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잔 간단히 걸치며 김기헌 사범님의 대국을 감상하고 있는 제 옆에 여자친구가 슬며시 앉습니다.
"오빠 그게 그렇게 재미나?"
전 슬그머니 겁이 납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즈음 똑같은 질문에 "응, 너보다 더 재미나!" 라고 무심코 한마디 했다가 당한일이 생각이 나서였지요.
자신보다 바둑이 더 재미있다는 말에 질투가 났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곤, 도대체 바둑이 얼마나 재미있기에...하면서 저에게 배움을 요청했었지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둑의 'ㅂ'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일이란 걸 그때 깨달았지요.
서로 따먹을 수 있는 상태가 '패'이다. 일단 패는 다른 곳에 한번 둔 다음에 딸 수 있다고 그렇게 설명을 해줬음에도 저를 따라 낼름 따버리고는 '헤헤~' 웃던 그녀.
축이 뭔지를 그렇게 설명해 줬음에도 좌하귀에서 우상귀의 끝까지 고집스럽게 나간 후 '어라? 죽네!' 하면서 울상짓던 그녀.
장문을 알려 줬더니 대충 씌우기만 해도 '어라? 장문이네...' 하며 싹싹하게 돌을 헌납하던 그녀.
환격인데도 꼭 먼저 따내어 확실히 죽어있음을 재차 확인하던 그녀. 그리곤 꼭 '고게 고렇게 되나?'를 덧붙이던 그녀.
바둑의 예와 도를 그렇게 설명해줘도 끓인 라면을 덥석 바둑판 위에 올려놓으며 '아차 계란 안 넣었다!' 하는 그녀.
바둑알을 고작 쩜백 고스톱판의 백원짜리 대용으로 바꿔버리던 그녀.
결국 일주일 만에 저는 손을 들었고, 그녀는 알까기로 전업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경험을 갖고 있는 저로선 그녀가 질문한 의도를 머리 속으로 생각하느라 답이 늦어졌습니다.
"오빠 가르쳐 달라고 안할 테니 걱정 말고 얘기하셔!"
속내를 들킨 저는 얄궂게 엉뚱한 답을 하고 맙니다.
"우리 알까기나 한번 할까? 맥주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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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린 후 제가 맥주를 사와야 하니 결과를 짐작하실 겁니다.
바둑엔 젬병인 그녀, 알까기는 이창호입니다.
물론, 맥주 한잔 먹은 후 출출하면 바둑판 위에 놓여있는 계란 동동 띄워진 라면 한 그릇 먹어야겠지요.
2002-08-17
'엽기적인 그녀' 중에서...그녀의 당혹스런 질문 "야 너 이 옷 입지마!"
그녀의 당혹스런 질문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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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돼지
술익는향기
한솔풍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