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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이 조용하니 바둑 두기 알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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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이 조용하니 바둑 두기 알맞구나
2010-11-10 조회 10729    프린트스크랩
▲ 산꼭대기 바둑 두는 모습이 보이나요? ^^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달성(達城), 자를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라 한다. 세종 26년(1444) 식년문과에 급제한 이후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어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으며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했으며, 또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國譯)했다. 성리학(性理學)을 비롯, 천문·지리·의약 등에 정통했다. 문집에 사가집(四佳集), 저서에 동인시화(東人詩話), 동문선(東文選), 역대연표(歷代年表),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필원잡기(筆苑雜記)가 있다.

서거정은 바둑과 관련된 시도 꽤 많이 남겼다. 이제 그 중 두 수를 감상해보자.


 

僧一菴1。來請談棋。(四佳詩集卷之二十○第十三)

僧來長喚欲談棋   승래장환욕담기2
慵拂棋奩故遲遲   용불기렴고지지
當局不迷從古小   당국불미종고소3
輸嬴勝敗竟何爲   수영승패경하위4

慵 게으를, 내키지 아니할 용, 奩 화장 상자, 궤 렴

일암(一菴)은 스님의 법호(法號)다. 서거정 시에도 여러 번 언급되거니와 신숙주와 관련되어서도 보이는 것으로 봐서 당대(當代) 개경사(開慶寺)의 주지(住持)인 것으로 추정된다. 개경사는 현재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健元陵)의 능침사찰이었다.

장환(長喚)은 문자적으로 보자면 ‘길게 부른다’는 것이니 ‘졸라대는 것’으로 뜻을 새겼다.


담기(談棋)란 바둑 두는 것을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교예(巧藝)에 “왕중랑은 바둑 두는 것을 앉아 숨는 것(坐隱)이라 하였고, 지공은 바둑 두는 것을 손으로 담화하는 것(手談)이라고 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왕 중랑은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왕탄지(王坦之)를 가리키고, 지공은 고승(高僧) 지둔(支遁)을 가리킨다.


傍觀者審 當局者迷이란 말이 있으니 “곁에서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은 세심하고, 직접 바둑을 두는 사람은 판단이 헷갈리게 된다.”는 뜻이다. 보통 대국자(對局者)보다 관전자(觀戰者)가 수를 더 잘 본다는 말이 있다. 당국자(當局者)는 바둑 두는 당사자를 이른다.


수영(輸嬴)은 ‘쏟고 채우다’라는 의미이니 승패(勝敗)와 동의어(同義語)다.


일암선사(一菴禪師)가 찾아와 바둑 한판을 청하다(사가집20권 제13)


스님이 찾아와서 바둑 두자 졸라대네
내키지 않아 느릿느릿 바둑 궤의 먼지를 털었네
바둑 두게 되면 헷갈리지 않는 자 예부터 적었네
끝내는 이기거나 지게 되어 있으니 어찌하란 말인가?


저절로 웃음을 짓게 하는 아주 해학적인 시다. 아마도 사가정이 일암과 바둑을 겨루어 진 것 같다. 지게 된 원인이 두기 싫은 것을 억지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핑계대로 있다. 몸이 좋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두기 싫은 심사를 느릿느릿 바둑용구를 챙기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바둑을 지게 된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원래 실력은 있지만 바둑을 두다보면 수를 착각하거나 헷갈리게 되어 질 수도 있는데 뭐 그렇게 한판 이겼다고 자랑하느냐고 은근히 핀잔도 곁들이고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요즈음도 기원에서 기우끼리 바둑 끝내고 소주잔을 기울이게 되면 누가 이겼네, 누굴 꺽었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졌네 등 뒷풀이 자랑과 푸념이 쏟아진다. 그 정경과 흡사하지 않은가?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승부에 임한 후의 심경은 다 같은 모양이다.


이 일암선사를 찾아가서 바둑 두고 난 후 지은 시가 또 있어 소개한다.



