑교실에서 키운 아이들도 지금 프로기사가 좀 있어요. 9점 접바둑부터 가르쳐서 권도장으로 보낸 윤준상이 가장 기억납니다.

그때 가르치는 재미를 알았죠. 준상이는 마치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기력도 쑥쑥 늘어서 1년 만에 바둑교실에서는 감당이 안 될 정도가 되었어요. 준상이를 보내고 몇 개월을 쉬었죠. 저도 노는 것 하면 어디 가도 명함을 내밀만한데 놀아도 놀아도 너무 허무하고 심심한 거에요. 그래서 작심하고 바둑도장을 열었습니다. 도장은 1999년 9월1일 개원했습니다. 입단은 1호 김은선으로 시작해 최근 신민준까지 26명 정도. 다른 도장 부럽지 않게 많은 프로기사를 배출했습니다.

▲ 원장실 한쪽 벽에 걸린 예전 원생사진들. 익숙한 얼굴도 자주 보인다.

▲ 이번 도장 대항전 출전선수는 아니다. 프로기사 이호범의 예전 모습이 아주 귀엽다.

양천대일만의 교육포인트가 있다면?

바둑이야 예전 옥득진이나 지금 이용수 등 프로사범들이 있으니 제가 옆에서 가르치는 건 전혀 없고요. 저는 주로 체력단련과 인성교육, 또 승부에 대한 심리적 측면에서 조언을 많이 해줍니다. 도장의 원칙은 사활제일주의입니다. 항상 수읽기에서는 최고가 되라고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조언하곤 해요. 스포츠로 비유하면 바둑을 대개 '사각의 링'이라면서 권투를 많이 생각하지만, 전 야구라고 생각합니다. 야구나 바둑이나 모두 장기레이스이고 흐름이 가장 중요합니다. 야구에서 점수를 내줘도 손해를 최소화하고 잘 버티다 보면 또 내게도 기회가 오죠. 또 먼저 점수가 났을 때 투수가 그걸 지키려고 무리하다 보면 엄청난 역전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겨 있을 때의 심리상태가 보통때와 다른 것이 문제죠. 바둑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즉 흐름을 주도하면서 마음을 잘 제어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체력단련을 위해서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7킬로미터를 구보합니다. 여자, 어린이를 안 따지고 무조건입니다. 물론 속도는 차이가 있죠. 또 수요일은 오전에 전체가 축구를 하러 가요. 매년 두번 정도 극기훈련도 하는데, 공동묘지, 흉가, 번지점프는 필수코스죠. 회식도 자주하는 편입니다.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죠. 아마추어 대회에서 누가 우승하면 상금을 회식비로 푸는 경우도 있고요."

▲ 도장 3층은 6~3조의 어린 유망주가 공부하는 장소다.

예전부터 제가 대국취재를 하다 보면 김승재는 '정말 천사처럼 착하다.'는 걸 느끼고, 이동훈은 대국자세에서 감탄이 나오던데 원생 때부터 그렇게 가르친 건가요?

김승재는 모친의 교육이 큽니다. 성실 그 자체죠. 승재가 도장에 다닐 때는 형편이 아주 어려웠어요. 승재 어머니를 만나면 항상 잠을 못 자 눈이 빨갰어요. 속칭 투잡, 쓰리잡을 뛰며 학원비를 댄 거죠. 제쪽에서 도장비를 좀 연기해주겠다고 해도 "무슨 소리냐. 우리 승재는 승부하는 아이인데 기가 꺾이면 안 된다."고 펄펄 뛰신 적도 있죠.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 착하지 않을 수 없어요. 가끔 우리 도장출신 프로에게 원생지도를 부탁하면 다른 기사들은 도장을 여는 시간인 1시 정도 나오는데 승재는 자기가 맡은 날이 되면 연구생때와 똑같이 9시에 나와 혼자 공부하다 밤9시까지 애들을 지도해주고 가죠. 성실하고 실력도 세서 아이들도 좋아합니다.

동훈이는 어릴 때부터 과묵하고 자기 할 공부를 찾아서 혼자 잘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어쩌다 지적할 것이 있어 말하면 그건 꼭 고치더라요. 그래서 내가 동훈이에게 말 한마디를 하려면 여러 날을 고민해야했어요.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 말하면 반드시 고치니까 저로서도 함부로 말하기 힘들었죠.

