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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신라 천년의 비밀, 토우(土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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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신라 천년의 비밀, 토우(土偶)
2009-07-28     프린트스크랩
▲ 토우(土偶)
 

 

신라의 고대 사회를 비쳐보는 거울이 토우(土偶)다. 흙으로 만들었기에 구리거울(銅鏡)처럼 스스로의 모습을 비쳐볼 수 없지만, 흙 인형에 나붙은 성행위를 의미하는 갖가지 조각은 신라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가를 추측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조각가의 서툰 솜씨가 아니라 반백년 신라 왕실을 주물러 온 간교하고 사악한 여인 미실(美室)과 흉측한 사내 설원랑(薛元郞), 그리고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몰골 사나운 사내들의 추악한 보고서를, 요즘처럼 돈이면 제 살붙이도 팔아넘기며 죄악으로 부푼 배를 두드리며 방귀 뗄뗄 뀌어대는 사내들이 적지 않은 사회에 알리는 일이라고 이해하는 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1천5백년이 흐르는 동안 왜 신라 사회는 함구하고 고려의 역사가들까지 입을 다물었는가? 여기엔 삼국통일(三國統一)이라는 달갑지 않은 위업(偉業)이 자리를 같이 한다. 그렇기에 ‘토우(土偶)의 비밀’은 정사(正史) 속에서 실권을 가진 자의 흉물스런 행위로 나타나 역사의 강물 속에 한조각 편주(片舟)가 되어 위태위태  떠내려 왔다.

그렇다면 토우의 실체적인 주인공 미실은 어떤 여인인가? 어떤 여인이기에 자신의 몸을 사내들에게 들이대고 온갖 음란한 색정놀이를 즐긴 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색을 바쳐 왕실에 이바지 했다’(色供)는 말을 하는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라 역사를 혼탁한 구정물 속에 집어넣고 사라진 미실(美室)! 우리는 그녀가 칠색조(七色鳥)의 몸과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의 무분별하고 난잡한 성행위에  박수치고 환호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연 미실이란 여인이 존재 했는가? 존재했다면 우리가 신주 단지처럼 믿고 따랐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뭔가, 왜 그녀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역사연구가 김대문(金大問)이 쓴 <화랑세기(花郞世紀)>를 읽어 본 독자들은 느닷없이 튀어나온 ‘미실(美室)’에 대해 동경과 은일한 짝사랑으로 흠모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역시 ‘물욕’과 ‘색욕’에 찌들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그러기에 아이들의 농담처럼 다른 사람이 인물 반반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면 불륜이지만 자신의 유치한 행위는 풍류라는 변명을 내놓는다.

‘아름다운 방’으로 통하는 미실.

그녀는 신라 사회에 실존하는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가상(假想)으로 꾸며낸 실체 없는 여인이었는가? 실체가 있었다면 신라 천년의 역사는 다시 써야 하고, 없다면 우리가 배워 온 <신라사(新羅史)>는 잘못과 허탄함이 병합된 거짓의 역사라고 조롱받기에 충분하다.

부유사가(腐儒史家)로 지탄 받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엔 왜 미실에 대한 기록이 한 조각도 없는 걸까. 그녀의 존재성은 오로지 필사본(筆寫本) <화랑세기(花郞世紀)>에만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의문은 끝없는 자문자답(自問自答)의 실패를 돌리며 경주(慶州) 땅을 밟기에 이르렀고 월성(月城)과 인왕동 주변을 맴돌며 깨어진 토우(土偶)의 역사조각을 꿰맞추기에 전념했다. 신라 천년 역사를 펼쳐 미실이 살았던 시대를 핀셋으로 뽑아 기름종이로 만든 연표 위에 놓아 보았다. 그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흥왕(眞興王) 11년이지만 홍상미판(鴻潒未判)의 나이에 할머니 (玉珍宮主)의 가르침에 따라 신랑맞이에 나선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평범한 규중처녀에 불과했다. 사내들과 사랑을 나누다 쉰여덟에 죽기까지 그녀는 신라 왕실의 야리꾸리한 비밀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인친혼(姻親婚)을 내세운 그녀의 주장은 고려 사회까지 영향을 주었지만 이것은 역사서엔 실릴 수 없는 독버섯같은 기록이었다.

