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행복하게 만들어라.

그것이 적을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삼성동에있는 미라클 오피스텔은 미영이 강남 쪽에서 늦게까지 일을 볼 때 사용하는 곳이다. 사무실이면서 잠시 쉬는 공간이다.

오피스텔에 먼저 도착한 미영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별로 어질러지지도 않은 오피스텔 안을 쓸고 닦고 부산이었다. 단지 로미를 보러오는 건데 이게 무슨 부산인지...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은 연신 걸레질이었다.

미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영민의 얼굴이 보였다. 미영은 자신도 모르게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추슬렀다.

미영이 문을 열자 영민이 활짝 웃고 서 있었다.

미영은 가슴이 뭉클했다. 거의 열흘 만에 보는 얼굴이다.

“오랜만이죠?”

“오랜만은...겨우해야 일주일뿐이 안됐는데...”

맘에 없는 말이 미영의 입에서 나온다.

이것도 영민에게만 나타나는 미영의 증상이다.

“일주일은 넘었어요. 지난주 화요일에 미영씨 집을 찾아갔으니까...”

그때 로미가 왈왈거렸다. 잘 짖지도 못하는 목청으로 짖으며 부산스럽게 왔다갔다 그랬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의 표시다.

“하하...이녀석 봐라. 정말 며칠 사이에 많이 컸네. 제법 짖기도 하고...”

“로미 가만히 있어.”

미영의 말에도 로미는 영민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부산스럽게 뛰어다녔다.

로미는 영민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그런 로미를 미영이 간신히 잡았다.

“가만히 있어, 로미. 아빠야.”

말을 하고보니 그렇다. 미영이 엄마고 영민이 아빠가 되면 둘 사이는 당연히 부부가 된다. 문득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미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영은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듯 얼른 로미를 영민에게 안겼다.

“안아봐.”

“어디보자. 이녀석.”

영민은 로미를 받아 번쩍 위로 치켜 올렸다.

“그러지 마. 놀란단 말이야.”

미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미는 영민의 얼굴에 오줌을 갈겼다.

영민은 질겁을 했고 미영은 웃음을 터트렸다.

영민의 손을 벗어난 로미가 도망가자 그 뒤를 영민이 쫓았다. 미영이 애써 치워놓은 오피스텔이 두 장난꾸러기에 의해 난장판이 되었다. 두 장난꾸러기들을 말리느라 미영은 혼비백산이었다.

“영민씨, 그만해.”

로미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자 득달같이 그 뒤를 영민이 쫓았다. 미영도 영민을 따라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이미 로미는 밖으로 도망간 다음이었다.

두 사람만이 좁은 공간에 놓여졌다.

영민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미영을 보았다. 바로 눈앞에 미영의 얼굴이 있었다. 두 사람의 가뿐 숨소리가 서로의 가슴으로 전달됐다.

영민이 미영의 허리를 끌어안은 것과 미영이 영민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건 동시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하나로 겹쳤다.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파라볼라 안테나처럼 융기되었다. 상대방의 느낌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달콤함과 황홀감이 일제히 온몸을 지배했다. 

처음 만남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잠재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남녀간 교감의 완성 앞에 두 사람은 다급했다. 서로의 몸에 거추장스럽게 걸쳐진 옷을 벗겨내는데 4개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두 사람은 알몸이 채 되기도 전에 이미 침대 위에서 한덩어리가 되었다.

로미는 침대 위의 두 사람을 갸우뚱하며 바라보았다. 무엇을 하는지 알기에는 아직 어린나이였다. 어쨌든 두 사람과 자신은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로미는 무료함에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얼굴을 몸속에 묻었다.

겨울밤은 눈깜짝할 사이에 찾아온다. 금방 오피스텔은 어둠에 묻혔다. 어둠이 부끄러운 미영의 얼굴을 감춰주었다.

미영의 손이 땀에 젖은 영민의 가슴을 쓸었다.

“무슨 생각해?”

