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증귄배] 백/오송생 흑/程曉流

<장면도> 오9단의 바둑을 한마디로 말하면 중앙을 중시하는 자유의 바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면도의 백◆는 그러한 기풍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음미하면 할수록 오9단의 대범한 기질이 엿보입니다. 보통 하변에 A~D까지의 뛰어드는 수를 노리기 마련인데 오 9단은 중앙을 향해 비상합니다.

진정 학처럼 사셨고 바둑 또한 학과 같았던 오9단의 참모습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옆 참고도처럼 백1로 뛰어들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흑이 2로 씌운다 해도 간단하게 안정합니다.

그러나 장면도의 백◆는 흑이 하변을 받아 버리면 뛰어드는 수단이 사라져 버립니다. 실전에서 막상 이런 수를 두기란 어렵습니다. 실리에 초연한 오9단의 체취가 물씬 풍깁니다.

실전진행도입니다. 오9단은 6~10으로 우상귀를 도려낸 후 백14와 18로 멋진 학춤을 선보입니다. 결코, 집이 될 것 같지 않은 중앙을 향해 비상하는 오9단, 그의 바둑을 보노라면 저 어릴 적 피터팬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피터팬은 하늘을 날며 낭만을 선보였고 뮤지컬에서 피터팬 역할을 했던 윤복희 씨의 이미지도 세상의 복잡함과는 담을 쌓은 동화 속 세계의 아이와 같습니다. 오9단 또한 그런 낭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오9단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실전진행도의 백2와 4로 눌러가는 수는 중앙을 중시하는 오9단이 애용하는 수법이지만 흑을 굳혀주는 단점이 있습니다.

1도☜ 왼쪽   2도☜ 오른쪽

[중일위기대항전] 흑/오송생  백/伊藤誠

장면도의 흑◆는 중앙을 중시하는 오9단 기풍의 극치를 보여주는 수입니다. 보통 백A가 3선에 있을 때 이런 고압적인 수를 두기도 하지만 백돌이 4선에 있는데도 저런 수를 태연히 두는 것이 바로 오9단의 바둑입니다.

아련한 기억이지만 바둑왕전에서 상대의 3선도 아닌 4선의 돌에 어깨를 짚는 오9단 바둑을 보고 '아니, 무슨 저렇게 두지.'라며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1991년 기왕전] 흑/오송생  백/홍태선

오9단의 바둑에선 중앙중시와 자유로운 발상이 어우러져 신선한 수가 자주 나왔는데, 그 때문인지 그의 팬이 은근히 많았습니다.

홍태선 사범님은 '홍 타이슨'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펀치'했던 분입니다. 

홍7단이 백10으로 들여다본 장면인데 흑은 A로 잇는 수가 보통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은 금방 알겠지만, 중앙을 중시하는 오9단은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흑은 1로 한 번만 받고 백2 때 손을 빼서 흑3으로 향합니다. 선악을 떠나서 오9단의 자유로운 발상이 엿보입니다.

중앙중시와 자유로움, 이 두 가지가 바로 오9단의 바둑을 대표한다는 사실이 이 바둑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오송생 9단의 공식적인 병명은 뇌일혈이지만 몇 달 전에 뇌일혈로 쓰러지셨다가 병세가 완연히 회복되어 요양원에서 머무르셨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일을 당하셨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요삼 선수의 죽음도 초기대응의 문제가 컸다고 하는데 오9단도 요양원에서의 응급조치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흑은 4로 중앙을 향하는 대신 6으로 호구칠 수도 있으나 오9단은 일편단심 중앙을 향해 사랑을 구합니다.

흑12로 드디어 중앙을 향한 꿈이 무르익습니다.

실전진행은 흑이 10으로 좌변 백집을 견제하였을 뿐 아니라 우변과 중앙의 세력을 최대한 키워서 더할 나위 없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흑16은 상대를 압박하면서도 하늘을 나는 듯한 시원스런 느낌이 납니다. 오송생 9단이 이 수를 두었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겁니다.

홍태선 7단은 백A로 용감하게 뛰어들었지만, 블랙홀에 빠진 백의 마지막은 뻔합니다. 오9단의 불계승.

[1991년 기왕전] 백/오송생 흑/이창호

그러나 오9단의 일편단심 중앙사랑이 좋은 결실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창호 9단처럼 중앙타파에 도가 튼 상대에게는 오9단의 중앙사랑이 허무한 결말을 맺기 쉽습니다.

장면도는 흑을 쥔 이9단이 흑◆로 역으로 붙인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보통의 수를 오9단이 둘 것이라면 장면도로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1도는 보통의 진행입니다. 유명한 정석으로, 이 진행이라면 흑의 이창호 9단은 세력을, 백의 오9단은 실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상대 이창호 9단이 세력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오송생 9단으로 하여금 흔치 않은 수를 두게 합니다.

☜ 1도

오9단은 중앙 지향적인 백1, 3, 5를 시작으로 백9로 '훨훨' 비상합니다. 흡사 다께미야가 연상됩니다.

