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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돌리는 두 여인의 화해(和解)
2017-12-25 오전 5:57 조회 275추천 7   프린트스크랩
처음 찌라시란 말이 등장한 것은 경제계, 좀더 범위를 좁히면 증권가가 아닐까 싶다. 상장 기업과 관련, 확인되지 않은 그럴 듯한 정보가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 그에 따라 주가가 요동쳤는데 알고 보니 주가를 띄우기 위하여 누군가가 꾸며낸 유언비어로 밝혀져서 주가가 폭락하는 등 파장을 일으키는, 진실을 가장한 낭설을 퍼뜨리는 정보(지)를 찌라시라고 불렀다. 언론에 확인되지 않은 연예가의 불륜 정보에서 부터 갖가지 신뢰하기 어렵지만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정보를 전부 찌라시로 매도하게 되었지만, 그 후 어떤 치킨 집이나 찜질방의 개업 정보에서 부터 아파트·연립주택 분양 정보까지 광범위한 생활 정보를 담은 전단지로 찌라시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다.
  
  찌라시 하면 처음 떠오르는 것은, 사람이 주로 붐비는 지하철, 기차역 앞이나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을 막아서서 아주머니같은 사람이 불쑥 내밀어 나눠주는 성가신 존재다. 대부분 사람들은 찌라시를 나눠주는 사람에게 눈길 한번 안 주고 외면하고 지나가고 어쩌다 받아도 읽어보지 않고 대부분 휴지통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아예 아파트까지 침투하여 우편물함에 집어넣거나 출입문에 덕지덕지 붙여놓고 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마냥 외면하다 보니 행인을 끌기 위하여 찌라시에 미끼로 사탕이나 뻥튀기, 심지어 팩 우유를 덤으로 나눠주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행인들은 이 찌라시를 성가신 존재로 외면한다.
  
  나는 가끔 시내에 나가서 찌라시를 돌린다. 2017년도에 세 번 정도 돌렸다. 내가 찌라시를 돌리는 이유는 자원 봉사가 아니다.
  
  지난 6월 30일이었다. 비엔나에 장기간 체류하고 귀국 후에 한동안 못 본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시내로 나갔다가 너무 시간이 남아서 지하철 역 앞 넓은 보행로에 서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어떤 중년의 아주머니가 찌라시를 나눠주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 대부분은 귀찮다는 표정이나 무표정으로 그 아주머니가 마치 송충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눠주는 찌라시를 외면하고 가는 것이었다. 나에게 다가와서 약간 웃는 듯한 표정(아니 겸연쩍은 모습)으로 찌라시를 주는 것이었다.
  
  나도 평소처럼 외면하고 돌아섰다. 나에게 하등 도움이 되는 정보도 아니고 근처에 휴지통도 없으니 받아도 처치 곤란이었다. 그러고 한참을 서서 멍하니 그 여인을 주시했다. 3번 출구뿐만 아니라 6번 출구 쪽에도 좀더 젊은 여인이 아기까지 업고 찌라시를 돌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누군지 몰라도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멀리서 봐도 미모 형의 젊은 여인은 휜칠한 키에 예쁜 화장, 단아한 옷차림 덕택인지 그나마 내 근처에서 영업을 하는 중년 여인보다는 찌라시 배포 빈도가 훨씬 높아 보였다. 내 옆의 아주머니는 워낙 받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 경쟁자를 슬쩍 슬쩍 보면서 눈을 흘기며 뭐라고 혼자말을 궁시렁거리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순간, 이 아주머니가 너무나 애처러워 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찌라시를 거부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그냥 받아주면 될 찌라시 한 장을 매몰차게 거부했으니 얼마나 야속했을까 하고 돌이켜 보니, 나 자신이 스스로 부끄럽고 살짝 화가 났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그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자발적으로 찌라시 한 장을 달라고 했다. 단지 찌라시 한 장을 받아줬을 뿐인데 그 아주머니가 고마워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아주머니 손에는 여전히 100여 장이 넘는 찌라시가 들려 있었고, 무거워서 구석에 감춰놓은 찌라시가 500여 장이 더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아예 100장 든 것을 다 달라고 했다. 행인 한 사람당 한 장씩만 나눠줘야지 여러 장을 나눠줬다가는 일당을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일천 장을 어디 분리 수거함같은 곳에 한꺼번에 넣어버리고 일당을 달라고 한다면, 찌라시를 통하여 선전하려고 맡긴 사람 입장에서는 배포 효과는 없고, 결국 생 돈만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나는 2~3분 간격으로 역 주변을 돌고 와서 그 때마다 찌라시를 한 장씩 받아갔다.일곱 장을 받고 약속 시간 관계로 중년 여인의 진심 어린 인사를 뒤로 하고 그 자리를 떴다.
  