訪一庵專上人。金光城 謙光1,李韓城 塤 亦至。終日圍碁。抵暮乃還。(四佳詩集卷之三十一○第十九)


上方闃寂可圍棋   상방격적가위기2
相對無言日遲遲   상대무언일지지
薄暮欲歸僧挽袖   박모욕귀승만수3
滿階紅藥雨霏霏   만계홍약우비비

闃 고요할 격

 


광성(金光城)은 김겸광(金謙光, 1419〜1490)으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위경(撝卿)이다. 1469년(예종1) 예조 판서에 재임되었고, 1471년에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광성군(光城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상방(上方)은 주지가 거처하는 곳을 이르기도 하고 주지나 방장을 일컫기도 한다. 여기서는 주지인 일암선사의 방을 이른다.

박모(薄暮)는 옅은 저녁이라는 말이니 땅거미 혹은 황혼을 이른다.


일암(一庵) 전상인(專上人)을 방문했는데, 광성(光城)과 한성韓城) 이훈(李塤)이 또한 왔으므로 온종일 바둑을 두다가 저물어서야 돌아오다(사가집31권 제19)

절간이 조용하니 바둑 두기 알맞구나
서로 말이 없으니 날은 더디 간다네
해는 저물어 돌아서는 발길, 스님이 소매 당기니
뜰엔 붉은 작약 만발하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네


일암선사와 교유하는 각별한 정이 느껴진다. 바둑에 어지간히 심취했던 모양이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고 바둑에 몰두했으니 아마 사가정은 그게 좀 못마땅했던 것 같다. 그러건 저러건 어느새 땅거미는 내려앉아 돌아간다고 일어서니 더 놀다 가라고 은근하게 소매를 잡는다. 이 대목에서 스님의 애틋한 정을 새삼스럽게 느끼어 울컥했던 듯싶다. 이 얼마나 정경은 모습인가!

붉은 작약은 일암선사의 살가운 정을 은유한다. 부슬비(雨霏霏)는 그 정(情)이 촉촉하게 젖어옴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바둑을 두게 되면 좋은 벗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다 아는 말이지만 여기에 새삼 기도오득을 정리해 놓는다.

기도오득(棋道五得)

1. 득호우(得好友) 좋은 벗을 얻는다
2. 득인화(得人和) 사람간의 화목을 이룬다
3. 득교훈(得敎訓) 가르침을 얻는다
4. 득심오(得心悟) 마음을 깨닫게 한다
5. 득천수(得天壽) 천수를 누리게 한다

진부한 말은 간혹 그 진정한 가치를 잠시 잊게 하는 습성을 부여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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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山靈 |  2010-11-11 오전 9:33: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거정? 임꺽정은 아는데~  
여현 하하하. 위트가 대단하십니다.^^
靈山靈 감사~
AKARI |  2010-11-11 오전 11:17: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闃 고요할 격 ..
그렇군요...

저는...激...격하다 할때는 이 격자 밖에 몰랐는데..
제가 가진 작은 옥편에는..闃 고요할 격자가 안 나와여^^*

같은 격이란 음을 지녔는데도..
한가지는 고요하고..한가지는 격렬하고...ㅎㅎ

같은 음이나 같은 뜻이나..조금만 글자의 모양새가 달라도
변하는 한자는..참으로(?) 깊고도 묘한~ 매력이 있는것 같아요..
단지(?) 먹물의 농담 하나 바꿨을뿐(?)인데...여러 색깔과 느낌이
나는 ..  
AKARI 한국화나..동양화처럼요...좋은 글...찬찬히..찻물처럼 음미하고 있습니다..감사드려요^^*
여현 늘 관심갖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꿈속의사랑 |  2010-11-13 오전 9:37:4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기도오득....새삼 바둑이 좋은 것임을 알게됩니다. 좋은 글 준비하시느라 애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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