신라 왕실엔 두 종류의 피 흐름이 있었다. 진골정통(眞骨正統)과 대원신통(大元神統)이 그것이다. 진골정통은 정실 자녀들에게 대원신통은 후궁 소생의 자녀에게 내리는 칭호다. 왕위를 얻기 위해서는 진골정통의 피를 받아야 했기에 왕실은 보이지 않은 암투 속에 여인들이 날뛰는 걸 보아야했다. 스스로의 엽색행각을 미화하기 위해 ‘색으로 이바지 한다’ 했으니 색공(色供)은 어색(漁色)과 별반 다름이 없다.

신라에도 뜻있는 정의인사는 있었다. 그런가하면 있는 것도 없다 하고 모든 걸 부정으로 일관하는 꼴뚜기같은 인사도 있었다. 제왕의 독선과 탈선, 도리를 벗어난 난장(亂場)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귀로도 들었다. 더럽고 추악한 짓은 남몰래 흘려버리고 들통난 자신의 허물은 ‘운수 없다’고 투정부릴 위인은 그때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보면 당시의 신라사회는 향기 짙은 꽃이 썩어가고 먹음직한 육고기가 부패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고 찬란함이 있을 지 모르나 현미경을 들이대면 온갖 지저분한 독충과 똥벌레가 득시글댔다. 그러한 현실을 고발한 게 ‘토우(土偶)’다.

토우는 <소녀경(素女經)>과 <현녀경(玄女經)> 그리고 <채녀경(采女經)>에서 성행위의 체위(體位)를 가려뽑고, <옥방비결(玉房秘訣)> · <옥방지요(玉房指要)> · <청성비록(靑城秘錄)> · <하마도감(蝦蟆圖鑑)>에서 마흔여덟 가지 동물과 곤충을 가려 뽑아 토우를 제작했다. 토우의 비밀을 파헤치면 도교와 불교, 그리고 유교가 얼크러지는 지점을 알 수 있고 흙 인형 깊숙이 숨긴 신라사회가 어느 곳으로 달려가는지도 드러날 것이다.

‘토우(土偶)의 비밀’은 색공의 비밀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글 속에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토우(土偶)를 만들었으며 흙 인형 속에 숨은 신라 사회가 어느 곳으로 달려가는 지도 밝힐 것이다.

신라 왕실을 도색(桃色)으로 적신 미실. 그녀의 치맛자락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제왕들의 형상도 드러난다. 미실은 제왕을 바꿔버릴 위세가 있었으나 그녀는 어느 사이 신라 역사서에 매몰돼 버렸다. 왜? 무슨 이유로? 토우(土偶)는 그녀에 대한 오랜 시간의 저주이자 비웃음의 표식이었다. 그녀가 호화롭게 색공을 베풀었던 시간여행은 역사서의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흙 인형에 고즈넉이 붙어있다. 이제 그것을 밝히려 한다.


- 여설하 拜上


[소설 토우]는 매주 월~금요일 주 5일 연재하며 토, 일요일은 쉽니다. 연재는 8월3일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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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돼지 |  2009-07-28 오전 6:01: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용호관 |  2009-07-28 오전 6:02:1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
오로는 소설의 천국이네요^^;;  
한돌희망 |  2009-07-28 오전 7:44: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시뵙게 되어 좋은글을 읽을수 있다니 반갑습니다  
아리영™ |  2009-07-28 오전 11:53:5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요즘 한창 방영중인 <선덕여왕> 한회도 빠뜨리지 않고 보고 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내고향이 서라벌이라서 더 친근감이 있어요. 소설 토우 기대됩니다^^  
aichi |  2009-07-28 오후 6:40: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또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무등지고 |  2009-07-31 오후 1:03: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6등  
빈타 |  2009-11-01 오후 2:21: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여설하님 대단하시네요 존경스럽습니다 한번 만나뵙고 싶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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