촉촉이 젖은 미영의 목소리였다

“혹시 이게 꿈인가 싶어서요. 미영씨 처음볼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어요. 저 여자와 키스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 저 여자의 피부는 어떨까. 저 여자와 같이 잠을 자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이요. 저 나쁜 남자죠?”

대답대신 미영의 입술이 영민의 입술을 덮쳤다. 길고 긴 키스였다.

숨이 막혀 죽기 일보직전에 미영이 입을 떼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나쁜여자야.”

이번엔 영민이 미영의 입술을 덮쳤다. 

두 사람은 한덩어리가 되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을 떼어놓은 건 미영의 핸드폰 멜로디였다. 

미영이 불을 켜고 핸드폰을 받았다.

“...김실장...아무 일 없어요...신경쓰지 마세요. 개인적인 일이어요. 오늘 어쩌면...”

미영이 말을 끊고 힐끗 영민을 보았다. 팬티를 입는 영민이다.

“집에 못 들어갈지 몰라요. 기다리지 마세요.”

미영이 핸드폰을 끊었다. 집에 안 들어간다는 말을 한 것이 쑥스러운 미영이다.

“자긴 집에 안 들어가도 돼?”

호칭이 자기로 바뀐다.

“뭐 어차피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요.”

“맨날 이렇게 외박하는 거 아냐?”

미영이 곱게 눈을 흘긴다.

“하하...외박할 데가 어디있다구요.”

“그래도 모르지. 남자는...”

“원래 낯선 곳에서 잠자는 걸 싫어해요.”

“근데 영민씨는 누가 전화도 안하더라. 핸드폰 오는 걸 본 적이 없어.”

“전화할 사람이 별로 없어요.”

“친구는...”

“전부 먹고 살기 바쁘죠. 어차피 많지도 않지만.”

“부모님은?”

“아버지는 얼굴도 기억이 안나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대요. 형제도 없고...엄마 혼자 고향에 계세요.”

“고향이 어딘데?”

“옛날엔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고 하더군요.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구요.”

“진천?”

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세가 많으시겠다.”

“그렇지도 않아요. 환갑상 받으시려면 아직도 2년이나 남았으니까.”

“어머, 그래...하긴 그렇네. 자기 나이가 32살이니까...”

미영은 본능적으로 영민의 어머니 나이와 자신의 나이 차이를 계산했다. 겨우해야 10여년 차이다. 그것이 미영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때 로미가 미영의 발밑에서 낑낑거렸다.

“로미야. 엄마가 우리 로미를 깜빡 잊었구나. 배고프지? 영민씨 로미 좀 봐줘. 이유식 줘야겠어.”

“이유식 있어요?”

“집에서 준비해왔어.”

미영은 보온통에 들어있는 이유식을 펫보울에 따랐다. 배가 고팠는지 이유식을 보자마자 로미는 펫보울에 머리를 처박았다. 미영은 로미가 이유식을 먹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섹시해요.”

“어? 뭐가”

“그 옷 입은 모습.”

미영이 황급하게 입은 것은 영민의 니트였다. 니트가 길게 미니스커트처럼 미영의 엉덩이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어휴...”

미영은 눈을 흘기며 니트를 끌어내렸다.

그러고 보니 영민은 달랑 팬티 차림이다. 남자들은 여자하고 자고나면 부끄럼을 잊는 모양이다.

“참, 배 안 고파요?”

“배고파?”

“나가서 먹을래요?”

“아냐, 그냥 시켜 먹어.”

“뭐 먹을래요?”

“짜장면.”

“짜장면요? 그런 거 안먹을 것 같은데...”

사실이다. 미영은 철이 든 이후로 짜장면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왠지 짜장면의 검은색이 싫었다.

“그냥 먹고 싶어.”

번개반점이란 중국집은 말 그대로 번개였다. 전화로 주문한 지 10분도 안돼 짜장면 두 그릇을 가져왔다. 오피스텔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족히 5분은 걸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10분 만에 가져오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미영은 마치 짜장면을 처음 먹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맛이구나. 그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어. 먹어본 지가 하도 오래 돼서...아마 중학교 때 먹어보고 처음일 거야.”

