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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나의19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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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를 죽이면서.
2017-12-10 오전 5:59 조회 987추천 8   프린트스크랩
▲ (__)

세상을 살다보면 서로의 사고가 대칭될 때가 많은데 그 부류를 크게 보면

논리적 합리성과 도덕과 감성적 인간성을 강조하며 환경과 각자의 가치관으로 선택된다.

서로의 장단점이 있지만 시대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고

진보는 비합리적이고 구태의연한 명분과 아집을 바꾸려는 개혁의식을 내세우나

이기적으로 변질되고 인간성 상실에 대한 책임을 기만하는 것 같고

보수는 그 반대의 의미에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아집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다

진보는 서구문화에 보수는 유교적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서로를 인정하고 보완하기보다 자신의 장점만 부각시키려하다 보니

반목은 소신이 되고 창의력보다 상대의 약점을 논리적으로 부각시키고 선동하는 것이

자신을 알리고 목적을 달성하는 지름길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합리성만 강조하는 이기심과 명분을 중시하는 아집이 충돌하는 것이라 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덕성을 외면하고 빙자하면서도 기본 명분으로 강조한다.

소통이 안 되는 건 서로 숙주라는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강하려고만 하는 탓인 듯하고

서로 무지하다고 생각하고 이기려 마주하니 대화가 될 수 없겠다

강하여 약한 것을 먹으면 생존본능이지 먹이의 장점까지 흡수하는 것은 아니고

단순파괴와 욕구충족 뒤에 진화는 오히려 먹히는 쪽이 한다고 본다.

우리 인간들의 이해관계만 빼고.

 

내가 잘하는 것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겸손하게 바라볼 때

그것이 거울이 되어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고 완성도를 높이지만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

여기엔 희생과 인내와 계기를 부여하는 양보 끝에 결실이 있다고 보는데

그 무엇을 무시하고 무엇이다. 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딱히 누구의 관점이 옳은지 모호 할 경우가 많지만 상대를 인정함에 인색하다

우리의 정서가 토론이 되지 않는 것은 애초 감정과 아집이 깔려 있어 결국 논쟁이 되니

이는 오랜 역사적 배경에 현존하는 특수한 환경의 영향인 것 같고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다짐해도 늘 어리석음을 반복하니 어쩔 수없이 중생인 것 같다.

어쨌든 우리의 정서는 한 나무 두 가지의 연리지에 공동체의식으로 인연을 맺었지만

따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 같다.

사회적 이슈인 걸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울타리 안에서도 노골적으로 부딪친다.

 

7080 세대로 나름 격변의 시간들에 분노하고 목숨 걸 사명감으로 거리로 뛰쳐나갔다가

이젠 조용히 관망하며 허와 실을 삶의 돋보기로 가늠하여 작은 선택만 한다.

살면서 변화의 계기는 많은데 신세와 책임에 우선 하여 보수라면 나는 이제 보수라 하겠다.

지금 진보에서 보수로의 전환은 세상을 보는 눈과 천성에 의해 선호도가 바뀐 것일 뿐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기보다 환경에 의해 적응하기 편한 쪽을 따른 것이고

나는 무엇인가에서 나는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의 선택에서 택한 결론이기도 하다

둘 다 희생이 따르나 대상이 추상적이고 진취 적에서 구체적이고 소극적으로 바뀐 것이고

이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임하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우리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작은 것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래서 보수는 진보의 경망함을 탓만 할 게 아니고

진보에서도 무조건 보수를 구태의연함으로 몰아서도 안 되겠다.

투쟁으로 쟁취하고 다시 자신이 답습하는 세태를 보면서 누구를 지지한다하기가 민망하다

하지만 결국 나의 환경은 그들과 무관하게 명분에 희생하는 보수의 길을 택하게 했다.

 

 

 

선구자는 자신을 희생하여 숲을 일구고 범부는 자신을 희생하여 밭을 일군다.

모두 크고 작은 가족을 위한 것이고 도덕이다

하지만 진취적 안목과 소극적 무지의 차이에 또 하나의 차이는 목적에 있었다.

소수 선망의 대상을 빼고 선구자의 탈을 쓴 사람들은 늘 더 높을 곳으로 비상하고

무지한 농사꾼은 더 낮은 곳으로 향했다

같이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더 낮은 곳으로 가는 이와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차이는

누가 내몬 것이 아니라 가치관에 의해 서로가 추구하며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 본다.

나는 무지하고 때로는 어리석고 근시안적이며 희나리 같은 대본을 받아들었고

지금 후회하면서도 자신에게 대견해 하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질곡의 세월에서 선지식들의 논리나 정의로 못다 푼 것을 삶에서 시청각으로 느꼈으며

이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고 정의도 내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몇 가지만 서술해 본다.

