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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화타의 약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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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화타의 약탕기
2011-08-09     프린트스크랩

수표교 가까이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제중당(濟衆堂) 의원 이주부(李注簿)는 사대문 안의 방귀깨나 뀌는 인간들이 알게 모르게 찾아와 재미가 쏠쏠했다.

 

그가 주로 처방하는 약제는 해묵은 고서에서 뽑아낸 비방이라 은근짜로 수작부리는 위인들이 찾아들어 아랫배에 기름때가 오르기 십상이었다.

하는 짓거리는 미꾸라지 똥처럼 별 볼일 없었지만 문자깨나 주절대는 솜씨가 예사로운 게 아니어서 그것만 가지고도 장안의 명의반열에 들고도 남을 품새였다. 그가 은근히 내세운 건 <편작심서(扁鵲心書)>를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편작이 누군가? 오래 전에 중국에서 이름을 날린 의원으로 환자를 척 보면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었고 그의 말 한마디면 죽을 사람도 희망을 갖는다는 전설적인 명의였다.

 

이렇다보니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대단한 힘이 있었다. 특히 요결(要訣)로 전해오는 심서(心書)엔 대단한 것이 담겨있다. 이를테면, 의술이 뛰어나 신의(神醫)에 이르렀지만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가 있다는 것이어서 금과옥조로 전해지는 육불치(六不治)가 그것이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첫째, 환자가 교만 방자해 자기 말만 앞세우고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둘째, 자신의 몸을 가볍게 여겨 치료비를 아끼는 것

셋째, 음식과 옷을 시키는 대로 먹지 않거나 입지 않는 것

넷째, 음양의 장기가 완전히 깨어진 것

다섯째, 집안이 가난해 약제를 쓸 수 없는 것

여섯째, 무당의 말을 믿고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등이다.

 

이렇게 보면 <동의보감>을 쓴 허준의 말이 떠오른다.

무릇 의원이라면 환자의 상태를 긍휼히 어겨 치료비가 없다 해도 치료해 주어야 한다.’

 

이게 의원의 올바른 자세지만 제중당 이주부는 냉소를 흘리며 길거릴 헤매는 강아지의 풀 씹는 소리로 몰아붙였다.

말도 안 돼!”

 

그의 한의원 진찰실엔 한의학과 머리 좋은 졸업생들이 진 치고 있었기 때문에 관형찰색(觀形察索)의 진맥에 추호도 부족함이 없게끔 견습비란 명목으로 일주일에 10만원을 지불하는 비용이 적다는 분위기가 들끓으면 이주부는 일장 훈시를 늘어놓는다.

 

이것들 보라구. 이런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대답할 거야. 가정이 먼저냐, 직장이 먼저냐? 어떤 이는 가정이 먼저라구 씨알이 먹히지 않은 소릴 하지만 그건 껏도 모르는 자들이 심심풀이 땅콩 삼아 주절대는 소리야. 내가 볼 때는 당연히 직장이 먼저야. 왜냐?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그것으로 생활하고 집안의 아픈 사람을 치료할 것 아냐?”

 

일단 소란을 잠재우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한의원을 찾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모두들 돈을 버는 건 아니다. 사실 그렇잖은가. 야구를 보자고. 모든 선수가 쓰리 아웃 당하기 일순데 혼자서 안타치고 나갔다고 점수가 나겠는가. 모든 건 상황에 맞는 적시타를 계속 뽑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한의원도 마찬가지다. 양약과는 달리 한방은 환자가 고약한 병을 앓아야 돈이 된다. 반드시 이것이라고 할 순 없지만 돈이 되는 상품 물목은 대게 조루증(早漏症)이나 정력이 감퇴됐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고양이 눈알처럼 핑핑 돌아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답안이 빠른 거로 해결책을 내놓아야 제격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한의원에서 손대지 않은 약제에 요상한 이름을 붙여 환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게 껀수가 됐다. 그런데 유월이 들어서자 조금씩 손님이 줄어들더니 중순께부턴 아예 파리를 날리게 되면서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

 

사정을 알아보니 다리 건너 종로구청 가까이에 <토지(土地)> 한의원이 생기면서 손님이 줄어든 것이다. 이제 서른인가 된 김씨 성 쓰는 젊은이가 원장으로 앉았는데 손님을 맞이하는 촉수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아이구 우리 토지 한의원을 찾아주어 고맙습니다. 어떻게 이름을 토지 한의원이라 했느냐 하면 토지, 즉 흙이 천하 모든 물건의 토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흙이 있어야 그것을 밟고 사는 동물이 있고 뿌릴 내리는 식물이 있습니다. 간혹 사람들은 물은 다르다고 하지만, 물도 흙이 있어야 제 몫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걸 빨리빨리 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만 해도 그랬다. 학생이 공부를 잘 하려면 선생님의 학업진도를 빨리 받아들여야지만 이럴려면 뭣보다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지 한의원에서는 공부를 잘하게 하는 <총명탕>을 짓지 않고 <끈기탕>으로 학생들의 학업을 고취시킨다는 게 맞아떨어졌다. <끈기탕>으로 학부모의 관심을 끌자 이번에는 사내들의 힘에 대해 묘수를 날렸다.

