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언젠가 문용직 선생의 반상일기에서 현현기경을 읽은 적이 있다. 문선생은 현현기경이 송말 '안천장' '엄덕보'가 처음 편집을 했고 원대 '우집'이 재편집한 책이 현현기경이라 했다.

사실 안천장, 엄덕보는 생몰연대가 정확치 않다. 중국의 국수급 바둑인이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현현기경만큼이나 유명한 사람들이다. 삼국지나 금병매 저자들이 부럽지 않다.

그러다 요 며칠 자료 한 편을 읽다가 뒷골이 땡겼다. 현현기경이 안천장, 엄덕보보다는 우집과 구양현을 더 주목하는 내용이었다. 우집의 '집'과 구양현의 '현' 그리고 우집과 구양현의 조상들의 매치를 거론하며 이들이 현현기경 출간의 공헌자(?)라는 거다.

우집(虞集 1272-1348)과 구양현(區陽玄1273-1358)은 '오징'과 '게해사'와 더불어 원나라 초반의 사대 명사다. 특히 우집은 고려의 학자 이색이 스승으로 생각할 정도로 유명인사다. 우집은 현현기경의 서문을 썼는데 그 내용에 우집과 안천장 엄덕보등이 같은 시대 사람임을 알게 된다. 우집은 이 서문을 쓴 후 1년만에 죽었으니 그들보다는 한참 선배였을 것이다.

우집은 말한다.

[금년 가을 여릉(盧陵)에서 온 손님이 와 전했다.

송(宋)의 옛 승상이자 원헌공(元獻公)의 자손인 안천장(晏天章)과 동향인 엄덕보(嚴德甫)는 둘 다 바둑을 잘 두는 국수인데 그들은 대국을 하면서 자신들의 가문에 내려오던 비보(秘譜)를 보고 익힌 것들을 본받고 깊이 연구하여 새로운 수의 발굴과 뛰어난 의견과 기모신략(奇謀神略)한 사활을 정리했다.

한 수로 승패를 결정하는 것과 안위를 돌보는 등 이런 내용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돌의 형상으로 분류하여 각각 다른 이름을 붙여 수법의 묘체(妙諦: 뛰어난 진리)를 순서대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바둑의 비결을 서술하여 상세하게 완비해, 실로 바둑의 경전을 대성한 것으로, 세상에 전하여 현현경(玄玄經)이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서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우집은 안천장, 엄덕보를 특정하며 그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현현경이라는 명작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현현경이라는 제목은 노자의 도덕경과 양웅의 대역(大易)에서 취해왔다고 한다. '현묘지묘'와 '하도 낙서' 말이다.

우집은 말년에 청탁을 받고 책의 서문을 인사로 썼을 뿐이다. 우집은 현현기경의 제작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아직 그렇다는 자료가 없다. 현현경은 현현기경, 원원경 등으로 명청대 계속 출판되어 왔다. 최남선이 1940년에 말한 대로 서로 베끼고 서로 교란하며 원본이 의심갈 정도라 했을 만큼 정리 정돈이 안된 것이 현현기경의 본질(?)이긴 하다.

서문에 우집, 반고, 노자, 마융, 장의, 피일휴, 여공. 양웅, 유중보 등이 어지럽게 등장하며 오리사리한 발언을 하고 후세 사람들이 그 발언을 해석하지 못해 쩔쩔 매며 간혹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하니 면구하다.

얼마전 현현기경 서지부를 모두 해독했다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도 아니다. 서지부 전체를 한역을 했다면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수록해야 맞지 않나? 대충 이런 내용이다 하며 전문 한역을 운운하니 뭐라 말해야 하나.

현현기경은 오래된 책이다. 원나라 초기의 유명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출판에 관여하고 있다. 명청대 계속 출판되며 출판자들이 고치고 끼워 넣고 하면서 원본의 모습이 교란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한국 등에서도 매한가지다.

고전 '현현기경' 그대의 본질을 밝혀줄 사람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