  약 4개월 동안 잊고 있다가 문득 그 찌라시 아주머니가 생각이 났다. 나는 운동을 삼아서 김포공항 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의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여 시내로 나갔다. 110 분을 소요하여 그 역 앞에 도착했다. 그 날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지난번보다는 좀더 많은 것 같았다. 그 날도 그 찌라시 아주머니도, 아기를 업은 젊은 여인도 여전히 찌라시를 돌리고 있었다. 자전거 헬멧과 선글라스를 쓴 나를 그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알아보지를 못했다. 색안경을 벗고 다가가서 인사를 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알아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식사를 했느냐고 물으니 아직 점심 식사 전이라고 했다.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는 것이었다. 이 아주머니 처지에 하루에 몇 푼을 번다고 매식(買食)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아주머니는 무료 급식소의 배식 시간에 맞춰가서 공짜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무료 급식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한번 살펴 볼 겸 아주머니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아주머니가 오늘 배포할 찌라시 1천 장이 든 마대 자루를 가져오라고 하니 그 아주머니가 의아해 하는 것이었다. 급식소는 거의 배식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식사를 못한 주로 노인들이나 노숙자들처럼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서 있고 식사를 마친 노인들도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사람 등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매고 간 배낭에서 컴퓨터 프린터기로 프린팅 하여 만든 안내판을 꺼내어 출입구 식탁 앞에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놨다. '돈을 적선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찌라시 한 장씩만 가져가 주시면 한 가정의 생계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꾸벅!' 10여 분 만에 찌라시 900여 장이 전부 나갔다. 두 장씩 가져가면 아니 되는 규정을 모르고 도와준답시고 두 장 이상씩 가져간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일당이 안 나온다고 한 번에 한 장씩만 가져가라고 했더니 역시 눈치가 빠르고 협조적인 분들이 한 장을 받고 다시 돌아와서 또 한 장을 가져간 요령쟁이 어르신들도 더러 있었다. 덕택에 찌라시 분배를 예상보다 일찍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노인들은 관심이 많다. 찌라시 한 장 배포하면 얼마를 받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 대답은 싼 것은 장당 18원, 찌라시 전문 업체에서 할당받지 않고 신장 개업을 하는 교회같은 데서 직접 목사나 장로가 와서 맡기는 경우는 장당 30원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18원이라면 큰 돈이라면서 어떤 노인이 나도 찌라시나 돌려볼까 하고 머리를 굴리더니 하루 종일 돌려야 잘 돌려야 500장 정도 돌린다는 계산으로 고작 9000원이 된다는 계산이 나오자 금방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것이었다.
  
  마침 그 때 아기를 업은 젊은 찌라시 부인도 공짜 식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남은 식사가 없다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와 보라고 하니 그 여인은 전에도 못 먹은 경험이 있었는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그냥 돌아서는 것이었다. 허탕을 치고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이 고단한 삶에 지친 아기가 엄마 등에 묻혀 놓은 콧물만큼이나 가슴이 찡해 온다. 나는 '아기 엄마!' 하고 그 젊은 찌라시 여인을 불러서 내가 먹으려고 받아놓고도 찌라시를 나눠주느라고 아직 숟가락도 안 댄 식판의 밥을 양보했다. 사양을 했지만 사람들이 받어 먹으라고 권하니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 하고 받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당초 함께 온 여인이 식사를 끝내자 밖으로 옮겨서 자판기 커피를 사주고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 아주머니는 내가 식사를 못한 것이 못내 캥기는 눈치였다. 내가 젊은 여인에게 베푼 친절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그 젊은 엄마 동업자(같은 찌라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를 질투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 서 푼짜리 찌라시를 나눠주는데도 인물 값을 한다니깐요. 찌라시 나눠주는 x이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나가는 사람처럼 치장을 하고 동정을 사려고 애까지 업고 나오니 내 찌라시를 외면하는 것들도 사내라고 저 애 것은 넙죽 넙죽 잘 받아가니 울화가 안 치밀겠어요."
  
