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상의 원자가 모두 너의 편이다.

몽골고원으로 피신한 소년들은 천막을 치고 피폐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적들의 강력함과 어스몬들의 능력을 확인하였다.

걱정스럽게 에톰이 연일 헛소리를 하며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에톰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가슴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긴 그 사실을 그는 무척 괴로워하였다. 가끔 가슴의 통증을 참을 수 없어 뒹굴기도 했다.

“에톰아! 일어나라! 어미다!”

“아! 어머니! 어디 계세요?”

“이 어미는 죽어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우주를 배회하는 원자가 되었다.”

“아버지도 나의 편이 아니 예요. 제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에톰아 힘을 내라! 세상의 원자가 모두 너의 편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원자로 이루어져있다. 너는 원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원자들의 왕이다.”

“왕이여! 일어나세요!”

꽃 요정과 풀의 요정들이 합창하였다.

에톰이 꽃 요정들의 향응을 받으며 궁전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꽃들의 여왕이 되어 온몸이 꽃으로 변해있었다.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저 에톰이예요.”

“오! 에톰 나의 아들아! 우리가 서로 만질 수는 없어도 느낄 수는 있다. 원자는 영원하다. 한 번 세상에 태어난 원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아! 어머니!”

“이 어미가 오늘은 비록 원자의 몸을 하고 있으나, 너도 언젠가 너의 최초의 모습인 원자로 돌아올 터, 먼 후일 우리는 원자로 만나면 다시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어머니! 저도 원자로 돌아가고 싶어요!”

“안 된다. 내 아들아! 우리가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목숨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 누구도 자기 스스로 주어진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 이 궁전에서 잠시 쉬면서 생명의 기운을 되찾아라.”

“어머니 함께 있고 싶어요.”

“내 아들아! 이 어미는 넓은 우주로 여행을 떠나야 한단다.”

어머니는 너울너울 춤을 추며 사라진다.

“어머니! 가지마세요! 어머니!”

꽃들의 요정이 에톰에게 날아온다.

“선량한 에톰이여! 자연의 친구인 에톰이여! 우리와 함께 휴식을 취해요.”

“꽃들이여! 그대들은 우리 어머니와 항시 함께하라. 이 에톰 대신 항시 함께하며 말동무가 되어주라. 불쌍한 어머니!”

“에톰이여! 염려마세요. 그대의 착한 마음은 하늘도 감동해요. 항시 하늘이 그대를 도우고 우주의 원자들이 그대와 함께 하리다.”

꽃의 요정들이 날아서 어머니가 사라진 곳으로 날아갔다.

“ 잘 가라! 꽃의 요정들이여!”

“어이 에톰! 왠 낮에 잠을 자며 잠꼬대냐.”

에톰의 눈에 눈물이 말라 붙어있었고 에톰은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코스모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정을 모르고 살아서 그런지 에톰의 부모에 대한 정을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했으나, 에톰이 전투에서 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자 괴로워하며 가슴의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코스모 자신도 에톰과 같은 운명이라면 같은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코스모는 어릴 때 어떤 경우로 다쳤는지 모르지만 가슴에 흉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물에 덴 상처인데 아주 보기 흉했다. 상처의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했다.

더운 여름에도 깊게 파인 옷은 입지 못했다. 외부의 상처도 마음이 아프지만 에톰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그 이상이었다. 코스모는 어린 에톰이 무척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톰아! 너무 슬퍼마라. 부모와 자식 간에도 언젠가 이별이 온다. 운명은 우리를 묘하게 엮어놓았구나. 큰 욕망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구나. 이것은 정녕 슬픈 일이다. 남남 간에도 따지고 보면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남남이 아니다. 하나의 원자에서 우리는 생명이 잉태되었고, 그 원자들이 모여 각기 다른 얼굴을 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애초에 남이란 없다. 있다면 형제간에도 그 모습이 다르듯이 우리는 서로 약간 다른 모습일 뿐이다.

에톰아! 삶이란 가혹한 댓가를 때로 지불해야한다. 진정한 평화란 이 세상에 없다. 만물은 살아남기 위해서 항시 투쟁을 한다. 지금 현재 살아있는 자가 승자며 패배자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에톰아! 힘을 내어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꾸나.”

“형 고마워! 이제 두 번 다시 울지 않을게.”

“와! 에톰은 역시 용감한 사나이야!”

로보킹이 에톰에게 찬사를 퍼부었다.

“그래 로보킹 고마워. 이번 전투에서 맘모스맨들이 공중에 나를 던졌을 때 구해주었잖아.”

“하하 뭘 그런 걸 가지고. 앞으로 어떠한 위험이 닥쳐와도 두 사람을 구해줄게.”

“허허 로보킹이 사람보다 낫단 말씀이야. 로보킹! 바둑한 판 두랴. 아홉 점 깔아줄게.”

코스모가 말했다.

“좋아 대신 물리기 없어.”

“당근이지. 너나 물리지마.”

로보킹이 9점을 깔고 접바둑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큰 자리를 다 빼앗긴 백의 입장에서는 초반부터 치열하게 적진 속으로 특공대를 투입하여 적의 진지를 교란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코스모는 치고 빠지는 작전을 일삼으며 로보킹의 땅을 점령해나갔다. 중반이후 승부는 누가 이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흑의 중앙이 두터워서 이대로 가면 백이 몇 집 모자라는 국면이었다. 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와우 승부수의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

에톰이 놀랜다.

“하하 누가 백을 잡고 두던 이 장면에서 승부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지.”

코스모는 바둑을 두면서 행방불명된 과학자들을 구하기 위해 교란작전을 펼치고 승부수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띄울지 고심하였다.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로보킹은 코스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갑자기 장고를 하자 한 마디 한다.

“응 잠시 뭐 작전 좀 짜느라.”

코스모가 단수된 자신의 돌을 잽싸게 연결한다.

계가를 해보니 코스모가 네 집을 이기고 있었다.

“하필이면 네 집을?”

코스모가 소년들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예로부터 넉 사(四)자는 좋은 뜻으로 쓰였어. 동서남북 춘하추동 등. 그런데 현대에 와서 변질이 되었어. 죽을 사(死)로.”

로보킹이 좋은 뜻으로 해석을 하였다.

에톰은 앞으로 좀 더 신중하게 계획을 짜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낮에 살아있던 모든 사물이 어둠이 몰려오자 숨소리를 죽이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드는데 메시지가 사물을 깨웠다.

‘에톰! 혼자 안전하게 돌아온 내가 때론 무척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엄마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돌아왔지만 아직 할 일이 태산인데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부를 해도 너희들과 함께 사선(死線)을 넘으며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시절이 많이 생각이 난다. 들판에서 손을 다친 두더쥐에게 붕대를 감아주었고 코스모가 기상명령을 내렸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자 ‘불이야’했더니 전부 옷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왔던 기억으로 혼자 키득키득 웃을 때가 많아. 환경이 열악했으나 우리가 같이 했던 시간은 무척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구나. 네가 이번 전투로 마음이 무척 상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을 잃어버린 너의 아빠가 너의 가슴에다 총을 쏘았으니 구경꾼인 내가 상상해도 무척 가슴 아픈 얘기였어. 하루빨리 너의 아빠가 기억을 되찾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히든의 왕국으로부터 탈출해온다면 얼마나 좋겠니. 다시 한 번 너희들과 모험을 함께하고 싶다. 위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많겠지만 너희들과 함께라면 헤쳐 나갈 자신감이 생긴다.

가슴이 아프겠지만 더 큰 일을 위해서 이겨내길 바란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 까지 잘 있어. 하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