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4! 일전에 초대해주어서 고맙네. 언제 한 번 핵기지로 알렉스5를 데리고 놀러오게. 아님 내가 직접 가겠네.”

“아이구! 천하의 블랙야크님 초대에 저희가 직접 가겠습니다. 새끼 거북섬에 요즈음 새들이 많이 날아다닌다고 하니 사냥 준비를 해서 가도록하죠.”

알렉스4는 블랙야크가 무슨 꿍꿍이속으로 형제들을 초대했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어차피 동병상린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 의기가 투합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렉스4는 전화를 받고 그 다음날 바로 행동에 옮겼다.

두 사람을 배웅하러 간 블랙야크는 사냥차림으로 나타난 두 젊은이들을 보더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지금 쯤 저 정도는 키가 컸지 싶었다. 젊음의 혈기로 가정마저 유지하지 못하고 히든의 말만 믿고 따라온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고 못난 사람 같아 보였다.

“정말 멋진 젊은이 들이군! 이런 신사 분들이 산중의 한물간 사람을 찾아주니 고맙기 짝이 없네. 지난 저녁에 올무를 놓아 꿩을 두 마리 잡아 구워 놓았으니 술이나 한 잔하세.”

“역시 블랙야크님은 생김새도 미남이지만 사람을 은근히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알렉스4가 너스레를 떤다.

“하하하 미남은 무슨? 그래도 듣기는 좋아.”

“여~ 동생도 아주 멋쟁이네. 마치 백마 탄 왕자님 같아.”

“하하 블랙야크님도 너무 띄우지 마세요. 이러다 백마에서 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알렉스5도 배포가 유한 듯 한마디 거든다.

야외 식탁에 앉은 세 사람의 웃는 소리가 산하에 퍼진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취기가 온몸을 알싸하게 만들었다.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이미 잘 알고 있다면 괜히 하는 소리네만?”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천하의 블랙야크님이 못할 말이 뭐있습니까?”

“자네들 형인 알렉스3이 나와 자네 둘을 예의주시하며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는 소문일세.”

“네~에~?”

도둑이 지발에 질린 표정을 하며 알렉스4가 놀랜다.

“사실 말이지 이미 나도 히든의 왕국에서는 단물이 다 빨린 빈껍데기 신세 아닌가?

“그래도 블랙야크님은 막강한 핵무기가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하겠지요?”

“글쎄다. 이미 달 주변의 식민지 건설과 목성우주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핵은 거추장스러운 사생아일 뿐이라네. 히든님의 계획대로라면 핵보다 몇 배 위력을 낼?”

“끔직한 일이군요. 핵보다 몇 배 무서운...지구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겐 재앙의 날이 되겠어요.”

“물론이지. 그러나 반물질은 잘 사용하면 인류에게 축복일세. 그기다 이산화탄소도 배출되지 않는 그린에너지거든.”

반물질이 히든에게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에 세 사람은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히든의 계획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는 죽음의 형벌을 감수해야 하는 십자가를 져야했다.

과학의 기술이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기술은 그 싹을 제거해야 마땅했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 인가.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조금 긴 침묵으로 서로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블랙야크가 술잔을 높이 들며 브라보를 외친다.

“히든 왕국의 발전과 세 사람의 건강을 위하여!”

“위하여!”

블랙야크의 첫 시도는 일단은 성공적이었다. 히든의 계획이 무모하고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인류의 재앙이란 점을 서로 공감하였고, 알렉스3이 눈에 불을 키고 두 사람의 약점을 캐고 있다는 말에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형제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모종의 행동을 각자 취할 것이었다. 작은 불씨가 도화선이 되어 히든왕국을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할 수 있다면....블랙야크는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의 평화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면 비록 피폐한 몸과 마음이지만 아낌없이 바치리라 다짐했다.

블랙야크의 마음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거미줄에 묶여 지상의 감옥에 갇힌 소년들을 보면서 부터였다. 로봇 1명과 소년 세 명이 묶였는데 세 명 중 유달리 키가 큰 소년이 한 명 있었다. 그 소년은 철망에 갇혔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있었다. 덩치를 보니 자신이 절에 버렸던 아이가 자랐으면 그 정도는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들은 자신들의 안위보다 잡혀온 과학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소년들이었다. 자신은 히든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하면서 선악의 구별을 애써하지 않았었다. 그 날 이후 지상의 감옥 감시도 소홀하게 되었고 소년들은 기적같이 탈출에 성공하였던 것이었다. 잡혀왔어도 소년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블랙야크는 소년들이 무사히 탈출하기를 빌었다. 근래에 버렸던 아들이 생각이 나서 혼자서 멍하니 자신이 살았던 옛집을 생각 하곤 했다. 그곳엔 아내와 아들이 저녁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퇴근하면서 항시 아들이 잘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사가곤 했었다.

“이게 뭔지 알아맞혀봐?”

“과자.”

“과자 중에 제일 시원한 과자?”

“아이스크림.”

“맞았다. 아이스크림. 하나는 아들 거. 하나는 당신 거.”

“어머 당신 두. 내가 뭐 아이인가요?”

“하하 당신도 귀엽고 사랑스럽기는 마찬가지지.”

젊은 시절 멋을 내느라 머리를 길렀던 시절 머리가 눈을 가리면 오른손으로 쓰윽 올리곤 스스로 멋쩍어 웃곤 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무심결에 거울 앞에서 오른 쪽 머리를 올리던 블랙야크는 깜짝 놀라서 머리를 다시 내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흉하기 이럴 데 없는 초체한 40중반의 사나이였다.

블랙야크는 젊은 시절 히든의 핵연구소 실험실에서 얼굴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이후 항시 오른쪽 볼에 머리를 길게 내리고 상처부위를 감추고 다녔다.

흘러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순수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 인간의 잘못된 욕망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한평생을 어둠속에서 가슴아파하고 슬픔에 겨워했다. 아들아! 우리는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지금쯤 어느 하늘아래서 너 어미와 이 못난 아비를 생각하고 있을꼬. 너무 이 애비를 원망마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이 우리를 묶어 놓기도 하고 풀어 놓기도 하는 구나.

그동안 히든의 꾐에 빠져 악의 원흉인 히든의 왕국에 자신의 열정과 젊음 뛰어난 두뇌까지 바쳐서 난공불락의 성을 만드는데 일조를 했으니, 이제 자신이 주역으로 나서서 파괴에 앞장서야 마땅했다.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했다. 블랙야크는 이미 지나간 세월과 단란했던 가정은 되돌려 받지 못한다하더라도 단 한번이라도 아들을 꼭 보고 싶었다. 일전에 꿈속에서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나타난 적도 있었는데, 히든의 왕국에 쳐들어온 소년들과 닮은 아이들 이었다. 아들은 세 살 때 자신이 손수 절에 맡겼던 그 얼굴 그대로였는 데 같이 있던 소년들은 일전에 포로로 잡혔을 때 보았던 소년과 로봇이었다.

오늘 밤 꿈에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꿈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하늘이여 이 가련한 블랙야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