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히든의 취미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황곡이 은은하게 깔려있는 미로의 방에 큰아들 알렉스1과 히든이 원탁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라면이야! 먹어봐. 찌그러진 냄비를 차버리고 나니 라면 끊여먹기가 쉽지 않네.”

히든은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즉석요리를 하였다. 이런 식사를 해본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알약 한 알이면 허기를 면하고 며칠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라면을 끊였었다.

알렉스1은 별로 먹고 쉽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히든이 권하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미움을 받을 수 도 있기 때문에 단숨에 후루룩 입안에 털어 넣었다.

“원 녀석 성질하나는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급하누. 옛날에 병으로 죽은 네 형도 라면은 잘 먹었어. 허허.”

히든은 4살 때 암으로 죽은 아들이 생각났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편하게 해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리어 온갖 고칠 수 없는 질병도 인류에게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아들의 DNA를 채취하여 시험관에서 아들 7명을 생산했다. 일반적인 복제인간 생산과는 달랐다. 뛰어난 자식들을 갖고 싶어서 얼굴과 몸은 아들을 닮게 했지만, 두뇌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DNA를 채집하여 게놈 서열을 조금씩 바꾸어 태어나게 했다. 아들들은 각자 생김은 비슷하나 그 능력은 아주 달랐고, 생각 또한 제 각각이었다. 큰 아들 알렉스1은 죽은 아들의 DNA그대로 사용하였고, 둘째 아들 알렉스2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유전자로 치환했었다.

다른 녀석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업에 부합하는 성격을 물려받았는데,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은 시인의 유전자를 섞어서 태어나게 한 막내 알렉스7이 문제아였다. 식물 키우기나 시 짓기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부리고 지배하는 데는 하등관심이 없었다. 젊은 시절 랭보를 보는 듯 시에서는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고 있었다.

“알렉스1! 판이 다 되었구나. 베토벤의 ‘운명’을 듣고 싶다. 판을 바꾸어 주겠니.”

히든이 거의 40년 동안 가지고 다니는 다소 낡은 전축 VICTOR21이 판을 약간 긁는 소리를 내며 운명을 토하였다.

알렉스1은 고급미적분 풀기나 채스 두기가 취미였다. 음악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1! 아빠하고 오늘 채스 한 판 둘까. 봐주지 않아도 된다.”

히든의 왕국에서 알렉스를 이길 수 있는 채스 실력자는 아무도 없었다.

“네.”

얼마가지 않아서 히든의 킹이 사지에 몰리게 되었다. 역시 아들의 체스 실력은 훌륭했고 이런 냉정한 판단력과 전략이야말로 미래에 히든의 왕국 제1인자로써 갖추어야 할 덕목 같았다.

“내가졌다.”

히든은 킹을 쓰러뜨리고 패배를 인정하였다. 히든이 세상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큰 아들이었다. 지고서도 히든은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미로의 방을 탈출하였던 녀석들 때문에 아들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의 왕국을 더욱 견고하게 굳혔으므로 히든은 한편으로 침입자들에게 약간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목성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

“네?”

“하하 목성연구는 핑계에 불과하고 사실은 ...”

“.........”

히든은 잠시 말을 끊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그란 지구하우스가 덩그마니 눈에 들어왔다.

“비행사k를 보내어 반물질을 가지고 오게 하려고.....”

“네? 반물질?”

“그 물질을 가지고 오염된 지구를 깨끗이 청소하는 거야.”

“지구 파괴를 의미하는 겁니까?”

“아니. 완전한 파괴는 아니고 병든 지구의 환부를 도려내는 부분적인 파괴를 의미한다.”

“아!”

알렉스1은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그러면 사람들은 암에 걸리지도 않고 천수를 누릴 수 있거든. 현 지구는 태양이나 달로부터 아주 적당히 떨어진 멋진 자리에 있는 매력덩어리지.”

알렉스는 아버지 히든의 계획에 경악하였다.

“너무 놀라지 마라. 이미 지구는 병들었고 병든 지구는 사람과 동식물을 담고 있기엔 무리다. 어차피 지구는 수천억년 뒤에 태양에 의해 부서질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과 동식물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떡하고 청소를 한다는 거죠?”

“물론 선량한 사람도 많고 하등 지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악인들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지구를 못살게 굴고 있지 않느냐. 미래의 인간은 욕망이 제거된 선량한 사람들만이 모여서 살아야 지구의 다른 생물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과 다양한 인간들의 DNA는 다 채취하여 보관해 놓았다. 신지구건설프로젝트Z-0만 다 완성하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여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악과 선의 구분도 애매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선과 악을 공유하고 있는 이중적인 존재가 아닐까요?”

“네가 보는 관점은 정확하다. 그러니까 아예 악의 유전자는 철저하게 없애버려야 후환이 없다. 나약한 인간에게 선악을 선택하게 한 것은 창조자의 잘못이다. 대체로 인간은 선보다는 악을 많이 선택한다. 산다는 것은 어차피 타인의 죽음을 담보로 한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수많은 생명의 시체에 불과하다. 단지 우리가 매일 행하는 모든 일이 관례가 되어 그 일의 심각성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다. 망각이 없다면 우리는 하루도 마음 편히 살수 없다. 실패로 돌아간 창조자의 일을 우리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1은 더 이상 아버지 히든과 말을 하고 쉽지 않아서 침묵을 지켰다. 아직 그의 인생경험은 아버지의 확고한 지론을 조리 있게 반박하기엔 모자랐고 수학의 이론을 증명하는 것보다 인생이란 명제는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 아빠의 위대한 사업을 많이 도와다오. 수시로 목성 우주선 개발에 차질이 없도록 지구하우스에 들러 감독을 잘 해다오. 동시에 달 주변에 우리 가족과 왕국의 일부주민들이 살아갈 기지도 계발하자.”

알렉스1은 처연한 생각이 들어 황급히 밖으로 빠져 나왔다. 베토벤의 운명이 마지막 악장을 뱉어내고 있었다.