오9단의 중앙지향은 다께미야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이 바둑에서는 백이 다께미야라고 해도 모두가 믿을 것입니다.

백은 11과 15로 한껏 폼을 넓힙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9단의 상대는 이창호 9단이라는 점입니다.

다께미야의 우주류와 유창혁 9단의 중앙작전을 완벽하게 격파했던 이창호 9단은 이 장면에서 삭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창호의 삭감수 흑◆의 위치에 주목하십시오. 상대 백의 전위병 A와 B를 잇는 경계선에 딱 알맞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상대진영에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상대 진영에 발을 담근 수입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도록 상대진영의 경계에 절묘하게 걸쳐 있습니다. 이런 수가 바로 삭감의 요령입니다.

이창호 9단이 오9단이 화장실 간 사이에 몰래 줄자를 바둑판에 대어보고 둔 수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진영의 경계에서 기가 막히게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9단은 얄밉게 들어온 흑을 소 닭 보듯 하고 엉뚱하게 백1로 우변을 두었지만, 백의 고민은 중앙 흑이 단곤마라서 공격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1대신 흑2자리에 지키는 것도 좌변에 뒷문이 열려 있어 내키지 않습니다.

이창호 9단은 흑2로 불여튼튼을 외칩니다. 백3에는 흑4로 하변 백의 삭감과 중앙 흑의 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습니다.

백1부터의 수는 이적수의 성격이 강합니다. 흑을 강하게 해주어서 중앙 흑이 말짱하게 수습되었을 뿐 아니라 되려 흑이 A로 선착한다면 하변의 백 두 점이 공격목표가 되는 요지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실전에서도 흑은 나중에 A로 침입 겸 공격하여 국면을 확실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오9단의 중앙사랑이 중앙타파의 대가 이창호 9단을 맞아 뻘쭘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 신체육배] 흑/오송생 백/섭위평

오9단이 중국 최초의 9단으로 청사에 기록될 때 함께 9단이 되었던 섭위평 9단과의 대국입니다.

오9단은 철의 수문장 섭9단과의 수많은 대결에서 그의 골문을 거의 열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바둑에서는 오9단 특유의 중앙 지향적인 간드러진 감각으로 그의 골문에 백만 불짜리 황금 슛을 터트립니다.

섭9단이 백◆로 하변을 째려보면서 우변을 부풀린 장면입니다. 섭9단다운 서두르지 않는 유장한 행마입니다.

오9단은 흑1과 2를 교환하고 흑3으로 창공을 향해 비상합니다. 상변 백의 침입을 간접 보강하고 우중앙의 백 세력 또한 염두에 둔 천하제일의 감각입니다.

흑은 A 정도로 하변을 지키는 것도 좋아 보이지만 이 수는 자신의 영역만을 고려한 수입니다.

하지만, 실전의 흑3은 상변 침입도 방비하고 백의 우중앙 세력도 삭감하는 일거양득의 수입니다. 한 판의 바둑을 두면서 누가 이런 일거양득의 수를 많이 두는가가 승패를 좌우할 때가 잦습니다.

흑이 1로 지킨다면 백은 당장 2로 뛰어듭니다.

흑3으로 근거를 빼앗아 공격을 해봐도 백6에 이르면, 닭 쫓던 개 63빌딩 옥상 쳐다보는 격입니다.

지금 상황은 오히려 흑의 입장에서 A의 약점이 거슬립니다.

흑2로 씌어봐도 백이 상변에서 터를 잡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한 예로 백3으로 미끄러진 후 5로 붙이면 말끔하게 수습할 수 있습니다.

이 바둑은 결국, 상변에 뛰어든 백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며 우변 백을 자연스레 삭감하고 하변까지 손이 돌아온 오9단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조치훈 9단의 바둑에서는 치열한 부대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조치훈 9단의 바둑과 인생에서 우리의 근성을 배웠습니다.

반면, 오송생 9단의 바둑과 인생에는 먼 하늘을 비상하는 학과 같은 체취가 물씬 풍깁니다. 그의 바둑에서 먼데 하늘을 바라보며 현실을 관조하는 듯한 학의 기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실제로 띨빵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지금도 띨빵합니다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현실 세계의 여러가지 일에는 서투른 일이 많고 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도  합니다.

현실 세계를 초월한 듯한 학춤을 추는 신선 오송생 사범님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향기보다 짙은 그의 체취는 저에게 깊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오9단에게는 낭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 그래서 오송생 9단이 좋습니다. 이제는 그의 얼굴을 사진상으로만 만날 수 있지만, 기보를 통해서 그의 체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

오송생 사범님, 하늘나라는 춥지 않겠지요?

그곳은 낭만이 있고 신선이 있는 곳이겠지요?

그리고 그곳에는 절친한 친구 김수영 사범님도 계시겠네요...

전 오늘 밤 꿈에도 피터팬이 되어 저 하늘로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