“맛있어요?”

“응. 근데 영민씬 이걸 점심 때마다 먹는 거야?”

“제일 무난하거든요.”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

“근데 나 김실장이란 사람한테 미운털 박히는 거 아녀요?”

영민의 말에 미영이 짜장면을 뜨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뺐는 것 같아서 말이어요. 회장님을 보좌하는 입장에서 내가 예쁘게 보일 리 없잖아요.”

“별 걱정을 다 한다. 하긴 요즘 김실장 속이 타긴 탈 거야. 할일은 태산처럼 밀려 있는데...”

“도대체 하는 일이 뭐여요?”

“이것저것...” 

입맛이 떨어지는지 미영은 젓가락을 놓았다.

“내가 공연한 말을 한 것 같군요.”

“그런 거 아냐. 말해봐야 복잡하니까.”

“부동산 같은 거요?”

“부동산 쪽도 있고 파이낸셜, 펀드, 건설, 유통...한두 가지가 아냐.”

“건설도 하세요?”

“지분을 갖고 있어. 요즘 그쪽 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왜요?”

“인천시 신청사 수주 건 때문에...곧 최종 입찰이거든. 김실장도 그것 때문에 회사 프로젝트팀하고 정보수집과 자료분석에 정신 없는 상태지.”

미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미안해요. 공연한 얘기를 해서.”

“아냐. 나 샤워 좀 하고 올게.”

미영이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샤워버튼을 누르자 앞과 옆쪽의 워터제트 구멍에서 입체적으로 물줄기를 뿜었다. 물줄기가 온몸의 근육을 두들기자 머리가 맑아진다.

인천시 신청사 수주. 생각만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지난 1년 동안 피를 말리는 전쟁이었다. 수많은 적들을 쓰러트리고 이제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 마지막 관문. 입찰액 싸움이다.

문득 인기척에 미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뿌연 수증기 속에 영민이 서 있었다. 

알몸인 영민이다.

바둑TV에서는 콩지에와 치우쥔의 삼성화재배 결승전 제1국을 중계 중이었다.

한참 흥미진진한 중반전에 중간광고가 나온다.

화면은 이글루부터 피라미드, 콜로세움, 타지마할, 그리스신전, 자금성, 앙코르와트 등 건축물 사진이 Donna summer의 I feel love 전주곡에 맞춰 스피디하게 바뀌었다. 전주곡이 최고조에 달하자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남자 탤런트가 등장한다. 남자 탤런트의 말은 짧고 강렬했다.

-건축은 아름다운 창조입니다-

짧은 순간 다시 화면은 이미지 사진으로 바뀌었다. 

물위에 떠있는 배를 형상화한 웅장한 건축물이었다. 그 화면 위에 巨城이란 로고가 강렬하게 찍혔다. 굳이 건설회사란 말을 안해도 건설회사 광고란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요즘 저 회사 광고 무지 하네.”

“그러게 말이야. 9시 뉴스에도 하던데.”

“거성이란 건설회사도 있었나?”

“저렇게 광고까지 하는 걸 보면 큰 회사인 모양이지.”

기원에서 TV를 보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매스미디어의 힘이다. 두달 전까지만해도 거성이란 회사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이제 거성하면 건설회사란 걸 누구나 알았다.

광고가 끝나고 바둑이 계속되었다. 콩지에의 장고는 끝이 없는 듯했다.

사활이 걸린 순간이다.

TV를 보고 있는 영민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야.”

박회장의 말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알아? 거성 인수하는 데 500, 기획진행비에 광고비가 100억이 넘었어. 알겠어? 600억이 넘게 들어가는 사업이야. 지면 죽는 거야.”

박회장은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영민의 목줄을 죄었다.

영민이 박회장의 생각에서 빠져나온 건 핸드폰 소리 때문이었다. 

시계를 보자 2시를 넘고 있었다. 미영일 것이다. 미라클 오피스텔에서 같이 잠을 잔 이후에 생긴 습관이다. 언제나 이 시간이면 전화를 한다.

