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인제 저...."

하사범이 뒤통수 긁어제끼며, 이제 더이상은 못 기다리겠으니 점순이와 결혼을 시켜 달라고 하면 대답이 늘,

"결혼이고 뭐고 프로가 되야할 거 아녀!"

여기서 프로라는 것은 하사범이 아닌 장차 그의 아내가 될 점순이의 여류 프로 바둑입단을 말하는 것이다.

대전 OO동에 위치한 만방기원 사범 하대용(30세).

5년전 만해도 그는 만방기원의 어엿한 CEO인 원장 하대용이었다.

대전출신인 그는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가 10대시절을 연구생으로 보내며, 한때 연구생 1조로 입단 0순위라는 평가도 받았으나 프로라는 것이 꼭 실력으로만 되는 것이던가? 분명 자기보다 실력이 낮다고 평가되는 상대도 입단대회 본선리그에서 만나면 힘 한번 못써보고 패퇴하기를 몇년...

결국 나이제한에 걸려 연구생에서도 퇴출되고 아마강자란 이름으로 입단대회에 꾸준히 참가하였으나 프로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기만 하였다.

결국, 군대를 제대한 후 고향으로 낙향하여 집안의 도움으로 만방기원을 개업한 게 바로 5년전이었단 말이다.

잘생긴 외모에 서글서글한 말투하며 웬만한 동네1급쯤은 4점씩 접는 출중한 실력까지... 인근의 기원들이 경영난에 허덕일 때도 청년 하원장의 만방기원은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살았다.

그러던 하원장의 호칭이 하사범으로 불린 것은 박봉필이란 사내가 그의 기원에 출입하면서부터였다.

박봉필이 어느날 열아홉 살 먹었다는 딸 점순이의 프로입단을 하원장에게 부탁한 것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는데...

"하원장. 점순이가 기재는 있는디 운이 없는겨. 내 가진 재산 다 털어넣으며 서울에서 바둑유학을 시켜어! 거그서도 인정을 받았지...근디 야가 새가슴인지 입단대회 본선에만 나가믄 미역국을 묵네? 자네도 보다시피 진짜 가슴은 크잔냔 말여~

인쟈 점순이 야도 고딩핵교도 졸업하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고향에 온겨...그러니 하원장 자네가 우리애 좀 잘 맡아서 내년엔 꼭 입단시켜 주게...내 입단만 시켜준다면 우리딸을 자네한테 줌세~!!"

자신이 걸어왔던 상황과 비스므리한 점순이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함도 아니었다. 하원장이 그 자리에서 오케바리!! 하며 1초도 안되 승낙한 것은 다름아닌 점순이의 미모!!

바둑만이 내 기쁨^^ 하며 살았던 하원장에게, 점순이는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오다가 만방기원에 불시착한 바로 그 모습이었는데...

하지만, 그가 이 계약이 잘못된 것을 알기까진 채 3일이 걸리지 않았다.

"하원장...우리애 가르칠라면 시간이 읍자녀? 내가 기원관리는 다 해줄텡께 자네는 우리딸애만 신경써어~~ 그리구 앞으론 장인어른이라 불러!!^^*

어이 하사범...하사범이라 불러도 돼지? 일단 기원 바닥부터 쓸고 시작하는 게 어뗘? 깨끗한 환경에서 깨끗한 정신이 나오는 법 아녀...이봐 사위!! 빗자루 어딨는지는 알지?"

그렇게 된 일이었다.

그날 이후 자신의 기원에서 돈 한푼 못받고 청소에 접대대국에 마치 머슴살이를 하게 됐던 하원장...아니 하사범이 되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작년까진 하사범도 점순이 얼굴만 보면 모든 걸 참을 수 있었다. 점순이가 비록 나이는 찼으나 타고난 기재에, 입단대회도 본선 시드까지는 받는 등 '내년에는!!'이란 희망을 갖게 했으니까~!!

그런 하사범이 5년째인 올해, 24살인 점순이가 이젠 입단대회 본선에도 못 오르고 예선에서조차 미역국을 먹고오자 생각이 바뀐 것이다.

'애초부터 불공정 계약였던겨. 2년이면 2년, 3년이면 3년, 기한을 딱 정해놨어야 했는디 덮어놓고 입단하고 나면....했으니, 이러다 점순이 환갑되는 거 아니냔 말여!'

"이젠 못참거쓔!! 올해 안에 혼인 안시켜주면 제가 점순이 데리고 야반도주라도 할뀨~"

단단히 마음먹고 따지는 하사범에게 박봉필 원장(!) 한가지 제의를 하는데...

"호선으로 한판 둠세. 자네가 이긴다믄 딱 내년 한번만 입단대회 더 나가보구 안대믄 혼인시켜 줌세...야 점순아! 니가 증인 혀!! 대신 자네가 지믄 입단 할 때까지여~~ 알것지?"

평소 3점바둑인 장인 박원장의 제안에 이게 웬 떡이냐! 게다가 뽀뽀한번 해보진 못했지만, 입단대회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하사범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오빠 미안해'란 말로 이심전심 사랑을 주고받던 점순이의 증인까지!

그렇게 장인어른과 점순이를 앞에 두고 손님도 한명 없는 만방기원에서 시작된 대국은 결과가 눈에 보였다.

'딱 한집만 이기자...장인어른 대마잡아 이길 필요 있나? 오직 내게 필요한 건 점순이뿐!'

대국은 종반에 이르렀다.

설렁설렁 둬준 하사범보다 흑을 잡은 박원장의 집이 반면으론 1집이 많았다. 백의 5집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이제 남은 곳이라곤 백돌 3개 쪽 옥집 한곳과 공배 몇군데뿐.

박원장 마무리 하자는 듯 으레 백돌 3개를 단수쳤다.

옥집을 메우려 바둑통에 손을 집어넣어 돌을 하나 쥔 채, 하사범은 박원장 옆에 서서 관전하던 '내사랑~' 점순이를 빙그레 쳐다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둘의 눈이 마주치던 바로 그 순간.

점순이는 입술에 침이 마른다는 듯 혀를 빼어내어 입술을 한바퀴 돌린 후 왼쪽 눈을 찡긋! 동시에 왼손으로 미니스커트의 한쪽 끝을 살며시 올리는 게 아닌가????????

하사범은 그때 봤다. 그녀의 빤쮸를~! 그것도 빨간 망사빤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