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간혹 '옛날에 여자도 바둑을 두었을까'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을 보면 뜨악하다. 고려 조선시대는 기생들 외에는 바둑을 두지 않았을 것 같다는 나름 신념(?)에 가득찬 질문이기에 더욱 답답하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부모 나름이고 남녀간 사랑의 척도도 사람 나름이기에 일률적인 잣대로 어떤 현상을 가늠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구나 대상이 역사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를 관통해온 '놀이'에 어떤 규칙을 부여한다는 것도 같은 경우일 것이다.

조선시대 기록으로 확인되는 바둑은 남녀를 독하게 따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여자들의 기록도 적지 않다는 점이 그것을 반증해 준다.

9월30일. 맑다가 늦게 흐리며 질펀하게 비가 옴.
땔감 15냥어치와 고기값으로 7냥을 썼다. 박초시 등과 활터에 가 활을 쏘고 술을 마시며 대화를 했다. 듣기로 읍 근교에 사는 미모의 과수댁이 있는데 아이가 셋이나 되고 아비가 각기 다르다고 한다. 한때 한양의 기방에 있어 바둑도 둘 줄 안다고 한다. 과연 믿을 만한 말인가. 과수댁이란 조심스럽고 조심스런 위치인데 춘성댁의 일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춘성댁은 지조가 있던지 없던지 둘중 하나다. 바둑이 수담이거늘 남녀를 가리는 것도 가소로운 일이다.

(晴 晩陰酒雨  十五兩錢貿柴 肉價七兩給 朴與射亭酒談 聞邑之外 有美而寡者 曰 春城宅 然有三者人 各有其姓 一時京中妓房 圍碁解得 過然 不信矣 寡婦者幽處之處 春城宅事 不然也 有志無操 兩中日也 手談之交 有男女分別 可笑也)

지남규스토리에 '바둑두는 여자'가 등장한다. 읍 근방에 사는 춘성댁이란 여자인데 미모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미모답게(?) 살아온 인생역정도 거칠어 성씨가 다른 자식 셋을 낳아 키우고 있다. 그 여자가 바둑을 둘 줄 아는데 한양 기방에서 배운 듯하다며 대화의 반찬으로 삼고 있다.

지남규는 문제의 여자가 지조가 있던지 없던지 둘중 하나일 것이란 판단을 한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성씨가 각기 다른 아이 셋을 낳아 여자 혼자 키워냈다면 그 여자는 지극한 모성의 소유자일 것이다. 농담이나 일삼는 장삼이사들의 술자리에서 찧고까불 일이 아니라고 본다. 지남규도 그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지남규스토리에 바둑을 이해한 여자가 두 명 나온다. 여주 기방의 기생과 춘성댁이 그들이다. 바둑두는 여자라는 말에 19세기의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인사동 화랑. 조선여인들의 복장을 전시하고 있다)

열냥내기 장기 두기 닷냥내기 바둑두기

골패 윷 방투전에

돈이야 물이 되지

여자라고 바둑 못하나

남자라서 칠칠찮다.

'이정가양록' '녹패기'에서 한줄씩 추려 본다. '여자라고 바둑 못하나'라는 말에서 바둑과 관련된 여성들을 간추려본다. 사임당 신씨, 허 난설헌, 혜경궁 홍씨, 영수합 서씨, 그리고 명성황후 민씨... 그리고 한양동쪽의 한촌을 살던 이름도 성도 없던 춘성댁 그 사람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