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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고대소설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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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고대소설 뒷담화
2012-03-16 조회 10055    프린트스크랩
▲ 청사. 간단하지만 좋은 산문으로 쓰여졌다.






한문의 세계에서 시에 비해 소설이 등장한 것은 지극히 후대의 일이다. 한문은 시에 비해 소설류의 산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소설류의 소급연대가 당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춘추시대에 완성된 시경을 견주어 보면 소설류의 등장이 얼마나 더디고 무딘지 파악이 된다.

 

동양의 소설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소설류의 글쓰기를 사기(史記)와 장자 등에서 찾는다. [선진일사]가 읽히던 조선의 18세기 사람 '유만주'는 소설의 등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설은 당나라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장자와 사마천이 시작했다.(人知小說田方于唐人 不知其田方于莊馬也) 불경은 글이 간략하지만 내용이 정밀하고 섬세하여 더할 말이 없다. 이런것이 훗날 소설이 된것이다(內典文雖簡 而其辭 則秀曲殲戈細 更無餘有 此所以流 而爲後世 小說元祖宗也餘) -유만주

 

유만주는 소설의 원조를 사마천과 장자를 꼽는다. 불경도 소설문장으로 좋다고 한다. 운율을 장려한 시만으로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는 글쓰기의 한계를 고민한 과정에서 나온 말로 이해가 된다. 유만주의 이 발언은 유만주의 독단적인 발언은 아니다. 김만중이나 박지원 등 조선의 유수한 문인들도 이런 고민을 했다. 박지원은 좋은 산문을 쓰려면 장자를 공자로 알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고 했다. 김매순의 다음 발언을 보자.

 

말을 잘하는 사람들 중  장자나 굴원 사마천을 보라. 이들은 모두 초야에 묻혀 곤궁하게 산 사람들이다. 슬픔과 근심 그리고 비분강개가 있으나 모두 뜻을 펴지 못하고 초야에서 통곡하고 비웃으며 욕을 하듯 글을 쓴 사람들이다. 이런 글쓰기가 높은 수준의 글로 나오기도 했지만 때론 야담류의 거칠고 속된 글이 나오기도 했다. -김매순

 

김매순은 이 시대 가장 정치한 문장을 구사하던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정조는 이 김매순을 입에서 젖비린내 나는 하류라 평을 하기도 했다. 18세기 조선의 글쓰기의 분위기는  정조의 소품체 금지령에서  알 수 있다.

정조는 당대의 가장 유망한 문장가들을 지목하여 소품체류의 글쓰기라 평하면서 금지와 반성을 요구한다. 김매순 박지원 박제가 이옥 김조순 등이 지목 대상자들이다. 정조는 문장은 요순시대의 덕과 문을 존중하고 권장하는 것이 생명인데 이들의 글은 지나치게 날것으로 인의예지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조의 이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18세기 문단에 통용되지 않는다. 18세기 문인들은 소품체 문장으로도 충분하게 인간의 덕성과 존엄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고 더 나아가 그런 글쓰기는 소품체가 적격이라는 단계로 나간다. 결국 그들의 글쓰기는 근대라는  세계로 나가는 더듬이 역활을 한다.

 

모에(萌之)는 봄바람이 불면 싹을 틔우기 마련이다. 한 문화의 싹은 작은 땅과 물과 거름이 주어지면 꽃을 피우고 가지를 키워 끝내 거목이 된다. 선진일사류의 고소설의 발아로 오늘날 한국문단이 성장했다면 실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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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정원 |  2015-10-11 오전 6:17: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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