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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기녀와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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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기녀와 바둑
2011-12-27 조회 10988    프린트스크랩
▲ 조선 기녀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



공씨는 전작이 있다. 주인장이 사는 고을의 교방에서 바둑놀음을 하다 왔던 모양이다. 공씨는 바둑마니아이자 도박꾼인 것이다. 교방은 기녀들의 방이라기보다는 기녀들의 거리라 하는 것이 맞겠다. 조선시대 교방은 지방관아 근방에 있었는데 관아에 소속된 기녀들이 소속 관아의 노동력 제공의 임무(?)에 응하면서 생활의 방편으로 손님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 위해 방(房)을 열고 거리를 이루던 골목인 셈이다.

조선의 관아는 정청, 질청(作廳), 향청으로 구성되어 지방행정을 이끌어가는데 관아의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어 기녀들에게도 일정한 수준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수준유지를 강구하기도 했다. 기녀들은 현-군(縣郡) 정원이 10-20명이었고 목과 도(牧道)는 40명이었는데 이들은 일년에 육개월 정도 가야금 장구 아쟁 창 당피리를 필수과목으로, 서예와 바둑을 선택과목으로 습득해야 했다. 이 자료의 주장은 1920년대 전주권번의 자료로 확인된다.

평양기녀들의 활약상은 조선뿐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에도 유명했다. 녹파잡기 등에 나오는 기록 정도가 아니다. 구한말 평양 기녀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세상에 알리고 대변하는 월간지를 창간하여 운영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금력도 막강했다. 그리고 기녀들의 개인적 수준도 상당했다. 

실례로 전주권번 출신 허산옥(1925-1993)은 권번에서 배운 사군자와 목단화로 유명하여 국전 추천작가에 오르는 등 기녀들의 예능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관아에 소속된 기녀들의 수준과 수준유지를 위한 방안이 있었던 만큼 조선관아의 시스템은 장난(?)이 아니다. 조선의 지방관아는 정청을 지키는 사또를 중심으로, 이방을 중심으로 한 육방권속이 직무를 보는 질청과 관아 책임지역의 모든 세금을 걷는 서청(도서원)이 있다. 서청의 책임자인 도리(都吏)는 서리생활 30년 정도를 거쳐 이방을 지낸 아전이 가는 마지막 자리로 관아에서 가장 물이 좋은 자리다.


(1920년대 평양기생들이 당시 유명 문인을 편집장으로 초청하여 만든 잡지 '장한')


사또 옆에는 지방의 양반조직인 향청과 퇴임 아전조직인 안일방이 있다. 아전들은 지방관아의 행정임무를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세습시켜 육방권속 자리를 가족의 생도지망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 조선의 아전들은 세계에 유례 없는 전문직이자 부패의 원흉(?)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조선의 아전들은 정식 녹봉이 없었다. 관아에 딸린 관전을 지급받아 그곳의 소출과 관아의 경비를 조달하는 일종의 지방세인 잡세를 받아 관아 경비와 아전들의 생활비를 조달했다. 아전들은 질지세(송송비) 계방청(관아 소용 물품을 조달하는 대신 노역 군역을 면제) 등을 설치하여 '운영의 뒤'에서 남는 비용으로 관아의 어떤 백성들보다 풍족한 생활을 했다. 관아의 기녀들의 공동체인 교방은 지방 관아에 딸린 부속시설이자 여흥문화의 생산지로 나름의 큰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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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5252 |  2018-05-27 오후 12:51: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시절은 정말 인간미가 살아있는 풍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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