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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의 '슈사쿠', 노르웨이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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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의 '슈사쿠', 노르웨이 (2편)
2014-09-10 조회 8245    프린트스크랩
▲ 액자 속 그림 같은 오슬로 풍경.


청명하고 깨끗한 피오르,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는 여행자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로 손꼽는다. 북극해와 노르웨이해를 끼고 있는 노르웨이 국토의 절반은 북극권에 속해 지형이 매우 거칠다. 험한 지형과 강인한 바이킹 후예의 영향으로 유명한 탐험가들도 꽤 많다. 면적은323,802 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보다 세 배 이상 크다.

 

수도 오슬로는 정치, 문화, 상공업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도시가 매우 깨끗하고 도시와 자연이 아주 잘 어우러져 있다. 인구는 50만 명이고 세계빅맥지수가 7.76달러로1위인 곳이다(대한민국은 4). 노르웨이는 1인당 기준 GDP 10만불을 좀 넘으며 세계 3위이고 오슬로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이다. 노르웨이의 물가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국민들도 이 물가에 맞춰 살 수 있을 정도로 노동자의 임금 또한 아주 높다.

 

필자는 작은 사고 한번이라도 나면 그 즉시 파산할 것 같은 살인물가에 늘 조심조심 했다. 예상치 못했지만 노르웨이에서 19일을 머물르는 동안 거의 모든 것을 제공받아 24000원밖에 쓰지 않았다. 한번은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오는 기차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웬만한 나라에서는 못 찾을 것 같은데 1주일 후에 오슬로 기차역에서 찾았다. 엄마품을 떠난 아가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오슬로 바둑인들과의 다면기.


토토로를 닮은 오슬로바둑협회장 크리스틴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기차역에서 날 반긴다. 크리스틴은 노르웨이어 선생님이고 바둑의 역사적인 스토리 들을 아주 즐긴다. 그의 기력은 1급과 1단 사이. 오슬로바둑클럽에서 그를 이기면 1단이고 못 이기면 아직 1급으로 간주된다. ^^

 

노르웨이바둑협회는 1977년에 바둑 홍보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첫 바둑클럽은 에릭(Eric van Grieken)이 베르겐대학교에서 1976년에 만들었다. 그 뒤로 크리스틴(Kristian Leer-Salvesen)과 젠(Jan Nordgreen)은 일본기원에서 출판한 책 바둑두는 법을 어디선가 구해와 마스터 하고 그 뒤로는 바둑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젠은 바둑문화를 노르웨이에 전파하기 위해 1976부터 4개의 중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 바둑이 방과후 활동으로 들어왔을 때 교장선생님이 했던 말이 이랬다.  바둑알로 창문을 깨뜨리면 누가 수리하나?” ;; 


워크샵 점심시간에...

노르웨이바둑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멤버수는 45명이다. 전국에 걸쳐 6개의 바둑클럽이 있다. 하지만 오슬로와 베르겐을 제외한 나머지 클럽들은 거의 활동을 멈춘 상태이다. 오슬로바둑클럽은 매주 수요일에 만나고 15-20명이 온다. 이 나라 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이 적고 바둑에 대한 인식도 또한 낮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 노르웨이에서는 1999년부터 시작된 북유럽챔피언십(Nordic Championship) 4년에 한번씩 개최되고 있다. 오슬로와 베르겐에서 지역 오픈 대회도 1년에 한번씩 열린다.

 

베르겐에서 했던 것과 같이 오슬로에서도 바둑워크샵을 했다. -일 오전10-오후6. 베르겐클럽보다 더 조용한 것 같다. 다들 열심히 보긴 하는데 질문을 하면 대답을 듣기가 쉽지 않다. 정석이후, 프로기보해설, 바둑퀴즈 시간을 오전에 가졌다. 점심을 먹고 다면기를 했다. 7명과 다면기를 두었고 가장 잘 두는 사람은 4단 이었다.

 

오슬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오슬로바둑협회장을 1996-2008년 동안 해왔고 연차를 매년 2주씩 유럽피안바둑콩그레스에 쓰고 북유럽 바둑잡지 편집자로도 일했었다. (Pal Sannes)이다.

 


폴과 함께.


필자는 폴의 집에서 1주일 반을 머물렀다. 그의 책장은 놀랍게도 80%가 바둑책으로 메워져 있다. 바둑소설에서 시작해서 바둑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는 바둑책을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이제까지 읽은 몇 백권의 바둑책들의 베스트 순위도 매겨준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중국인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녀는 바둑을 두진 않았지만 폴이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친구를 통해 바둑을 알려 주었다. 폴은 그 즉시 바둑의 오묘함에 매료되었고 대학교에 있는 바둑클럽에 1주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나갔다. 그는 바둑책을 보면서 바둑이 가장 많이 늘었다고 했다. 바둑을 접한 지 1년 후 그는 노르웨이 챔피언이 된다.

 

폴은 바둑협회장을 오랫동안 했고 노르웨이 바둑계에 기여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다. 바둑협회장을 오래한 이유는 그만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길 노르웨이 사람들은 바둑두는 건 좋아하지만 대회를 열거나 행정업무에 참여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20년 가까이 해온 그는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됐다 싶어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폴의 집에서 3일간 묵을 계획이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1주일을 넘게 있게 되었다. 폴에게 좀더 오래 묵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걱정스럽게 하는 말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게스트를 위한 저녁 레시피는 3일치밖에 없는데 큰일이네…” ㅎㅎ 한번은 슈퍼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고르고 혼자 다 먹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폴이 똑같은 과자를 사다 놓았다. 섬세함의 끝을 보여줬다.

 

그는 내가 뭔가를 한번 말하면 절대 잊지 않고 있다가 꼭 챙겨준다. 필자에게 바둑을 복기 받은 후에도 가지런히 해설을 적어놓는다. 이런 섬세함과 순수함이 폴의 매력이다. 

 

폴은 암벽타기 전문가이기도 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나 루트를 먼저 찾거나 만들면 본인이 원하는 아무 이름이나 붙일 수 있다. 그는 저기 보이는 산에 슈사쿠가 있다 했다. 슈사쿠? 내가 아는 슈사쿠인가? 궁금증을 품에 안고 그를 따라갔다. 폴은 10개 이상의 루트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는 슈사쿠라고 이름을 지었다.

 

바둑의 대가들이 많은데 왜 슈사쿠냐고 물어보니 슈사쿠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바둑에 관한 이름을 지으려면 슈사쿠로 해야 될 것만 같았다고 했다. 노르웨이에서 슈사쿠와의 만남을 가질 줄은 몰랐는데 뜻밖의 수확을 거두었다. ^^
 


북유럽 바둑잡지.


세계최고의 탐험가 콘티키 박물관.


비겔란공원 화난아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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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談山房 |  2014-09-11 오후 2:39:1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나라 바둑용어를 강의에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항상 강건한 모습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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