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Life And Death의 책

알렉스3은 아버지 히든이 손에 넣기를 바라는 책자의(LAD)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었다.

“생명과학자A! 어디다 숨겼는지 빨리 말하세요.”

알렉스3은 책상을 내리치며 겁을 주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다 빼앗겼다. 내가 누구인지 심지어 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데 어찌 책자의 행방을 알려 달라 하느냐?”

“하기야 당신은 이미 과거의 당신이 아닌 것은 분명해. 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숨겨놓았던지 아니면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다면 여기 하얀 백지에 쏟아놓도록 하세요.”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은 식물에 대한 일천한 지식뿐이다.”

“나 원 미치겠네. 한 편의 책자도 찾을 수 없고 누구를 만나서 족칠 수도 없으니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이군.”

알렉스3은 더 이상 생명과학자A를 어르고 달래봐야 아무것도 나올게 없다는 사실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며 생명과학자A의 연구실 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

만약에 이 책자가 선량한 사람들에게 읽힌다면 더할 수 없이 다행이겠으나, 악한 사람들이 생로병사의 비밀을 터득한다면 선량하고 약한 생명들을 오래도록 괴롭힐게 뻔했다.

히든은 LAD책자를 손에 넣고 싶었다. 그러나 생명공학자A의 과거 기억을 다 빼버리고 오직 생명 공학자로써 연구할 수 있는 기능만 남겨 논 성급함을 후회하였다. 자신이 계획하는 위대한 창조 사업을 당대에 이룬다는 보장도 없고, 이룬다 하더라도 그 해택을 충분히 즐기며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사람을 로봇처럼 그 기능만을 강조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히든의 왕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복제로 태어났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태어난 인간은 자신과 몇 명을 제외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창조적인 사업을 하기위해서는 창의적인 인재가 많이 필요했으나 왕국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이 다 창조적일 필요는 없었다. 가끔 창의적인 인간들은 자신에게 심각한 도전을 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뛰어난 두뇌와 동물의 몸으로 태어난 에니맨들도 좀 있지만, 그들의 몸은 날래고 힘은 장사여도 뛰어난 두뇌에 비해서 창의적인 능력이 별로였다.

요 근래 신경을 좀 썼더니 일 년 전에 교체한 신장이 요즈음 탈이 났는지 얼굴이 가끔 붓곤했다. 히든은 알렉스6이 책임자로 있는 장기공장으로 걸어갔다.

알렉스6이 책임자로 있는 장기공장에는 온갖 장기들이 시험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줄기세포를 사용하여 사람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최적의 장기를 만들어내야 했다.

알렉스6이 막 실험을 끝내었는지 고무장갑을 벗고 있었다. 오늘의 실험대상자는 심장 쪽에 약간 이상이 있는 인간8이었다. 각종 심장을 교체하여 실험을 해보고 실험자와 맞는 인공장기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알렉스6! 수고가 많구나!”

“네 아버지 어서 오세요. 여섯 달 주기로 계속 심장을 교체하여 최적의 장기를 찾고 있어요.”

“아암 그래야지. 우리 모두 몸의 장기가 고장이 나면 인공장기로 교체해야 천수를 누릴 수 있단다. 사람이 오백년을 산다는 거북보다는 오래 살아야지.”

“그럼요. 적어도 한 이백년은 너끈히 살아야 천수를 누렸다 할 수 있겠지요.”

“에니맨 중에 1명 뽑아서 실험도 해보려무나.”

“네, 아버지. 에니맨 건강검진 결과 에니맨3이 심장이 안 좋더군요.”

“잘 되었구나. 멀쩡한 녀석을 잡아서 실험을 하느니 아픈 녀석 고치기도 하고 실험도 성공하면 오죽 좋겠니.”

히든은 아들 중에 냉철하고 붙임성도 있는 알렉스6이 장남이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알렉스6은 세계적인 외과의사며 노벨의학상을 받은 사람의 유전자가 섞였는데, 알렉스6은 자신이 직접 고무장갑을 끼고 수술을 주도하였다. 알렉스1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피아니스트의 유전자가 섞인 알렉스2는 감성주의자로 히든 왕국건설에 회의적인 인물이었다. 알렉스2와 막내인 알렉스7은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었다. 둘 다 시를 즐기고 피아노 공연을 같이 하기도 했다.

“형을 설득 하려면 힘이 좀 들겠구먼.”

“형은 자신이 생산한 복제인간이나 에니맨 중 누구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을 싫어하죠. 이번에 에니맨3을 데려오려면....”