 

 

 

인간은 간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상대는 그렇다 치고라도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이런 사람인가를 수 없이 느꼈다

밑바닥을 다 긁어 본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깬 사람이고 삶을 긍정적으로 볼 안목이 있다고 볼 수 있고

반반인 사람은 그나마 무난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위로하고 부정하면서 버텼지만 늘 악역만 돌아왔다

반항의 시기를 거치고 포기의 골을 넘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나니

이미 몸에 배여 내 생각과 마음에 앞서 몸이 먼저 나섰고 후회와 내일에 대한 갈등은

그저 뒤풀이 일뿐이었다.

사회적 정서와 개인적 욕구 환경 육체적 고통…….

그 모두를 숨기며 되풀이 한 것이다.

가장 진실하다면 허물을 합리화 하지 않고 반성하는 사람 일 것이나 이는 쉽지 않고

모든 걸 개의치 않고 인정하고 개선해 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어설픈 길을 나서 본 사람이 더 불신한다.

과정에서.

천륜을 지키려면 부모를 섬기려 말고 자식으로 입양하여 키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섬김에 간사함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가장 정직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고비를 넘지 못하면 회의도 느끼고 자학도 하면서 가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지만

여기까지도 많은 희생이 따르고 그것에서 만족 못하면 어느 순간 상실감이 발목을 잡는다.

그동안 자신이 희생한 결과만 보고 자신에게 희생한 이의 신세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 경험으론 부정하지 않고 섭섭함을 가슴에 묻어두는 정도가 중생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말에서

수양보다는 인연에 초연하지 못함을 가르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며칠 후 진짜 논네. 명찰을 달게 되니 삶의 의미가 새롭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인연에 섭섭한 단계에서 머물고 내가 오를 산을 바라보고만 있다.

 

인간은 원래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을 일상처럼 하는 이가 있고 반면에 감추거나 외면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성과 환경 가치관 등 여러 조건에 좌우되지만 보편적으로 자신에 맞는 조건에 베푼다.

이 경우는 선택이기 때문에 횟수나 대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소신껏 하는 이도 있지만 목적과 반응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대상도 바뀔 수 있다

그래도 저래도 나를 해하거나 말거나 논리의 충돌엔 예민하지만 나와 상반된 충돌에도

그 사람과 가까운 모두를 적시하지 않는 것과 경우를 보며 객관적 판단을 하는 것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턴 보편적인 언행을 가리켜 인간성이라 일컫는데

그 따뜻함이 이성과 이기심의 갈등을 거치며 때로는 미처 응고 되어 버리거나

지표를 뚫고 나와도 정도와 상대에 따라 해와 덕이 엇갈린다.

지구는 둥글고 돌고 있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멈출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일희일비를 떠나서.

따뜻함에서 시작하지만 응고는 환경과 목적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는 걸 느꼈지만

밤길에 등을 들고 나서나 누군가를 비춰 줄 마음도 따라 나서더라.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가식이다

여러분들은 진실이라는 가슴과 가식의 길을 걸으며

상대에게 때로는 상처를 주고 때로는 상처를 주지 않는 나의 가식을 합리화 하면서

희생과 양보 배려를 빙자한 거울 앞에 서보았는가.

남보다 잘나고 싶거나 아니면 최소한 추하지 않아야 되겠다는 보여주려는 변명의 거울.

 

우리는 경우에 따라 말을 달리 한다.

가식이 상대의 가슴에 죽창이 될 수도 있고 따뜻한 차 한 잔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가슴을 전해도 본능이 깔렸고 가식일지라도 내 가슴이 깔렸으니

불만족스런 이 세상 살아야 한다면

진실이 모두를 대변할 수 없을 때 좀 더 인간적으로 척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본다.

그것인들 오래 하려면 쉬운 일인가.

무지와 무식과 가식과 속임은 의도와 목적과 행위에서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고

나는 진실과 선지식과 장인이 늘 우리를 이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나와 그들의 가식과 인내가 위로가 되어 산다고 본다.

내가 받은 위로가 가식을 오해했고 그들의 진심을 이해 못하고 나또한 오해를 받더라도

이끌지 못할 바엔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라도 한그루 나무에 위로 받으며

나 또한 모두였음을 깨우치려 한다.

그러나 죽을 때 까지는 업을 닦는 울력의 호미질을 하면서 우선 엄니 마음부터 더듬고

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지난 일들의 자부심을 잊고 남은 업에 임해야겠다.

 

논리에 약하지만 보편적인 삶이 겪어보지 못한 질곡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름의 철학은

가끔 간사해지기도 하고 가식적인 행동도 하더라도 가능한 인간적으로 살자는 것이고

개성과 소신과 자존심을 살리며 사는 방법

그것은 책임의식이었고 희생했다는 생각에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도

종이학 접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와보는 소풍이라 미처 경치도 못보고 예쁜 들꽃과 작은 삶의 신비를 깔고 앉아

모처럼의 나들이를 탐식으로 끝내고 노을 길 바라보며 잠시 삶을 돌아본 생각이다.

