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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종묘로 간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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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종묘로 간 바둑
2012-02-06 조회 9303    프린트스크랩
▲ 종묘 佾舞의 한 장면. 문화재청 자료.

 

공씨가 주인과 사투를 벌이는 날 한양 종묘에서는 거창한 행사가 열린다.

조선의 국왕이 면류관과 구장복을 갖추어 입고 종묘로 행차를 한 것이다. 국왕은 어룡대와 의장대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종묘에 들어서고 문무백관은 열을 지어 국왕의 뒤를 따른다.

종묘의 넓은 광장에는 당상악(堂上樂)과 당하악(堂下樂)으로 나뉜 악단이 앉아 있고 일단의 일무들(佾舞)이 정렬해 있다가 국왕의 행차와 함께 음악을 내고 춤을 펼친다.

 

악단은 50명이고 춤꾼들은 64명이다.

50명의 악단의 음악과 64명의 춤꾼들의 화려한 매치와 조화는 눈과 귀 그리고 분위기라는 인간의 오감을 모두 자극한다. 정대업지락(定大業之樂) 11곡 중 첫번째 곡은 이렇다.

하늘이 우리 열성조를 보듬어시어

세세토록 큰 공을 세우게 하시고

햇빛같은 비교할 수 없는 공훈.

이를 기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종묘제례악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세조임금 시대에 완성된 왕실 음악으로 조선왕조의 권위와 품위를 함축해 놓은 음악과 춤의 예술이다. 악과 무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선시대의 악과 무는 그저 술 한잔 먹고 노래방에서 고성방가하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근본이 다르다.

음악은 내면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예의는 외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여 예는 겸양을 중하게 여기고 음악은 감성을 중하게 여긴다. (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
-
예기(樂記)

고성방가(?)에 불과한 오늘날의 음주문화와 비교하면 어떤가. 춘추시대 동양의 음주문화의 일단이다. 조선시대의 악과 무는 음감과 춤의 동작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와 덕목을 부여했고 악과 무를 실현하는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 모두가 그것을 공감했다. 음악과 춤을 이해할 정도의 사람은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문화인이다.

소위  '정대업'이라 부르는 이 노래의 마지막번째는 아래와 같다.

우리 위대한 열성조께서

대대로 큰 공을 세우셨네.

큰 덕과 큰 업적을

어찌 다 표현하랴.

우리의 춤 바둑을 두듯

진퇴의 법도가 있지.

의연하고 편안하니

나라의 장래가 보인다네.

(於皇列聖/ 世有武功/盛德大業/易可形容/ 我舞有奕/進退維程/委委拖拖/ 永觀厥成)


우리들의 춤은 바둑을 두듯(我舞有奕)이란 구절이 있다. 춤이 바둑의 행마처럼 조화롭고 자유롭다는 의미인데 종묘악을 번역한 대부분의 역자들은 "뭔 바둑...?" 하며  바둑과 관계 없는 차례 등을 운운하며 두루뭉실 해석한다. 조선초중기만 해도 바둑을 들어 정치는 물론 병무행정을 빗대는 일은 흔한 일로  국가제례악 속에 바둑이 녹아 있다 해서 이상한 일도 못마땅한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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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령산 |  2012-02-07 오전 6:15: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일무의 한자 일 저런 일자도 있나요? 한문은 정말 어렵군요^^';;  
충령산 |  2012-02-07 오전 6:16: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의 춤 바둑을 두듯~ 우리의 춤은 바둑을 두듯~ 느릿 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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