미영이다.

“밥 먹었어?”

언제나 하는 첫마디다.

“지금이 몇신데...”

“짜장면?”

“응.”

그리고 로미 얘기를 할 것이다. 이제는 미영이 무엇을 할 것인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훤하게 아는 영민이었다.

영민과 통화를 끝낸 미영은 김실장의 방을 노크했다. 요즘 거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김실장이다. 김실장은 인천시 신청사 입찰 막바지에 밥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미영은 김실장한테 미안한 마음이었다.

김실장의 방은 거실 입구 옆방이다.

미영의 방문에 김실장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방이 좀 지저분합니다만...”

“괜찮아요.”

당황해하는 김실장을 보고 미영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드레스룸과 욕실을 갖춘 방은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김실장이 이 집에 들어와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방에 들어와본 건 처음인 미영이다. 

김실장은 남편인 고복태의 심복이었다. 처음 운전기사로 취직했던 그가 고복태의 눈에 띈 것은 중국인 사업가와의 비지니스 미팅 때였다. 미리 약속한 통역사가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고복태를 수행한 임원들 중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김실장이 통역을 맡았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이었다. 거기다가 통역으로 해결할 수 없는 디테일한 협상 부분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다. 고복태는 대어를 낚은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김실장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비록 직함은 실장이지만 회사의 실질적 2인자 자리까지 오르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고복태가 죽고나서도 김실장은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것이 언제나 고마운 미영이다

“그래도 깨끗한 편이군요.”

방안을 둘러보던 미영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김실장이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그런 김실장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실 남자방치고는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방금 풀어 놓은 듯한 넥타이가 침대 위에 있을 뿐이다. 아마 일하다가 풀어 놓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노타이 차림의 김실장도 처음 보는 모습이다.

미영의 눈길이 프린터기로 향했다. 프린터기는 연신 인쇄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미 책상위에 100장도 넘게 보이는 인쇄물이 쌓여 있는데 프린팅은 끝날 줄 몰랐다.

인쇄된 용지 하나를 미영이 들어 보았다.

“신청사 입찰 자료군요.”

“팀에서 보내온 걸 프린팅한겁니다.”

“그럼 프로젝트가 완료된 건가요?”

“회장님께서 보시고 결정만 하시면 됩니다.”

미영은 용지를 보았다. 용지에는 숫자가 가득했다.

이것 한장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저걸 다 보아야한다. 생각만해도 지옥이었다. 하긴 3000억이 넘는 공사다. 쉬울 리가 없다.

“김실장이 미리 검토해보세요.”

“알겠습니다.”

미영이 나가려는데 김실장이 부른다. 조심스런 말투다.

“...회장님.”

“네.”

미영이 돌아보자 김실장이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무슨 일이어요?”

“죄송합니다만...”

김실장이 다시 말을 끊었다.

“왜 그래요, 김실장. 무슨 일 있어요?”

“고영민씨...말입니다.”

고영민이란 말에 미영의 눈빛이 반짝인다.

“영민씨가 왜요?”

“주제넘습니다만...제가 그 사람 뒷조사를 해봤습니다.”

“뭐라고요? 영민씨 뒷조사를 했다고요?”

미영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한다. 미영에게서 그런 목소리는 처음 듣는 김실장이다.

“김실장!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해요! 왜 그 사람 뒷조사를 하는 거여요!”

“죄송합니다...”

김실장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 김실장을 뚫어져라 노려본 미영은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버린다.

김실장은 마치 고목이라도 된 듯이 그대로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런 김실장에게 다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실장은 그대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있었다.

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죠? 김실장이 뒷조사했다는 내용이...”

김실장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절대 열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자신이 목숨처럼 모시는 분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게 될지 이미 알고 있는 김실장이다. 하지만 열어야 한다. 이대로 묻을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도 어차피 밝혀질 것이다. 지금도 감당할 수 없는 상처다. 그런데 나중이라면 그 상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김실장은 피를 토하듯 입을 열었다.

“박회장 사람입니다.”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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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10 본 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