 

공자님께서도 가정의 평화를 우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뭣이냐 하면 사내는 사내다운 힘이 있어야 하고 여인은 여인네 다운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도원경(桃源境)>이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얘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손님들은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주 옛날에 어느 어부가 신선들이 산다는 마을을 찾아 떠난 적이 있었어요. 조그만 배를 노 저어 숲 속을 헤집어 가는데 가까이서 닭 울음소릴 들은 거죠. 그곳을 가만 기웃거리니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며 몇 사람이 나와 자신들의 얘길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들은 진()나라 때 사람으로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산으로 숨었던 사람들이라 했죠. 이곳에 들어온 후 한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는데 세월이 흘러 한()나라나 위()와 진()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 후의 얘기도 있었지만 얘긴 일단 여기서 끝이 났다. 그들이 사는 숲 주위는 온통 복숭아나무가 심겨있어 언제나 손만 뻗으면 복숭아를 딸 수 있었다. 어부가 돌아올 즈음에 그곳 사람들은 부탁했다.

 

우리에 대한 얘긴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이 신신당부했지만 어부는 나중의 일을 생각해 군데군데 표시를 해두었다. 집으로 돌아와 관가를 찾아가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죄다 얘기한 것이다.

흥미를 느낀 관장이 사람을 보내 그곳에 갔던 길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후 도원경(桃源境)’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토지한의원> 김원장은 해석을 달리 했다.

 

말씀을 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라는 건 복숭아를 뜻하지만 다르게는 여인의 엉덩이를 나타내기도 하죠. 그리고 원()은 물()이 흐르는 구멍()이란 뜻이지요. 또한 경()은 그러한 지경이구요. 그러니까 어부가 길을 잃어 찾아가는 동네가 도원경이 아니고 남녀가 거시기 하는 게 도원경이란 말씀이죠.”

 

젊은 사내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은근짜로 을금슬금 풀어헤치자 손님들의 귀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런 얘길 할 때엔 노리는 게 있었다. 바로 강정비약이었다.
처음엔 사내의 정력을 꽃 피울 수 있는 술을 내비쳤다. 물론 상대는 그것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직접 구해줄 수 있는 부인들이란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고대의 의학서엔 남자에게 정력이 필요한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여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인의 몸을 솥, 즉 정()이라 하지요. 이 솥이 시원찮으면 사내들이 다른 솥을 찾아 바람을 피우는 거고 솥이 훌륭하면 그곳에 연금술을 열어 황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죠. 그렇기에 중국의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자신의 몸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술을 개발했는데 바로 <무후주(武后酒)>가 아니겠습니까.”

 

한 병에 삼십만원이라는 술을 도시의 여인들은 아낌없이 투자해 마셨다. 손님이 많아지면 약제가 딸린다는 이유로 슬금슬금 값이 올라 50만원을 단번에 호가했으나 손님들은 군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만큼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주부가 그런저런 소문을 들은 건 이 무렵이었다. 상대는 눈 터지게 돈을 버는 데 자기는 파릴 날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배알이 뒤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없어서 못 판다는 <무후주>를 구해 성분 분석했다. 그럴 듯한 약제가 들어갔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웬걸 <무후주>는 살아있는 민물새우를 도수가 높은 술에 담가 날 것으로 먹는 게 비방이었다.

 

이주부는 힘깨나 쓰는 사람을 구해 <토지한의원>을 겁박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그 사내에겐 약효를 신묘하게 만들어 주는 <화타의 약탕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화타의 약탕기? 그게 뭐야. 그게 뭐기에 <토지한의원>에서 애지중지 한다는 거야?”

 

소문에 의하면 그 약탕기가 대단히 신묘해 탕약을 끓이면 효험을 본다지 않습니까. <무후주>란 것도 그 약탕기에 담갔다가 내놓아야 효험을 본답니다. 해서, 시생이 그걸 빼앗아 오느라 힘깨나 흘렸습니다.”

 

애썼네. 내 그만한 보상은 해줄 것이네.”

 

아이구, 감사합니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인들이 고려의 산삼만큼이나 귀하게 여기는 금석곡(金石斛)>과 중국 황제들이 즐겨 사용한 오석산(五石散)의 비방까지 가져왔다.

완전히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이어서 이주부는 약탕기에 약제를 넣어 늘늘한 숯불에 끓이게 한 후 이제부터 벌어질 새로운 싸움에 대해 의욕이 되살아났다.

 

비싼 약제니만큼 그것으로 몸을 한 차례 다듬어 약제를 실험해 볼 생각이었다. 심부름 하는 계집아이가 탕약을 그릇에 담아 내오자 <화타의 약탕기>에 끓였느냐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원장 어른.”

 

이주부는 단숨에 들이켜고 입가심으로 준비한 박하사탕 한 알을 입에 물었다. 그때 누군가 황급히 뛰어들었다. 그는 이주부에게 서찰을 내밀다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눈엔 입가로 피를 줄줄 흘리는 이주부가 서찰을 받으려 손을 내 뻗다 한순간에 앞으로 얼굴이 처박히는 걸 화들짝 놀라 바라본 것이다.

 

<토지 한의원에서 급히 서찰을 보냅니다. 소인에게서 가져간 화타의 약탕기가 이주부 어른께 있다는 말을 듣고 급한 말을 전합니다. 그 약탕기는 신묘하여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나므로 평소 약탕기를 나쁜 기운이 틈타지 못하도록 복어알로 탕기 안을 닦아 보관합니다. 그것을 사용할 때는 맑은 물로 안을 깨끗이 닦아 사용해야 함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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