  그 아주머니 푸념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저 젊은 부인이 나눠주는 찌라시도 동일한 인쇄물인가요?"
  "아니죠. 대부분의 경우는 내용이 달라요."
  
  "저 젊은 새댁이 미운가요?"
  "밉지요. 남편이 교통사고로 실직했다는데 언제가 여길 나온 걸 보니 멀쩡하더라고요. 허우대가 멀쩡한 놈이 자기 마누라를 저렇게 고생시키니 한심하더라고요. 저 아기는 무슨 죄가 있어서 길거리에서 먼지 먹으면서 고생시키는지, 하긴 애 덕택에 찌라시 배포에 동정도 많이 받지."
  
  "아기가 그렇게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우리 나라 사람들 정에 약하잖아요. 아기를 업고 젊은 여인이 고생한다고 찌라시를 다 가져가요."
  
  "아주머니, 저 젊은 새댁도 불쌍하잖아요. 사이좋게 지내세요. 제가 좋은 방법을 하나 가르쳐 드릴께요."
  "뭔데요?"
  
  "하루 종일 애를 업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아주머니가 내가 좀 업고 있을 테니 허리 좀 펴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보세요. 진심으로 고마워할 거예요."
  
  그 날 나는 봉투에 넣고간 오만 원을 그 아주머니에 주고 왔다. 눈물을 흘리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자전거 패달을 힘차게 밟아서 집으로 집으로 달렸다.
  
  한 달 후쯤 나는 그 자리에 다시 가봤다. 두 여인들은 어김없이 평소처럼 같은 자리에서 찌라시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그 날 그 아주머니 앞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지하도에 숨어서 그냥 봤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젊은 새댁은 홀가분한 단신으로, 대신에 중년의 아주머니가 새댁의 아기를 대신 업고 찌라시를 나눠주는 것이 평소와는 다를 뿐이었다.
  
  아기를 업은 모습이 애처러워 보였던지 중년 부인의 찌라시도 곧잘 나갔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영하의 한겨울인 오늘 같은 날에도 여전히 찌라시를 돌리고 있을까? 연말이 되었으니 구세군 자선 남비에 적선도 할 겸 그 여인들이 어떻게 잘 지냈는지 살펴봐야겠다. 남을 돕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나게 되면 다시 찌라시를 함께 나눠줘서 추운데 좀더 일찍 집에 들어가도록 해주는 것이 돕는 일이다.
  
  앞으로 찌라시 나눠주면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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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석대산 |  2017-12-25 오전 8:36: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었습니다. 스산한 세모에 절로 마음이 뜨뜻해지는 글이네요.
작은 행동이지만 누구도 쉽게 흉내내지 못할
BROVO님만의 슬기롭고 용기있는 처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님의 건승을 빕니다.
 
비카푸리오 |  2017-12-25 오전 11:50:5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크리스마스 날에 훈훈한 얘기를 듣습니다. 연민의 정도 느끼고 지혜도 배웁니다.
저도 가능한 찌라시를 외면하지 않는데 앞으로 두장 받으려고 합니다 ^^  
팔공선달 |  2017-12-25 오후 5:29: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약간의 서스펜스가 있는 글이라도 힘든 사람에겐 위로가 된다고 봅니다.
글은 진실만 알리는 게 아니라 가슴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으니
같이 살아가는 이유로 쓴다면 모두 웃고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경험이든 상상이든 입으로 하는 떡과 몸으로 하는 떡은 양에서 다르지만
실체가 있고 없고는 엄연하죠.
생각이 미치면 몸이 따르고 몸이 따르지 않는 생각은 생각만으로 끝나지요.
마지막에 나서지 않고 지켜보았다. 에 한 표 찍습니다. 건강 하세요^^  
江湖千秋 |  2017-12-28 오후 2:21:4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간만에 감동을 받아 로그인했네요.
님의 따스한 시선으로 말미암은..좋은 결과..에 흐믓해집니다..
과연 인류도 그런 식으로의 도약이나 도야가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건강하세요_()_  
삼나무길 |  2018-01-17 오전 9:48: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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