30여년의 치매 중풍 간병에서 얻은 것은 신세에 책임을 다하려 했다는 것이나

요즘 쉽지 않은 당연한 일일 뿐 공치사거리가 아니라는 것이고 그래도 못내 섭한 것은

여독을 위로받지 못하고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좀 더 합리적으로 살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살아가고 있을 삶

명예도 부도 누리지 못했지만 엄니마저 책임지고 염라대왕에게 막걸리 석잔 청하리라는

억지춘향의 객기어린 삶

그러나 마지막일지 모르고 후회도 없지만 솔직히 이번 소풍은 별로인 것 같다.

이제 보물찾기도 장기자랑도 모두 끝나고 삼삼오오 떠난 뒤에 또 홀로 남았다

가식은 따뜻한 마음에서도 시작하고 이는 어디서 어떻게 응고하는가에 달렸으며

간사함은 생존본능의 일부라고 보면

모두 진실을 쫒지만 기실 돌아보면 척하며 사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진실에 가까이 가게 됨이 거짓을 되풀이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지금 영웅심과 객기지만 이미 친숙한 고독과 마지막을 나누는 청소당번이기를 자처했으나

이마저도 모두 지나가는 일이겠지.

도덕성은 논리가 논할 가치가 아니라 가슴으로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목적에 이용하지 말고 아집을 합리화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러면 상대가 먹잇감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울타리.

그 울타리가 가까이 있지만 관리가 사실 쉽지 않고 잔손질이 많아 여간 귀찮지도 않다

그래서 집나가 탈춤 추는 이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것은 나의 소신이 보편적인 정서라는 생각이고

위험한 것은 수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며 파멸의 길은 관철 시키려는 것이라 본다.

기실 다짐한다고 모두 이룰 수는 없지만 추구하다보면 근접할 수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내가족의 운명이 걸리지 않았다면 상생의 길을 찾는 삶도 즐길만한 스포츠가 아닐까.

나도 작은 밭에서 간사함을 낮은 곳에서 빨리 응고시키고 가식은 적당히 분출하여

작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졌음에 감사하며 남은 생을 살아야겠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의지와 달리 인연은 보통의 환각제가 아니더라.

 

 

 

 

근데. 어느새 의무와 책임만 남은 나이가 되니

가끔 여태 생각지도 않았던 죽음이 070 코드로 수시로 문자와 안내 멘트를 날린다.

(고객님 어떻게 죽으면 어떻게 되고 어떻게 죽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니 지금 상담.......)

 

지나 온 삶은 그렇더라도 나는 과연 어떻게 죽어야 하나.

마음은 아직 동심인데 또 백정이 되어 무의미하게 한해를 죽이면서.................

 


 

 

 

 

 

┃꼬릿글 쓰기
자객행 |  2017-12-11 오전 3:59: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하수상한 세월입니다, 시간이야 어디에서고 흐르고 우리는 나이를 먹습니다.  
자객행 건강 챙기시고 행복하게 삽시다%%
팔공선달 저는 술시만 되면 행복합니다. ㅎ1ㅎ1
BROVO |  2017-12-12 오후 1:33: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이고, 읽고 많이 야단 맞은 기분입니다. 반성하고 갑니다. 그래도 추천은 하고 가렵니다. 송구 영신 !  
팔공선달 무슨 말씀을 그냥 정리되지 않는 상념일 뿐일걸요.
글 잘읽고 잇습니다^^
李靑 |  2017-12-12 오후 2:40: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흔들일 일도 흔든일 필요도 없습니다. 어짜피 혼자이고 혼자 가는 길입니다. 소신대로 살아갈 뿐  
팔공선달 네^^
오방색2 |  2017-12-16 오전 8:00: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동물과 사람의 차이!!!!!!!!  
팔공선달 간단한 걸 너저분하게 갈겻네. ㅎ1ㅎ1
자객행 |  2017-12-17 오전 7:35:4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영수판님은 오디가신건가요?  
팔공선달 무슨 말씀인지?
자객행 안보이셔서요
youngpan 혹시 저 말씀인가요?
산청에 내려와서 잘 살고 있심더!!
서벌보다 엄청 넓은 산청을 헤집고 다니면시롱..
혹 제가 아니라면 실례했심더~~
youngpan 한해 한해는 자기에게 건설하는 인생의 징검다리죠!
그것이 때로는 떫을때도 있고 달콤할때도 있지만
그것도 또한 인생의 여정이리라.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많지만은
잘 생각해보면 번쩍하는 빛이 보일때도 있었지요....
다행한 일을 좀더 줌업하면 인생은 다행스러움으로 덮힐지도~^~
팔공선달 다행스러움을 줌업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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