“히든의 왕국이 지향하는 유토피아 건설에 반대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다스릴 거야. 형한테 분명히 말 전하라구.”

히든의 얼굴색이 변하며 찬바람이 일었다.

알렉스6은 형 알렉스2의 방으로 갔다.

“형 누누이 말했지만 어쩔 수 없어. 에니맨 3은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알렉스6이 형을 설득하였다.

“아직 아픈 환자도 아니고 에니맨3은 겁이 많아서 수술대 위에 뉘이는 순간 죽어버릴 것 같거든.”

“아버지 히든이 말했어. 히든의 왕국건설에 반대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다스린다고.”

“알았어. 내가 먼저 에니맨3을 만나서 얘기할 테니 잠깐만 비밀로 해줘.”

“그래 형, 내일 아침 8시까지 내 사무실로 보내줘. 이 모든 게 우리 가족과 히든의 왕국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위한 것이야.”

알렉스2는 에니멘3이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치환으로 탄생한 종족이었지만 사람이냐 동물이냐는 관점을 넘어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란 것이었다. 알렉스2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을 희생하며 각종실험을 행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아버지 히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왕국에 아무도 없었다. 거역하면 그 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감수해야 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에니맨3의 방으로 갔다. 에니맨3도 자신의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약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생활하는데 그다지 불편한 점이 없었기 때문에 수술까지 한다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거역 할수록 주인인 알렉스2의 입장이 난처해지리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 그냥 수술을 받도록 하죠.”

“굉장히 위험한 수술인데 괜찮겠느냐? 차라리 내가 대신 받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

잠시 침묵이 흐르며 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에니맨3! 미안하다. 세상에 태어나게 한 내 잘못인지도 모른다. 혹시 잘못되더라도 날 원망하지마라.”

“원망은요. 아직 수술도 하지 않았고.. 수술 후 더욱 건강해 질수도 있잖아요.”

두 사람의 선량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둘은 서로 껴안고 오래 동안 떨어 질줄 몰랐다.

조그만 가시가 손가락에 박혀도 엄살을 떨던 심약(心弱)한 녀석이 대수술을 이겨낼지 걱정이 되었다. 그 다음날 에니맨3은 풀죽은 모습으로 수술대에 누웠고 알렉스2에게 애써 미소를 날리고 눈을 감았다. 마취가 된 에니맨3은 장장 12시간 동안 심장교체수술을 받았는데 면역력에 이상이 생겨 그길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죽은 시체는 다양한 각도의 사진으로 찍혀서 컴퓨터의 폴더에 저장이 되었고, 시체는 방부처리가 되어 유리관에 갖히게 되었다. 태어나는 것도 권력자들의 조정에 의해서 태어나며, 죽어서까지 그들의 편의에 의해 화장이 되거나 대지에 묻히지 못하였다. 단지 한 명의 생명은 실험재료로써 가치를 가질 뿐이었다.

알렉스2는 자신의 일에 엄청난 회의를 평소에 가지고 있었는데, 더 이상 복제인간 프로젝트는 수행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알렉스2는 자신의 형인 알렉스1에게 전화를 하였다.

“형 도저히 이 직책을 더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막내처럼 식물이나 가꾸며 농촌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동생이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그만 둘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아버지 히든이 시키는 일이라면 섶이라도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들어야해. 우리의 몸과 정신은 오직 아버지 히든의 소유물에 불과해.”

“내가 맡은 일은 알렉스6이 적당할 것 같애. 그는 외과 의사처럼 직접 수술도 하고 수술할 때도 보면 사람을 마치 물건 다루듯 쉽게 다루거든.”

“내가 아버지를 한 번 만나면 얘기를 해볼게. 다행히 아버지 히든도 너 생각대로 9인자인 알렉스6에게 5인자의 자리를 쉽게 내어줄지 의문이야.”

“난 다 싫어. 권력도 남을 괴롭히는 것도 정말이지 복제인간 프로젝트는 죽기보다 더 하기 싫어.”

“알았어. 너 마음이 정 그러하다면 문제는 의외로 단순해질 수 있어.”

알렉스2는 선량한 에니맨3의 눈망울이 자꾸 떠올랐다.

“와우! 와우!”

에니맨3이 청색 장미를 만지다가 가시가 손가락에 박혀 아프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장면이 생각났다.

‘에니맨3! 잘 가! 그곳은 누구도 너희들을 괴롭히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