▲ 이 중에 입단자 있다. 6층은 고단자 위주가 공부한다. 몇몇 프로기사도 이곳에서 함께 실력을 겨루곤 한다.

20년간 바둑교육 일선에 계셨는데 현재 바둑계 상황은 어떻게 보시나요?

한마디로 '지금도 늦지 않았다.'입니다. 제가 본 바둑인들은 적극성이 좀 부족해요. 그러면서 누가 일을 벌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제동을 거는데 이 점은 정말 문제에요. 바둑만한 묘미를 또 어디서 찾을까요?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욕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안이든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뚝심있게 공익을 생각하는 쪽으로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바둑계의 지도자들이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총의를 모으고 좋은 안을 마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도장건물은 입시학원으로 유명한 목동답게 각종 학원이 즐비한 골목에 있었다. 양천대일바둑도장은 이 중 한 건물의 3층과 6층을 전부 쓰고 있다.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안성준ㆍ안형준 형제와 강유택, 이동훈, 류수항에 이어 가장 최근에 입단한 신민준까지 모두 양천대일도장 출신이다.

현재 원생 수는 대략 60여 명. 도장내부에서 1조부터 5조까지 반을 편성해 입단고시를 준비한다. 대략 1~2조가 입단을 노리는 실력자들. 승조 시스템이 특이하다. 조마다 리그전을 열어 조별 순위를 가린다. 이후 상위조 최하위 2명과 하위조 최상위 2명이 더블일리미네이션리그를 벌여 2승자와 2승1패자가 상위조에, 1승2패자와 2패자는 하위조로 재배치된다. 1조부터 6조까지 다 돌아가는 데 약 한달반 정도 걸린다.

이번 연승전에 출전하는 양천대일 출신의 프로기사 안성준, 김승재, 이동훈은 팬들도 잘 알지만,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아마추어들은 낯선데 기풍을 좀 소개해 주세요.

"박재근은 초반부터 종반까지 전천후로 강합니다. 송상훈은 힘이 세고 독특한 바둑을 구사해요. 지난 몽백합배에 출전한 오장욱은 수읽기가 아주 깊습니다. 김기백은 성격이 세심하고 견디는 힘이 굉장해요. 저희 도장의 우승을 확신합니다. "

▲ 양천대일 바둑도장 가는 길. 5호선 오목교역 5번출구 5분 거리. 잘 모르면 02- 2644-9110로 전화하면 된다.

▲ '목숨 걸고 둘 것' 양천대일 도장에 붙어있는 입단의 길이다. 3대도장 연승전에 임하는 자세도 이렇다.

양천대일 도장의 아마추어 4명의 임전소감

박재근 - "3연승만 하겠다."

송상훈- "도장의 명예를 세우겠다."

오장욱-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

김기백- "1장을 맡고 싶다."

3대 도장 연승대항전은 한국의 대표명문 바둑도장인 충암바둑도장, 장수영바둑도장, 양천대일바둑도장 출신의 프로기사와 연구생이 함께 도장의 명예를 걸고 사이버오로에서 대결하는 인터넷대회다. 각 도장의 선수구성은 일단 도장원생 4명과 도장출신 프로기사 3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대국은 사이버오로 왕별(★) ID로 참가해 익명성을 살리되 각팀 선수들의 실명은 공개하기로 했다. 다만 왕별ID와 실명의 짝은 공개하지 않으므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2013 제1회 3대도장 대항전은 한국의 3대 명문 바둑도장인 충암, 장수영, 양천대일이 함께하며, 각 도장이 양성하고 있는 원생과 프로들의 실력향상과 바둑계 전체의 우의를 다지고 이를 오로의 바둑팬들과 함께 즐기기위해 마련된 무대다. 제한시간은 각자 20분, 30초 3회의 룰이며 돌가리기는 무작위로 진행된다. 사이버오로에서 후원하는 이번 연승전은 11월4일부터 매주 월화수 저녁7시와 9시에 벌어진다.

▲ 닳고 닳은 바둑연감들. 이런 저런 바둑책으로 도장 복도가 채워져 있다.

▲ 김희용 원장(오른쪽)은 도장출신 프로기사의 중요대국을 관전하기 위해 바둑TV스튜디오에 나왔다. 연구생리그와 원생들이 출전하는 아마대회는 항상 끝까지 대국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국장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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